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태어나 여름소녀 같은 행색을 한 요즘이다. 여름 내내 바다를 돌아다닌 덕에 시커먼 피부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많이 하얘졌다 생각했는데.
"어머, 해외 다녀오셨다보다"라는 소리를 수영장에서 또 들었다.
요즘 나의 행색은 꽤나 자유분방하다. 쌀쌀한 겨울이나 나시에 반바지를 입고, 그 위에 서핑샵에서 드디어 구매한 로브를 입는다. 맨살에 닿는 보들보들한 로브의 촉감이 좋다. 걸을 때마다 행복하다.
최근에는 자신의 긴 머리를 좋아한다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그랬다. 내 층이난 긴 머리를 좋아하고, 이제 갈색머리가 거의 다 사라져 끝에만 조금 남은 흑발에 끝에 조금 남은 색이 꽤나 마음에 든다.
한 일주일 전인가. 살이 쪄서 몸이 무거웠는데, 재판 관련 소식덕에 약 먹고 운동하고 잠만 잤더니 살이 또 빠졌다.
잘 먹고 운동을 쉬면 금세 살이 찌고, 며칠을 앓으면 살이 쭉 빠진다. 뭐 이제 조금 쪄도 살이 어떻게 해야 빠지는 줄 알고, 어떤 내 모습이 마음에 드는지 알 것 같다. 예쁜 나이 스물다섯을 지나 스물여섯, 만 나이로 스물넷, 다음 달이면 다시 스물다섯이다. 그 예쁜 나이라는 게 어떻게 해야 내가 더 매력적 이어 보이는지 알기에 그렇다는 걸까? 주변 친구들은 점점 더 예뻐진다. 자신의 매력을 더 알고, 자신의 개성이 더 진해지기에 말이다. 나도 그렇겠지.
좋아하는 것을 찾을 때다. 스무 살 초반 무렵에는 스무 살 중반에 취업하지 않으면 무슨 사회에서 도태되는 사람이 되는 줄만 알았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가면 무슨 용암이 나를 쫓아오고 그걸 급하게 달려 피하는 그런 모습이었다. 근데 막상 스무 살 중반에 백수의 상태를 여러 번 경험해 보니, 그게 다가 아니란 걸 알게 됐다. 내가 아파서 일을 못할 수도 있는 거고, 회사를 다니지 않고 프리랜서로 활동할 수 있다는 것. 정말로 이상이 아닌 내 사업을 해낼 수 있다는 것들을 깨달았다. 그리고 조금씩이지만 좋아하는 것이 돈이 될 수 있다는 것도. 참 올해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몇 번이나 죽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몇 번이나 이상한 사람을 만났고, 그 몇 배만큼 행복했다. 그래도 우울한 수보다는 행복한 순간이 많았다. 난 아이스크림 한입에, 불어오는 바람에, 이불의 촉감에 행복해하는 행복의 허들이 낮은 사람이니까. 어떤 우울이든 불행이든 그 자그마한 행복들이 모여 모두 걷어내고 말겠지. 어떤 순간의 나는 남들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럼 됐지.
좋아하는 게 너무 많다. 서핑, 주짓수, 수영, MMA, 프리다이빙, 스킨스쿠버, 중국어, 영어, 스페인어, 일본어, 중앙아시아어, 시사, 경제, 독서, 글쓰기 모두가 내 관심사다.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는데, 그건 어떻게 하는 건데요. 매 순간에 그것에 집중하고 딱 다음 것들을 해내는 그런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러다 이도저도 못된다는 말을 많이 들었지만, 나름 모든 분야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무거운 짐을 질질 끌고 가 그 성과가 느리긴 하나, 끈질긴 집념으로 반드시 해내고 만다. 몇 가지는 거의 다 왔다. 물론 목표에 도달하면 그다음 과정들 이 있고, 그에 맞는 경험도 있을 거다. 그 단계를 평생 동안 해낼 생각에, 그리고 더 많은 변수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에 설렌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있을까. 어떤 사람을 만날까. 그 사람에겐 내 어떤 장점으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런 것들. 다 잘하고 싶다. 다 잘 해낼 거다. 난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까. 내가 한 가지로 정의되기 싫다. 메타몽처럼 어설프더라도 모든 형태를 갖출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아직은 그럴 시간과 체력이 있으니 어떤 형태든 바뀔 수 있을 거다. 뭐 나중엔 정착해서 한 가지 모양으로 굳어질 수 있으나 지금은 그럴 거니까. 나의 한계를 결정짓지 않기로 했다. 나를 정의하는 것들을 흘려보내기로 했다. 그러니 마음이 가벼워졌다. 한결 가벼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