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름의 시대에서 느림을 택하다.
주변에서 하도 ‘폭싹 속았수다’가 너무 재밌다고 해서 보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1화도 끝까지 보지 못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나에게 너무 길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조금만 더 보자’하면서 몇 번을 시도했지만 어느새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고 짧은 영상으로 눈을 돌리고 있었다. 결국 드라마 전체를 보는 대신 유튜브에 올라온 하이라이트 영상과 요약 리뷰로 내용을 파악했다. 짧은 클립들을 이어 붙여 마치 다 본 사람처럼 친구들과 드라마 이야기를 주고받았지만, 사실 나는 ‘보지 않았는데 본 사람’이었다.
생각해 보니 이런 일이 처음은 아니다. ‘오징어게임’이 세상을 뒤흔들던 때에도 나는 단 1화도 보지 않았다. OTT 서비스는 가입되어 있었지만 그건 온전히 아이들이 보는 애니메이션 때문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마지막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본 드라마가 ‘나의 아저씨’였다. 그 이후로는 온전히 끝까지 본 작품이 없었던 것 같다.
요즘의 나는 쉬는 시간에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책을 읽거나 드라마를 보는 대신, 짧은 쇼츠나 릴스 영상으로 시간을 때운다. 영화 한 편을 보는 대신 영화 소개 영상을 보고 책 한 권을 읽기보다는 누군가의 책 요약 영상을 본다. 편리함과 효율성이라는 이름으로 시간을 절약하지만, 그 과정에서 ‘깊이 있는 감상’이라는 경험을 잃어버리고 있다.
한때 나는 “요즘 사람들은 책을 읽지 않는다”라고 한탄하는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책이 아니라 영상미 좋은 작품조차 제대로 감상하지 못하고 있다. 짧은 시간에 핵심만 파악하려는 습관이 어느새 내 감정의 호흡까지 짧게 만들어 버린 것 같다. 긴 호흡으로 인물의 감정을 따라가고, 한 장면에 머무는 시간을 견디는 힘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미국 에세이 작가인 아나이스 닌은 “나는 깊이를 두려워하지 않지만, 얕은 삶은 두려워한다”라고 했다. 빠르게 소비되는 이야기 속에서 나는 잠시 편안함을 느끼지만, 끝나고 나면 아무런 여운이 남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의 나는 이야기를 감상하는 법을 잊어버린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나도 짧은 영상 대신 긴 이야기에 마음을 내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한 장면, 한 문장에 머무르며 그 속의 감정과 생각을 온전히 느끼는 시간. 그것이 어쩌면 잊고 있던 나를 다시 만나는 첫걸음일지도 모른다. 깊은 이야기는 서둘러 끝내려는 이에게 결코 마음을 열지 않는다. 인물의 숨결이 내 안에 스며들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고 감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잦아들기까지는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그 느림의 시간을 너무 오래 잊고 살았다. 그러나 되돌아보면, 우리가 진정으로 성장했던 순간들은 언제나 ‘오래 머문 시간’ 속에 있었다. 한 문장을 오래 음미하며 밑줄을 그을 때, 한 사람의 말을 마음속에서 되뇌일 때, 그리고 한 장면 앞에서 조용히 숨을 고를 때였다.
이제는 느림의 예술을 다시 배우고 싶다. 깊은 이야기에 마음을 기울이며 그 안에서 생각의 결을 다듬는 법을 익히고 싶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나를 다시 만나고 싶다. 짧고 자극적인 세상의 속도를 잠시 멈추고, 느리지만 깊은 이야기 속으로 다시 걸어 들어가고 싶다. 그 안에서 나는 조금 더 천천히, 그러나 조금 더 진심으로 살아가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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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써온 작가의 다른 글들이 '나도 10대는 처음이라서'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저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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