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칠십 살 김순남 Mar 16. 2024

이상하고 친밀한 이웃

지금 내 이웃은 만 명이 넘는다. 솔직히 만 명 중에서 내가 이름이라도 기억하는 이웃은 수 십 명에 불과할 것이다. 더구나 얼굴을 아는 이웃은 수 명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그들은 모두 내 이웃이다.      


내가 그들의 이름과 얼굴을 모른다고 해서 나에게 불친절하거나 나를 막대하는 이웃은 없다. 그들은 지극히 나에게 친절하다. 대부분 나를 칭찬해 주고 응원해 준다. 내 이웃 중에 내 또래는 별로 없다. 대부분 나보다 어린 이웃들이다. 70대 할머니에게 20대 이웃이 많이 생겼다. 그들 모두 그냥 이웃님이다. 할매에게는 황송하고 영광이고 기쁨이다.      


세대에 상관없이, 솔직히 말해 지금 살고 있는 아파트 옆집 할매보다 더 친근하고 정이 간다. 솔직히 말해 어릴 때부터 같은 학교를 다니고 수십 년을 함께 한 친구들보다 더 마음 가는 이웃도 많다. 솔직히 얼굴을 알고 자주 만나는 이웃에게 못 털어놓는 내 마음의 고심도 털어놓기 편하다. 그들도 그렇다. 얼굴을 마주 보지 않아서 더 속에 있는 말을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 여행을 한참 하다 보니 이렇게 이상하고 친밀한 이웃이 많이 생겼다. 그러다 보니 점점 얼굴을 맞대서 수다를 떨 수 있는 친구가 없어져도 외롭지 않다.      


이런 세상을 이해 못 하는 내 또래 친구도 아직 많다. 그들은 변화하는 세상을 따라가지 않고, 옛 세상에 갇혀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불행하다고도 말할 수는 없다. 사람들은 그런 것을 보고 단순한 삶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단순한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도 한다.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암튼, 나는 어쩌다 보니, 끊임없이 세상 길을 걷다 보니 자연스레 변화의 세상 속으로 걸어 들어가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거기에서 나처럼 변화의 세상 속으로 떠밀려 온 사람, 아니면 스스로 찾아 들어온 사람, 또는 애초에 그런 세상 속에 태어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 이웃이 되었다.      


그들의 친절과 응원이 마음속에서 우러나온 것인지, 단순히 손 끝에서 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솔직히 그런 것까지 헤아리며 그들을 잣대질 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떻든 나와 인연이 닿았고, 나에게 관심을 준 이웃이기 때문이다. 그 관심이 잠시이든 장시간이든도 상관없다. 잠시면 잠시대로 그 시간 그들이 준 응원과 공감과 위로로 행복하고, 장시간이면 장시간인대로 나 또한 그들에게 감사의 인사와 위로와 응원을 답례로 주며 공감대를 형성함으로, 나와 같은 이웃이 있다는 것에 외로움을 잊을 수 있다.     


아주 큰 상자에 모래를 한알씩 넣어 상자를 다 채우는 시간을 1겁이라 한단다. 불교에서는 전생에서의 억겁 인연이 현생에서 한 번의 스침을 만든다고 했다. 그에 빗대어 생각하면 이런 이웃과의 인연은 어마무시하게 소중한 인연이다.      


그런 이웃이 내가 살고 있는 나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피부도 언어도 다른, 내가 가보지도 못한 나라의 사람이기도 하다. 앞으로 남은 여행동안 이런 이웃의 확장이 어디까지 일지 궁금하다. 언젠가는 이 지구상 모든 인간이 이웃이 되어 전쟁을 하지 않게 되었으면 좋겠다.     


허긴, 이웃이라고 다투지 않겠는가마는. 어떻게 보면 이웃을 빙자한 친절이 더 무섭기도 하니, 세상만사 생각하기 나름이다.



이전 01화 또 다른 세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