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종이 울리기 5분 전 새로운 영어 지문을 시작하자 아이들이 “아!” 하고 탄성을 내뱉었다. ‘그만하고 싶다’, ‘쉬고 싶다’는 마음이 느껴졌다. 오랜 시간 수업을 이어온 나는 아이들의 집중력이 떨어지는 순간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집중력은 노력하면 올라간다”라고 말하며 수업을 계속 진행하려 했다.
그때였다. 평소 수업시간에 엎드려 있거나 집중하지 않던 진주(가명)가 작은 목소리로 “짜증 나”라고 말했다. 그 소리는 너무 작아 스스로에게 한 말일 수도, 나를 향한 말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잔소리를 하던 내게 던진 말이었음을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나는 못 들은 척 수업을 이어갔지만 마음은 편치 않았다.
며칠 뒤 수행평가 시간이 되었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스마트폰 앱을 활용해 디자인 작업을 하는 가운데, 진주는 손으로 직접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나는 놀라서 “와, 너무 멋있다!”라고 말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예전의 말에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이고 싶기도 했고, 앞으로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 칭찬 이후 진주는 복도에서 나를 보면 인사를 하기 시작했고, 어느새 우리는 농담도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돌아보니 아이들은 때때로 미워 보일 때가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여전히 어른의 칭찬과 관심, 사랑이 필요한 존재였다. 반항적인 말이나 행동조차 결국은 서툰 감정 표현일 뿐이었다. 나는 그동안 아이들을 어른의 시선으로만 바라본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게 되었다. 아이들은 모두 다르고 누구도 완벽하지 않으며, 각자 성장의 길 위에 서 있다.
수업 시간에 엎드려 있던 진주는 단지 지치고 힘들었을지도 모른다. “짜증 나”라는 말은 쌓인 피로와 불만의 작은 표현이었을 뿐이다. 그때는 상처로 다가왔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것이 나를 향한 직접적인 공격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이들은 자기감정을 온전히 표현하지 못하고 때로는 서툰 말로 드러낼 뿐이다.
그래서 교사는 아이들의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이지 않고, 그 이면의 마음을 읽어야 함을 느낀다. 반항적 태도나 불평은 성장통일 뿐이고 그 과정을 지나면서 아이들은 조금씩 성숙해지며 서로를 이해하는 어른으로 자라난다. 나는 그 길에서 아이들이 겪는 어려움과 좌절도 소중한 배움이라 생각하게 되었다.
진주가 복도에서 나에게 처음으로 인사하던 때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왜 밖에 나와있냐는 나의 질문에 사물함에서 물건을 꺼내려고 나와 있었다고 대답했지만, 왠지 진주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믿고 싶은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순간 ‘나는 여기 있다, 이해받고 싶다, 인정받고 싶다’라는 아이의 마음이 전해졌다. 모든 아이들은 자세히 보면 다 소중한 존재였다. 그 소중함은 성적이나 태도가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 자라고 있는 가능성과 진심에 있었다.
아이들의 서툰 말과 행동은 모두 성장의 흔적이다. 그 흔적을 존중할 때 아이들은 자신을 믿고 더 큰 세상으로 나아갈 힘을 얻게 된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교실에서 아이들의 마음을 읽으며 그들과 함께 성장하는 길 위에 서 있다. 언젠가 그 아이들이 자신을 믿고 당당히 세상으로 걸어 나갈 때 그 여정에 함께한 교사로서 깊은 보람을 느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오늘도 하루를 힘차게 시작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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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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