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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대들의 도박

한 번쯤은 괜찮다는 착각

by 유타쌤


근처에 있는 타 고등학교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 학교의 학생이 우리 학교 A학생에게 돈을 빌려줬는데, 그 돈을 돌려받지 못해서 결국 선생님에게 말했다는 것이다. 빌려준 금액이 무려 백만 원 가까이 된다는 말에 순간 귀를 의심했었다. 학생이 그렇게 큰돈을 어떻게 빌려줬을까 싶었는데, 알고 보니 2년에 걸쳐 여러 번 나누어 빌려줬다고 했다. 나는 곧바로 A학생을 불러 자초지종을 물어봤다. 처음엔 말끝을 흐리던 A가 한참 후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아는 형이 알려줘서 스포츠 OO도 하고... 그러니까 도박을 했어요.”라는 말이었다. 충격이었다. 더 알아보니 A는 같은 반 친구들 몇 명에게도 돈을 빌려 총 180만 원 가까운 돈을 손에 쥐었고, 그 대부분을 온라인 도박에 쏟아부었다고 했다. 결국 아버지와 통화했고, 아버지는 모든 돈을 갚겠다고 했다. 통화 내내 들려오던 아버지의 한숨과 “어쩌다 우리 아이가…”라는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문제는 A학생뿐만이 아니었다. 그 학생은 돈을 친구들에게 “이거 하면 돈 벌 수 있어”라며 다른 아이들까지 도박에 끌어들였던 것이다.


그 사건 이후로 나는 ‘도박’이라는 단어가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른들 세계의 문제로만 여겼던 도박이 이제는 교실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스마트폰 한 대로 게임처럼 접근할 수 있는 불법 사이트들은 아이들에게 “한 번만 해봐도 된다”는 유혹을 건넸다. 그러나 그 ‘한 번’이 인생의 방향을 송두리째 바꿔버릴 수 있다는 것을 아이들은 몰랐다.


실제로 최근 뉴스에서도 청소년 도박 문제의 심각성이 잇따라 보도되었다. 경찰청에 따르면 작년 한 해 동안 검거된 사이버 도박 관련 인원 중 청소년 비율이 절반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단 2년 전만 해도 극히 일부였던 청소년 도박이 27배 이상 증가했다는 통계는 충격적이었다. 한 고등학생이 용돈 몇만 원으로 시작했다가 점점 금액이 커져, 결국 부모 명의 계좌에서 수백만 원을 이체해 도박을 이어갔다는 기사도 있었다. 심지어 도박 빚을 갚기 위해 친구나 낯선 사람을 상대로 중고거래 사기를 저지른 사례도 있었다.


도박의 시작은 대부분 ‘호기심’이었다. “운이 얼마나 좋은지 시험해보고 싶었다.”, “게임처럼 한 번 해봤다.”는 말들이 반복되었다. 그러나 승리의 순간이 찾아오면 그 짜릿함이 뇌에 각인된다. 한 번 이겼던 기억은 “이번에도 될 것 같다.”는 착각을 만든다. 그 착각이 반복될수록 현실감각은 무뎌지고 손실은 커진다. 워런 버핏이 “작은 돈으로 큰돈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만큼 위험한 환상은 없다.”라고 말했듯이 이런 착각이 굉장히 위험하다는 걸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도박의 본질은 불확실성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확률의 냉정함을 알지 못한 채 ‘내가 하면 다를 것이다’라는 자기 확신에 빠진다. 청소년기는 뇌의 판단력과 충동 조절을 담당하는 부위가 완전히 발달하지 않아서 짧은 쾌락에 쉽게 휘둘리게 된다. 학업 스트레스, 친구 관계, 가정의 갈등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그들은 도박을 ‘현실을 잊게 해주는 도피처’로 착각하기도 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도박사'의 주인공도 그런 착각 속에서 파멸로 향했다. 그는 매번 “이번에는 다를 것이다.”라며 도박판에 앉았지만 결국 모든 것을 잃었다. 인간의 욕망이 얼마나 스스로를 속이는지를 보여주는 이야기였다. 도박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 내면의 욕망과 통제력의 싸움이라는 사실을 이 소설은 말해주고 있다.


우리 학교 A학생 역시 처음엔 단순한 호기심으로 시작했다고 했다. “처음엔 같은 동네 사는 형이 알려줘서 재미로 했어요. 한 번 이겼는데, 그다음부터 멈출 수가 없었어요.” 그의 말은 소설 속 인물의 독백과 다르지 않았다. 아이는 결국 돈을 잃고, 친구 관계를 잃고, 자신에 대한 신뢰까지 잃었다. 도박을 막는 것은 단순히 스마트폰을 뺏거나 사이트를 차단하는 것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아이들에게 스스로의 욕망을 다스리는 힘, 즉 ‘자기 통제력’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느리지만 확실한 성취를 추구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톰 스토파드는 “인생은 끔찍한 확률의 도박이다. 진짜 내기였다면 누구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그 끔찍한 확률의 세계에 너무 쉽게 발을 들여놓는다. SNS와 광고는 “오늘은 당신이 이길 차례”라고 속삭이고, 게임처럼 꾸며진 도박 앱은 그 속삭임을 현실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러나 결국 남는 것은 잃어버린 돈과, 자신을 탓하는 마음뿐이었다.


A학생은 이후 상담을 받으며 서서히 학교생활을 회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돈을 빌려줬던 친구들과의 관계는 이미 무너졌고, 도박에 연루된 다른 친구들도 가정과 학교에서 크게 혼이 났다. B는 결국 위탁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학교를 떠났다.


도박 없는 교실은 단속만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아이들이 스스로의 욕망을 이겨내고, 진짜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는 순간에야 비로소 가능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사와 어른들의 역할이 크다. 우리는 단순히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 존재가 아니라, 아이들이 넘어질 때 옆에서 붙잡아 주는 울타리가 되어야 한다. 돈이 아닌 성취의 기쁨을, 이기는 것이 아닌 성장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어른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사소한 변화나 작은 움직임에도 귀 기울일 줄 알아야 한다.


가끔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킨 학생의 부모와 통화를 하다 보면 “학교에서 잘하고 있을 줄 알았어요.”라는 말을 듣는다. 집에서는 대화를 거의 하지 않고, 사춘기라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다는 말도 자주 들었다. 하지만 아이들의 변화는 그렇게 쉽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실제로 A학생도 1학년 말부터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나와 이야기를 할 때면 긴장한 듯 눈을 피했고, 지각도 잦았다. 2학년에 올라와서는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점점 멀어지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나 나 역시 ‘사춘기인가 보다’라고 생각하며 그 신호를 놓쳤었다. 그것은 나의 오만이었던 것이다.


나는 오늘도 그 반성 위에서, 또 다른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이들의 말과 표정, 그 작은 떨림 하나에도 귀 기울이려 노력한다. 교실은 단지 공부를 배우는 공간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을 다시 세우고 세상을 배워가는 삶의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복도를 지나가는 아이들에게 “요즘은 어때?” “별일 없지? 늘 응원하고 있다는 거 잊지마."라는 짧은 말 속에 내 마음과 믿음을 전한다. 그 믿음이 언젠가 도박의 유혹보다 더 강한 희망으로 자라나길, 그리고 아이들의 내일을 지켜주는 힘이 되길 바라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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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써온 작가의 글들이 '나도 10대는 처음이라서'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저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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