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완성되지 않은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
교실에 앉아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늘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는 것 같다. 시험이 끝난 날, 성적표를 받아 들고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아이가 있고, 억울한 듯 “선생님, 저 진짜 열심히 했는데 왜 이렇게밖에 안 나왔을까요?”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상담하던 중 한 학생은 자신이 진흙탕 속에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이곳에 나가려고 발버둥 쳐도 도무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더 속상한 것은, 주변 사람들은 자신이 여전히 같은 자리에 멈춰 서 있다고만 생각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는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진흙탕 위에서의 발걸음은 더디고 무겁지만, 분명히 땅을 딛는 순간마다 작은 흔적이 남고 그 흔적들이 결국 길을 이어 간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야.”라는 말은 너무 흔해 식상하게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좌절감에 휩싸인 아이들을 볼 때마다 나는 이 말의 본질적인 힘을 다시금 느낀다. 아이들의 걸음은 마치 미로 속을 헤매는 것과 같다. 출구를 찾지 못해 같은 자리를 맴도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 안에서 끊임없이 길을 찾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길을 갔다가 돌아서는 순간조차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된다.
아이들은 시험 점수라는 숫자로 자신을 평가한다. 그 숫자가 낮게 나오면 자기 자신 전체가 부정당한 것처럼 느끼곤 한다. 그러나 교사인 내 눈에는 그 좌절조차 아이들이 성장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아이들의 시계는 고장 난 것처럼 멈춘 것 같아 보여도 사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시간이 흐르고 있다. 지금은 정지해 있는 듯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수업 중간중간 아이들에게 노력에 관한 말을 전하곤 한다. 어제는 이렇게 말했다.
“진짜 패배자는 넘어지는 사람이 아니라, 다시 일어나지 않는 사람이야.”
이 말을 듣고 한 명이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멈췄던 발걸음을 다시 떼어 놓기를 바랐다. 아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결코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계단을 오르듯 천천히라도 계속 나아가는 것이라는 걸 알려주고 싶었다. 한 계단 한 계단은 작고 미약해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면 이미 꽤 높은 곳에 올라와 있다는 걸 언젠가 느끼게 되었음, 하는 나의 작은 바람이었다.
한 번은 진로를 고민하는 고1 학생이 내게 물었다.
“선생님, 저는 뭘 해도 잘 못하는 것 같아요. 어떻게 해야 해요?”
나는 잠시 생각한 뒤 아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지금 하는 고민 자체가 이미 잘하고 있다는 증거야. 방향을 찾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건 이미 길 위에 있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나중에 네가 진짜 하고 싶은 게 생겼을 때 선택할 수 있도록 지금 너의 가치를 높여야 해. 네가 학생이니까 학교생활, 공부, 성적으로 네 가치를 높여야겠지. 그러다가 나중에 고3이 되면 네 성적으로 갈 수 있는 학과를 고르는 게 아니라 네가 가고 싶은 학과를 고를 수 있게 될 거야. ”
넘어짐은 아이들을 가두는 덫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아이들이 자신만의 방향을 찾아 나아가도록 돕는 지도와 같다. 좌절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고, 실패는 멈춤이 아니라 배우는 과정이다. 교사인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 과정을 지켜보며 필요할 때 손을 내밀어 함께 길을 걷는 것이다.
“선생님, 저 조금 더 해 볼게요.”
이 말이 교사인 나에게는 어떤 말보다 큰 힘을 준다. 아이들이 마음속 두려움을 떨쳐내고 다시 발을 내디딜 때, 그 작은 움직임 속에 미래가 숨어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실히 느낀다. 넘어짐을 경험한 아이들은 스스로의 한계를 알아가고, 그 한계를 하나씩 넘어서는 법을 배우며 조금씩 단단해진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교실에서 아이들에게 말한다.
“지금은 어렵고 막막해 보일 수 있어. 하지만 너의 한 걸음 한 걸음이 쌓이면 언젠가 스스로도 몰랐던 힘과 가능성을 발견하게 될 거야. 포기하지 말고, 계속 나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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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써온 글이 '나도 10대는 처음이라서'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저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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