권태의 끝에서 발견한 것
어느 날부터였을까. 문득 짧은 생각 하나가 머릿속을 스쳤다.
‘나, 왜 이렇게 살고 있는 거지?’
처음엔 하루에도 수없이 스쳐가는 잡생각 중 하나일 거라고 여겼다.
그래서 그 조용한 마음의 목소리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생각만은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랬다. 의심할 여지없는 권태였다.
이 감정은 어느 날 갑자기 폭발하듯 솟구친 게 아니었다.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나조차도 모르게 서서히 마음속 한가운데 뿌리를 내리더니, 어느새 두터운 마음의 흙을 뚫고 떡잎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애써 외면했지만, 권태는 무럭무럭 자라나 줄기는 굵어지고, 잎사귀가 제법 무성해졌다.
최근 몇 년간 내 일상은 너무도 조용했다.
마치 주식 차트의 박스권을 지켜보는 것 같았다.
날마다 조금의 변동은 있지만, 큰 틀에서는 a가 a’로 바뀌는 정도랄까.
심지어 직업의 특성상 눈에 띄는 성과도 없어서 성취감이나 자아실현 같은 감정은 오래전부터 희미해져 있었다.
물론 안정적인 일상은 나름의 만족감을 주었다.
오늘 한 일을 내일도 반복하고, 또 그다음 날도 반복한다는 예측 가능성은 마음에 평화를 주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이 권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내일이 기대되지 않았다.
내일 어떤 일이 펼쳐질지는 살아보지 않아도 훤히 그려졌다.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맞는 걸까?
그저 생존을 위해 꾸역꾸역 일하러 나가야만 하는 삶이 내 몫인 걸까?
원시적인 본능에 휘둘리듯, 먹고살기 위해 하루를 살아야만 하는 그런 삶?
상념은 어느새 극단적인 지점까지 치달았다.
나는 살아낸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일상에 색을 입히고 싶었다.
직장에서 주어진 업무를 해내는 것을 넘어, 그 이상의 무언가.
무엇을 더 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행복해질 수 있을까?
삶의 가치는 어디에 두어야 할까?
틈만 나면 이런 생각을 곱씹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진첩을 넘기다 문득 깨달았다.
여행지에서의 내가 유독 행복해 보인다는 것.
가만히 돌아보니, 나는 평생 여행을 사랑해 왔다.
어린 시절부터 세계 곳곳의 사진을 보며 ‘어른이 되면 꼭 가보리라’ 다짐했던 나.
그 다짐을 지키듯 대학생 때부터 학기 중엔 알바를 하고, 방학엔 짧은 여행을 떠났다.
여유롭지는 않았지만, 길거리 음식을 먹으며 몇 만 보씩 걷고, 낯선 풍경과 문화를 온몸으로 체감하며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
영상이나 책으로만 보던 곳을 내 눈으로 직접 마주할 때면 모든 것이 생생하고 진짜 같았다.
나는 여행의 모든 순간을 사랑했다.
목적지를 고르고,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여행지를 머릿속에 그리며 계획을 짜는 시간까지—
그 모든 과정이 내게는 행복이었다.
아, 나는 여행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구나.
그리고 그 사랑이 나를 다시 살아가게 만드는구나.
물론 여행, 특히 해외여행은 결코 가볍지 않다.
시간도,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선택한 건 재테크였다.
도박이 아닌 투자처럼, 차근차근 준비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가고 싶은 여행지를 떠올리며 재테크 공부를 시작하고, 하나하나 실천에 옮기기 시작한 지금—
권태는 시들기 시작했다.
무성하던 그 잎은 하나둘 마르더니, 어느덧 자취를 감추었다.
그 자리엔 설렘이라는 새순이 자라나고 있다.
하루하루를 아무 기대 없이 살아가는 당신.
잠시 숨을 고르고, 천천히 생각해 보자.
무엇이 당신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하는가.
그것이 무엇이든 좋다.
과거의 나를 돌아보며, 내가 가장 나다웠던 순간을 떠올려보자.
그 기억 속 어딘가에,
지금의 나를 다시 살아가게 만들 무언가가 분명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