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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서를 읽지 않는 아이들

글 읽기의 힘 읽기의 힘

by 유타쌤

친한 일본어 선생님이 아이들과 함께 할 활동이라면서 ‘풍경 만들기 세트’를 보여주었다. 나는 전부터 일본 애니메이션을 볼 때마다 절이나 집 처마에 걸린 풍경이 바람에 나부끼는 장면이 참 좋았다고 말했다. 그 맑고 청량한 소리가 여운으로 남는다고 하자, 일본어 선생님은 “일본에서 유학할 때도 그 소리를 자주 들었다”라고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그 느낌을 느껴보면 좋겠다”라고 덧붙였다.


며칠 뒤, 수업을 마치고 나온 일본어 선생님에게 물었다.
“풍경 만들기 활동 어땠어요?”
“재미있긴 했는데 다 못 끝냈어요. 다음 시간에도 만들어야 해요.”
“어려웠어요? 설명서에 잘 나와 있던데.”
“그게요, 아이들이 설명서를 안 읽더라고요. 그냥 대충 만들다가 잘 안 되면 손을 들어 저를 불러요. 설명서만 봤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글을 보려 하지 않아요.”

이야기를 들으며 나도 모르게 고개가 끄덕여졌다.


요즘 교사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말이 있다.

“아이들은 글을 잘 읽지 않는다.”

무언가가 필요하면 짧은 영상이나 요약된 콘텐츠로 대부분의 정보를 얻으려고 하지, 글을 통해 정보를 습득하려고 하지 않는다. 나 역시 영화나 드라마, 혹은 어떤 정보를 알고 싶을 때 책을 찾아보기보다는 유튜브 영상을 먼저 찾는다. 하물며 십 대 아이들은 어떠하겠는가? 그래서 풍경 만들기를 한 시간 안에 끝내지 못한 이유가 ‘설명서를 읽지 않아서’라는 선생님의 말이 더욱 공감이 되었다. 단순한 만들기 활동의 실패가 아니라 글을 읽지 않는 습관의 단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점심시간에 국어 선생님과 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국어 시험지를 보면 지문이 엄청 길잖아요. 애들이 긴 글을 보는 것 자체를 힘들어해요. 그냥 보기만 해도 숨이 막힌다고 해요. 어휘력도 부족하니까 문맥을 통해 의미를 유추하는 능력도 떨어져요. 결국 글을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고, 재미없다고 느끼죠.”

국어 선생님은 “짧고 자극적인 영상이나 쇼츠, 이미지 중심의 콘텐츠에 익숙하다 보니 글을 차분히 읽고 이해하는 과정 자체가 줄어든 것 같아요.”라고 덧붙였다.


그 말을 들으며 이것은 단순한 학습 태도의 문제가 아니라 지식과 정보에 접근하는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는 변화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머지않은 미래에는 긴 글로 이루어진 정보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르겠다.


니콜라스 카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란 책에서 “우리가 점점 스크린 위의 단편적인 정보에만 의존하게 되면, 깊이 있는 사고와 집중력이 약화된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오늘 일본어 수업에서 벌어진 일은 바로 그 경고를 실감하게 하는 순간이었다. 글을 읽고 이해하는 과정 속에서 우리는 단순한 정보를 넘어 맥락과 의미를 파악하고 상상하며 깊이 사고하는 법을 배우는데 그 과정을 아예 경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들이 설명서를 읽지 않는 모습을 보며, ‘글 읽기의 힘’이 점점 잊히고 있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그러나 이 문제는 아이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니콜라스 카의 책 내용처럼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은 글 대신 짧은 영상으로 소통하고 있다. 하지만 글을 읽는 행위는 단순히 정보를 이해하는 것을 넘어, 생각을 정리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기르는 가장 중요한 습관이다.


요즘 사회는 빠른 정보와 즉각적인 자극에 익숙해져 있다. 그러나 글을 읽고 사고하는 습관을 잃는다면 우리는 중요한 능력을 함께 잃게 된다. 글은 단순한 전달 수단이 아니라, 인간의 사고를 깊게 만들고 삶의 질을 결정짓는 열쇠다.


그래서 교사이자 어른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단순히 “글을 읽어봐”라고 말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아이들이 글을 읽는 즐거움을 경험하게 해야 한다. 설명서를 읽을 때도, 교과서의 문장을 접할 때도, 그것이 단순히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여는 열쇠’라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예를 들어 수업 속에서 짧은 글 한 편을 함께 읽고, 그 안의 문장 하나를 곱씹으며 대화하는 시간만으로도 아이들은 글 속에서 ‘생각이 자라는 경험’을 하게 된다.


또한 어른들 스스로도 아이들의 거울이 되어야 한다. 스마트폰 화면을 내려놓고 책 한 권을 읽거나, 긴 글을 함께 읽으며 느낀 점을 나누는 모습이 아이들에게는 가장 강력한 교육이 된다. 읽고, 생각하고, 다시 표현하는 과정을 반복할 때 비로소 사고의 깊이가 생긴다.


그래서 나는 쇼츠화된 세상 속에서도 글을 읽고 생각하는 힘을 지키는 일이야말로, 우리가 아이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가장 값진 교육이라는 생각을 다시 해본다. 그리고 그 시작은 아주 사소한 한 문장을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는 것에서부터 가능하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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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써온 저의 글들이 '나도 10대는 처음이라서'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저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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