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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우리는 제대로 하고 있는가?

스펙을 넘어선 아이들의 배움

by 유타쌤


우리 반 혜원(가명)이가 생물 동아리 면접에서 떨어진 뒤 찾아와 한숨 섞인 목소리로 상담을 요청했다. 사실 우리 학교 생물 동아리는 의예과 학생들의 ‘등용문’이라 불릴 만큼 오랜 역사를 지닌 학술 동아리다. 선배들의 진학 실적과 튼튼한 활동 덕분에 매년 높은 경쟁률을 기록한다. 서류와 면접을 거쳐 소수만 뽑는 까다로운 과정은 웬만한 열정으로는 넘기 어렵다.


문제는 혜원이의 꿈은 의예과가 아니라는 데 있었다. 그러나 누구보다 생물을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특히 새에 대한 애정은 대단했다. 운동장에서 날아가는 새를 보고도 종을 척척 구별하는 아이였고 언젠가 자신만의 탐조 일지를 쓰고 싶다고 말하던 표정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런 학생이 동아리 문턱에서 좌절했으니, 나도 마음이 무거웠다. 혜원이는 다른 과목에는 뚜렷한 흥미가 없다고 했다. 나는 그 아이에게 탁구나 배드민턴 같은 비교적 관심 있는 체육 동아리를 권했다. 대신 학급 차원에서 ‘진로 탐구’라는 이름의 활동을 만들어 혜원이 스스로 좋아하는 새를 관찰하고 기록하며 연구를 이어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것이 혜원이가 생물과 연결될 수 있는 작은 다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날 친한 선생님이 반 운영이 힘들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 반장, 부반장은 물론이고 임원 자리를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활기록부에 한 줄이라도 남기기 위해 서로 하겠다고 나섰던 자리였다. 하지만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졌다. 임원을 하지 않아도 진로와 관련된 탐구 활동만으로도 대학 입시에 필요한 기록을 충분히 채울 수 있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실제 입시 사례에서도 임원 경력보다는 전공 적합성이 더 강조되니, 학생들의 계산이 달라진 것이다. 책임만 늘어나는 자리는 외면하고 의미 있는 활동만 고르려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환경부장 자리만은 경쟁이 치열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분리수거를 담당하면 봉사 시간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학생들은 책임감보다는 ‘시간’이라는 눈에 보이는 실적을 얻기 위해 그 자리를 원했다. 교사인 내 입장에서는 임원의 본래 취지가 무너지는 듯한 장면이었다. 공동체 속 책임보다는 점수와 기록이 우선이 된 것이다.


이 두 가지 경험은 지금 우리 학교 현장의 변화를 상징한다. 하나는 특정 동아리가 ‘입시용 통로’처럼 굳어져서 순수한 열정만으로는 접근하기 힘들어진 현실이다. 또 하나는 임원 활동이 과거의 빛을 잃고 대신 봉사 시간이나 전공 탐구 활동처럼 곧바로 기록으로 이어지는 활동만 선호되는 현상이다. 결국 학생들의 선택은 개인적 성향이 아니라 제도의 방향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렇다면 교사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나는 제도라는 커다란 강물 속에서 아이들이 떠내려가지 않도록 작은 나룻배를 띄워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제도의 물살이 세다고 해서 학생들의 관심과 열정까지 휩쓸려 사라지게 둘 수는 없다. 혜원이의 ‘진로 탐구’ 활동처럼 학생이 진짜 좋아하는 일을 이어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는 것이 필요하다. 임원 활동 또한 단순한 스펙이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책임을 배우고 서로를 돌보는 경험으로 다시 살아나야 한다.


아이들이 전략을 세우며 움직인다고 해서 이를 문제삼기만 할 수는 없다. 당장 입시가 코앞인 상황에서 어떤게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지를 계획하지 않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육마저도 거기서 멈추어서는 안 된다. 학생들이 제도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만의 길을 찾으며 동시에 함께 살아가는 의미를 깨닫도록 돕는 것이 교사의 사명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혜원이처럼 자신이 사랑하는 것을 놓치지 않고, 또 다른 학생들처럼 공동체 안에서 책임을 기피하지 않는 그런 모습이다.


나는 언젠가 우리 아이들이 대학 입시라는 좁은 문을 넘어 더 넓은 삶의 무대에서 스스로의 열정을 지키고 함께 살아가는 힘을 보여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것이 내가 교사로서 지켜가고 싶은 교육의 역할이다. 학교는 단순히 지식과 스펙을 쌓는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의 관심을 발견하고 그것을 끝까지 밀고 나갈 용기를 배우는 삶의 장이어야 한다. 교사는 학생들이 제도의 틀 속에서 좌절하지 않도록 곁에서 지켜주고, 때로는 길을 함께 찾아주는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어른들은 성적과 실적만을 앞세우는 사회적 잣대를 넘어서 아이들이 진정으로 좋아하는 일을 존중하고 지켜줄 수 있는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아이들은 제도의 장벽 앞에서도 꺾이지 않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끝내 이어갈 수 있다. 나는 아이들이 그런 힘을 품고 성장하기를, 그리고 우리가 그 길을 지켜주는 든든한 어른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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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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