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강함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때 드러난다.
예전에 우리 반에 공부를 굉장히 잘하는 학생이 있었다. 성적이 늘 상위권이었고, 수행평가나 과제 제출에서도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 그런데 어느 날 그 학생이 나에게 다가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선생님, 제가 큰 잘못을 했어요. 용서해 주세요.”
나는 순간 놀랐지만, 학생의 표정을 보며 진심이 담긴 사과임을 직감했다. 무슨 일인지 묻자 학생은 어제 내 컴퓨터 바탕화면에 있던 9월 모의고사 성적 파일을 자신의 이메일에 첨부해서 가져갔음을 고백했다. 생각해 보니, 그 날 학생이 수행평가 자료를 자신의 이메일로 보냈다며 집에는 프린터가 없어 내가 출력해 줄 수 있냐고 부탁했었다. 나는 흔쾌히 허락했고 학생이 직접 내 자리에 앉아 출력하도록 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수행평가 파일만 출력한 것이 아니라 내 바탕화면에 있던 성적 파일까지 첨부해 갔다는 것이다. 다행히 학생은 곧바로 후회하며 메일을 열어보지도 않고 삭제했다고 말했다.
“정말 순간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알았지만, 그냥 호기심 때문에… 저도 모르게 했습니다. 파일을 열지도 않았고, 바로 삭제했습니다. 선생님, 용서해 주세요.”
그 말을 들으며 나는 여러 감정을 느꼈다. 학생이 솔직하게 고백한 용기와 동시에 내가 중요한 파일을 바탕화면에 비밀번호 없이 둔 부주의함도 떠올랐다.
나는 학생에게 차분히 말했다.
“잘못된 행동이지만, 바로 인지하고 삭제한 것도 의미가 커. 그리고 이렇게 직접 사과하러 온 용기는 대단하다고 생각해. 하지만 잘못은 잘못이니까 네 스스로 어떤 식으로 책임을 져야 할지 정해 보렴. 공식적인 벌이 아니라, 우리 둘만 아는 비공식적인 약속으로 말야.”
학생은 잠시 고민하더니 일주일 동안 매일 아침 30분 일찍 등교해 교내를 돌며 쓰레기를 줍겠다고 약속했고, 실제로 그 약속을 성실히 지켰다.
사실 사과만으로 해결되는 일은 생각보다 많다. 하지만 십대 아이들은 그 한마디를 무척 어려워한다. 늦잠을 자서 지각하거나 수행평가를 잊은 경우에도 단순히 “죄송합니다.”라는 말 한마디면 끝날 일이지만, 아이들은 쉽게 꺼내지 못한다. 오히려 “영찬(가명)도 저번에 늦었잖아요. 왜 저만 뭐라고 해요?”라고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거나, “엄마가 안 깨워줬어요.”라며 책임을 회피한다. 더 심한 경우에는 “저는 제시간에 왔는데요. 배 아파서 화장실 다녀오느라 늦은 거예요.”라며 거짓말을 하기도 한다. 자신이 잘못했음을 인정하고 사과하면 간단히 끝날 일을, 아이들은 괜히 더 복잡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아이들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른들에게도 사과는 여전히 어렵다. 작은 잘못 하나에도 체면이 깎일까 두려워 말을 삼키고, ‘내가 먼저 사과하면 진 사람이 되는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그래서 “사과는 약자의 행동”이라는 잘못된 믿음을 품은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사과를 먼저 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는 강한 사람이다.
사과가 어려운 또 다른 이유는 상대방의 반응을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혹시 내 사과를 받아주지 않으면 어쩌지?’, ‘내가 인정한 잘못을 더 크게 부풀려 비난하면 어쩌지?’라는 두려움이 사람을 주저하게 만든다. 하지만 회피하거나 변명으로 덮으려 하면 오히려 관계는 더 멀어진다. 짧고 솔직한 사과 한마디가 갈등을 훨씬 빠르게 봉합한다.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한다. 완벽하지 않은 세상에서 완벽하지 않게 살아가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실수를 숨기거나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을 지고 사과할 수 있는 용기다. 그 용기가 관계를 회복시키고, 결국 자신을 성장시키는 힘이 된다.
그날의 사건을 통해 나는 사과가 단순한 ‘말’이 아니라 ‘행동’이며 그 행동 하나가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짧은 사과가 때로는 수많은 오해와 불신을 녹일 수 있다.
학생이 용기를 내어 사과하러 온 순간 나는 진정한 성장이 무엇인지 다시 배웠다. 작은 호기심에서 비롯된 실수가 솔직한 사과와 반성을 통해 배움으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보았고 아이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도 용기 있는 행동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사과는 나를 낮추는 행동이 아니라, 오히려 나를 더 크게 세우는 시작점이다. 진심 어린 사과가 모일 때 우리는 더 단단한 관계와 더 성숙한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다. 그래서 결국 사과는 용기가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가장 큰 힘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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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써온 글이 '나도 10대는 처음이라서'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저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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