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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숨길뿐이다

by 유타쌤

사람들은 흔히 나이가 들면 성격이 변한다고 말한다. 인생 경험이 쌓이고 여러 갈등과 관계를 겪다 보면 사람의 태도도 달라지고, 인간적으로 성숙해진다고 믿는다. 나 역시 한동안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내 주변에서 오랫동안 보아 온 한 선생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그 믿음이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오히려 사람은 변하는 것이 아니라, 잠시 억눌려 있던 본래의 성향이 다시 드러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내가 이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것은 30대 초반이었다. 모임을 통해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첫인상부터 쉽지 않았다. 그는 전형적인 마초 스타일이었다. 자기 의견이 언제나 옳다고 굳게 믿었고 다른 사람이 조금이라도 다른 견해를 내비치면 마치 자기 존재 전체를 부정당한 것처럼 분노했다. 얼굴이 붉어지고 말투는 공격적이었으며, 내 편이 아닌 사람은 가만두지 않겠다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나는 개인적인 만남을 피하고 모임이라는 틀 안에서만 적당히 거리를 유지했다. 흥미롭게도 그 선생님은 모임의 대표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40대가 되면서부터 그는 한층 부드러워졌다. 여유가 생겼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줄 아는 모습도 보였다. 예전의 마초적인 태도는 옅어졌고, 때로는 남을 배려하는 말과 행동도 했다. 나는 그제야 사람은 나이가 들면 변할 수 있구나 하는 희망을 품었다. 마치 연륜과 경험이 성격을 다듬어 주는 듯 보였다.


하지만 그 기대는 계속가지 않았다. 그 선생님이 50세를 넘기면서 다시 달라지기 시작했다. 부드럽고 온화하던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30대 초반에 처음 보았던 거칠고 자기중심적인 태도가 되살아났다. 모임 자리에서 트림을 크게 하거나, 하품을 일부러 소리 내며 하면서 '네 말은 지루하다'라는 무언의 메시지를 보내는 모습은 당혹스러웠다. 말투도 거칠어지고 결국 예전의 그 마초적 기질이 다시 전면에 드러났다. 나는 그때 깨달았다. 나이가 사람을 바꾸는 것이 아니라 억눌려 있던 본래의 성향이 시간이 흐르면서 다시 튀어나오는 것일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렇다면 왜 나는 여전히 그 선생님과의 만남을 이어가고 있을까? 솔직히 말하자면 그 선생님이 모임의 대표이기도 했지만 교육자로서의 능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능력이 뛰어나고 교육청 관계자들과도 폭넓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다. 모임이나 술자리에서는 대장처럼 군림하지만, 실제로는 일에서는 성과를 내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불편하지만 무시할 수 없는 존재로 남아 있는... 밉지만 미워할 수 없는 그런 사람이었다.


이 선생님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종종 내 아들을 생각한다. 아들도 타고난-그것도 그리 좋지 않은-그런 성향이 분명히 있다. 하지만 아들은 자라면서 자신의 본능을 억누르려고 노력하고 있다. 그대로 드러냈다가는 학교에서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는 상황에 맞게 스스로를 조절하려 애쓰고 그 과정에서 성숙해지고 있다. 나는 아들을 보면서 사람이 사회 속에서 살아가기 위해 얼마나 많은 자기 절제를 필요로 하는지 새삼 느낀다.


이렇게 어린아이도 타고난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면 갈등이 생기고 문제에 부딪히니 억누르려 애쓰는데 나이 든 어른들은 어떠한가? 그들은 한동안 사회적 요구와 역할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절제하며 살아왔을 것이다. 하지만 일정한 시점이 지나면 다시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는 경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억눌러온 성향이 결국은 다시 얼굴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는 이 모습을 보면서 씁쓸함을 느낀다. 나이가 성숙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본래의 성향을 완전히 바꾸기는 어렵다는 현실 때문이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나이와 무관하게 끊임없이 자기 절제를 유지하려는 노력이다. 잠시 억누른다고 해서 그 성향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며 방심하는 순간 다시 튀어나온다. 그 점에서 어린아이의 노력과 어른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변하지 않는다. 다만 잠시 감추어두거나 조절할 뿐이다. 진정한 성숙은 나이가 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본능을 끊임없이 다스리고 억누르려는 지속적인 노력에서 비롯된다.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자기만 옳다고 믿고 남을 배려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은 결국 본래의 성향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일 뿐이다. 그렇기에 나는 내 아들이 보여주는 자기 절제의 태도가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 태도가 어른이 되어서도 이어진다면, 아들은 단순히 나이를 먹는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의 인스타: https://instagram.com/yuta_ss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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