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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생긴 남자와의 차사고

진정한 모습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다. 하지만 처음엔 안 보인다는 사실!

by 유타쌤

그날은 15년 전, 출근길 아침이었다. 나는 차선을 바꾸려다 속도를 줄인 앞차를 ‘살짝’ 긁었다. 정말이지 살짝이었다. 오래된 중고차를 몰던 나는 블랙박스도 없었고, 무엇보다도 차에 남은 흠집이 그다지 크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앞차에서 내린 사람을 보는 순간, 묘하게 안심이 되었다. 깔끔한 양복 차림에 잘생긴 얼굴, 삼십 대 정도로 보이는 남성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차를 한 번 둘러보더니 “이 정도면 큰일 아니니 직장 근처에서 수리하고 연락하겠습니다”라고 말했다. 태도는 매너 있었고 말투는 부드러웠다. 순간 나는 ‘아, 다행이다’라는 생각을 하며 그를 전적으로 신뢰해 버렸다.


그러나 다음 날 보험사에서 걸려온 전화는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그 남자가 뒷좌석 동승자 두 명과 함께 병원에 입원했다는 것이었다. 보험사 직원은 사고 현장의 사진과 상황을 확인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런 증거도 없었다. 찍어둔 사진은 없었고 내가 가진 건 오직 그 남자의 “괜찮다”는 말뿐이었다. 나는 보험사 직원에게 “정말 괜찮다고 했어요. 멀쩡해 보였어요.”라며 변명 아닌 변명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잘생긴 외모와 믿음직한 말투가 사람을 안심시키고 믿음을 주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그것만으로는 아무것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말이다. 외모는 첫인상을 좌우하는 힘을 가지지만 진짜 신뢰는 태도와 책임감 같은 더 깊은 곳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을 나는 전혀 몰랐던 것이다.


최근에 사회생활에서 외모가 얼마나 중요한가에 대한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한 기사에서는 우리가 외모지상주의 사회에 살고 있는 것 같냐는 질문에 ‘잘생기거나 예쁜 외모가 사회적 혜택을 받는다고 생각한다'는 응답이 무려 98.1%에 달했다는 설문 결과가 실려 있었다. 또 다른 기사에서는 성인 10명 중 9명이 인생에서 외모가 중요하다고 답했다는 조사 결과를 소개했다. 숫자만 놓고 보아도 외모가 단순한 개인의 특징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와 기회를 좌우하는 힘이 된다는 사실이 분명해 보였다.


돌이켜 보면 외모의 사회적 힘을 부정할 수는 없다. 나도 교사 면접을 볼 때 같은 조건이라면 조금이라도 용모가 뛰어난 사람에게 점수를 더 주었기 때문이다. 어쩌겠는가? 나 또한 외모가 사회적 평가와 밀접히 엮여 있는 현실 속에서 살아가는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그날, 잘생긴 남자와의 차사고는 내게 아주 단단한 교훈을 남겼다. 외모는 신뢰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 상대의 첫인상만 믿고 섣부르게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 그리고 언제나 증거를 남겨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김주미 작가의 '외모는 자존감이다'라는 책에는 시간이 갈수록 얼굴과 몸이 변하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지만, 다가올 미래의 모습을 만족스럽게 만드는 것은 오직 자신의 행동과 태도에 달려있다고 강조한다. 리즈 시절을 그리워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딱 알맞은 구절이 아닌가 싶다. 일명 ‘포샵’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으며, 결국 외모나 과거에 집착하기보다는 지금 나의 선택과 태도가 미래를 만든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다. 진정한 자신감과 자존감은 거울 속 얼굴이 아니라, 하루하루 선택하는 나의 모습에서 비롯된다.


아무리 사진 속 내가 젊고 예뻐 보인다고 해도 소파에 누운 채로 과자를 먹으면서 의미 없는 쇼츠 영상을 보고 있는 내 모습은 미래에 결코 만족스럽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자신감과 자존감은 거울 속 얼굴이 아니라, 하루하루 선택하는 나의 모습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거울 속 내 모습에 “이 정도면 괜찮은데?”라고 수줍게 중얼거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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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년간 써온 작가의 다른 글들이 '나도 10대는 처음이라서'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저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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