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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나는 친구였을까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

by 유타쌤

나는 인간관계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많았다. 사람과 사람이 맺는 관계는 늘 일정하지 않고 그 속에서 기쁨과 슬픔, 기대와 실망이 교차한다고 느꼈다. 특히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친구와의 관계, 그리고 최근에 짧게 만났지만 마음이 잘 맞는 사람과의 경험을 비교하면서 인간관계의 본질에 대해 다시 성찰하게 되었다.


중학교 1학년 시절부터 작년까지 이어져 온 가장 오래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 나는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함께했다. 청소년기 시절의 웃음과 고민, 청년기의 방황과 꿈, 그리고 결혼이라는 인생의 중요한 순간까지 곁에 있었다. 내 결혼식에서 그 친구가 부케를 받아 들었을 때, 나는 마음 깊은 곳에서 뿌듯함과 감사함을 느꼈다. 또한 우리는 여행을 가장 많이 같이 다닌 사이였다. 여름휴가 때면 서로의 일정을 조율해 같은 시기에 시간을 내어 함께 여행을 다녔다. 우리는 그야말로 인생을 공유한 동반자 같은 사이였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관계의 온도는 조금씩 달라졌다. 특별한 사건이나 다툼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거리를 두게 되었다. 내가 만나고 싶다고 연락을 하면 친구는 늘 자신이 일하는 가게로 오라고 했다. 절대 내가 있는 곳으로 오거나 따로 시간을 내서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오전 11시부터 저녁 7시까지만 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간 외에는 만남을 피했다. 결국 나는 그 친구가 있는 가게에서만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해하려고 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만남은 더 이상 즐거운 시간이 아니라 형식적인 의무처럼 느껴졌다. 함께했던 오랜 시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점점 마음의 간격이 벌어졌고, 결국 올해부터 연락을 끊게 되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 혼자만 끊게 된 건 아니다. 그 친구도 연락을 하지 않고 있으니, 어찌 보면 우리 둘의 우정은 언제부턴가 이미 어긋났을지도 모른다.


그 친구와의 관계를 돌아보면, 인간관계가 단순히 시간의 길이로만 평가될 수 없음을 느끼게 된다. 분명히 함께한 세월은 길었고, 공유한 추억도 많았다. 그러나 그 추억만으로 현재의 불편함을 덮을 수는 없었다. 처음엔 친구가 조금이라도 나에게 다가오려는 노력이 있었다면 관계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었다. 혹은 내가 더 배려를 했어야 했을 수도 있다. 무심코 내뱉은 말이 그 친구에게 상처가 되었을 수도 있을 거란 생각도 들었다. 오랫동안 이어온 관계가 무너지는 과정은 의외로 조용하고 서서히 진행되었다. 그래서 더 쓸쓸하고 허무하게 다가왔다.


그와 반대로 최근에 새로운 인연을 맺게 된 경험은 나에게 신선한 깨달음을 주었다. 출판사 대표님을 만난 일이었다. 우리가 제대로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 것은 불과 일주일 남짓이었다. 그러나 그 짧은 시간 안에서 나는 이상할 만큼 잘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대화의 흐름이 자연스러웠고, 서로를 배려하려는 태도가 분명히 보였다. 내가 출판사로 직접 찾아가면, 그다음에는 대표님이 내 시간을 배려해 내가 있는 곳으로 와주었다. 이런 작은 균형과 배려가 참 고맙고 편안했다.


나는 이 경험을 통해 인간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오래도록 곁에 있었다고 해서 반드시 나의 마음을 가장 잘 아는 것은 아니었다. 반대로 짧게 만났다고 해서 서로의 마음을 모르는 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관계 속에서 서로가 얼마나 배려하고 균형을 맞추려 노력하는가였다.


나는 종종 인간관계를 식물에 비유하곤 했다. 오래된 나무라고 해서 반드시 건강하게 자라는 것은 아니었다. 물과 햇빛이 부족하거나 많으면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죽어버렸다. 반면 갓 심은 묘목이라도 충분히 돌보면 빠르게 뿌리내리고 건강하게 성장했다.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월이라는 햇빛과 함께, 상호적인 관심과 배려라는 물이 있어야 했다. 오랫동안 내 곁에 있었다는 사실이 관계의 모든 것을 보장하지는 않았다.


또한 나는 인간관계가 균형이라는 단어와 밀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쪽만 움직이고, 한쪽만 희생한다면 그 관계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내가 일방적으로 친구가 있는 곳으로만 가야 했던 관계에서는 서서히 지침과 피로가 쌓였다. 하지만 대표님과의 관계에서는 내가 움직이면 상대도 움직여주었다. 그 균형은 작은 것이었지만, 관계의 의미를 크게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인간관계가 결국 ‘상호성’과 ‘배려’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다고 생각했다.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든, 짧은 시간을 함께하든 그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서로가 다가가려 하고, 상대의 마음을 존중하려는 노력이 있을 때 관계는 단단해졌다. 하지만 한쪽만 노력하거나 시간이 길다는 이유로 안일해질 때 관계는 쉽게 흔들렸다.


지금 나는 오랜 친구와의 추억을 여전히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하지만 그 추억이 현재의 관계를 억지로 붙들어주지는 못했다. 그와의 시간은 내 인생의 한 장이었고, 그 장은 이미 마무리되었다. 대신 새로운 인연이 내 앞에 다가왔고, 나는 그 속에서 인간관계의 다른 가능성을 보았다.


결국 인간관계란, 내가 누구와 얼마나 오래 있었는가가 아니라, 그 순간순간에 서로가 얼마나 진심으로 다가섰는가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오랜 친구에게서 멀어진 경험과 새로운 사람과 가까워진 경험을 동시에 가진 나는 이제 인간관계를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나는 과거를 원망하지 않고, 새로운 인연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간관계는 정해진 답이 없고, 늘 변화하며, 그 속에서 나 역시 성장한다고 느꼈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인간관계를 배워가고 있다. 어떤 관계는 나를 지치게 했고, 어떤 관계는 나를 단단하게 했다. 하지만 결국 모든 관계는 나를 성찰하게 하고, 더 나은 나로 살아가게 했다. 그것이 인간관계가 가진 힘이자 의미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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