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길어지기 시작했을때

말하고 싶음과 멈추고 싶음 사이에서

by 유타쌤


친구와의 약속을 위해 낯선 동네의 골목을 지나가는데, 모르는 어르신이 나를 붙잡고 “여기 이 빵집은 왜 문 안 열어?”라고 물어본 일이 있었다. 나는 그 질문을 듣고 잠시 멈칫했다. 그 빵집과 나는 아무 상관이 없다. 내가 주인도 아니고, 직원도 아니며, 심지어 그 가게를 이용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도 그 질문은 너무 자연스럽게, 마치 내가 당연히 알아야 하는 사람인 것처럼 던져졌다. 나보고 알아봐서 알려달라는 걸까? 아니면 그냥 누군가에게 말을 걸고 싶은 걸까? 솔직히 말하자면, 나랑 전혀 관련도 없는데 왜 나한테 물어보는건지 좀 귀찮다는 생각을 했다.


이런 경험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다. 길에서, 버스 정류장에서, 병원 대기실에서, 엘리베이터 안에서 어른들은 종종 나에게 말을 건다. 질문의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다. 오늘 무슨 날이라서 사람이 많은 건지, 요즘 세상은 왜 이 모양인지, 하다못해 지금 그렇게 이쁘게 하고 어디 가냐는 질문도 받았다. 질문처럼 시작하지만, 대부분은 질문이 아니다. 대답을 기대하는 질문이 아니라, 말을 시작하기 위한 문장일 뿐이다. 그 말은 점점 길어지고, 나는 듣는 사람이 아니라 받아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알지만 그건 의무가 아니지 않는가?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피로를 가득 안은 채 낯선 사람의 질문에 답하고 싶지 않은데 어떻게 하냔 말이다.


나이가 들면 말이 많아진다는 이야기를 흔히 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말의 양이 늘어난다는 뜻은 아닌 것 같다. 나이가 들면 머릿속에 있는 생각과 감정이 예전보다 더 쉽게 밖으로 흘러나오는 것 같다. 한 번쯤은 속으로만 삼켰을 말이, 이제는 굳이 삼키지 않고 그대로 나온다. 예전에는 혼잣말로 끝났을 생각이, 이제는 옆에 있는 아무에게나 향한다. 그 대상이 꼭 적절할 필요는 없는 듯하다. 그냥 거기에 사람이 있으면 충분한 것이다.


직장에서의 나는 그런 상황에서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예의상 듣고,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듣고, 괜히 불편한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듣는다. 하지만 속으로는 전혀 다른 생각을 한다. ‘그만 말해줘요. 너무 길게 말하고 있잖아요.’라는 생각 말이다. 그 생각은 점점 또렷해진다. 말이 이어질수록 그 생각은 점점 커진다. 그런데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중간에 끊을 수도 없고, 적당히 빠져나갈 타이밍도 놓친다. 그렇게 나는 듣고 있는 사람이 된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가 바로 그 어른들과 닮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계를 자꾸 확인하는 후배에게 내 이야기를 하고 있고, 내 생각을 설명하고 있으며, 내 경험을 풀어놓고 있다. 속으로는 ‘이제 그만 말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드는 건 맞다. 듣는 사람의 표정이 흐려지는 것도 느끼고, 시선이 살짝 다른 곳으로 향하는 것도 보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말을 멈추지 않는다. 생각은 하지만, 말은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누가 말을 하고 있으면 그 말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말을 도중에 막고 말하는 내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처음엔 '아니! 내가 이젠 말을 끊고 내 말만 하는 꼰대가 되어버린건가?' 싶었지만 어느순간부터 아무렇지도 않게 내 말을 얼른 전달해야 겠다는 생각에 죄책감마저 들지 않게 된 것 같다. 지금 말하지 않으면 안되니까, 지금 말하지 않으면 까먹으니까...란 생각을 하지만 사실 말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가 없는 것들이다.


예전에는 분명히 이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필요 없는 말을 길게 하지 말아야하고, 상대가 원하지 않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어느새 나는 비슷한 말을 하고 있고, 비슷한 표정을 짓고 있으며, 비슷한 리듬으로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다. 나는 꼰대가 되고 있는 걸까, 아니면 그저 나이가 들어가는 과정일까?


나는 여전히 그 경계에 서 있는 것 같다. 꼰대가 되기 싫다는 마음과, 이미 어른이 되어버렸다는 현실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다. 누군가에게 말을 걸 때마다, 그리고 말을 시작할 때마다 잠시 망설인다. 이 말이 정말 필요한 말인지, 이 이야기가 지금 이 사람에게 필요한 이야기인지 스스로에게 묻는다. 하지만 질문을 던진다고 해서 항상 답을 찾는 것은 아니다. 말은 이미 입 밖으로 나왔고, 이야기는 이미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날 그 빵집 앞에서 나에게 질문을 던진 어르신도 어쩌면 그런 상태였을 것이다. 문이 닫힌 빵집이 궁금했다기보다는 그 상황을 함께 이야기할 사람이 필요했을지도 모른다. 답을 얻고 싶었다기보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 어르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이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다만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뿐이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말을 할 것이다. 생각보다 말이 길어질 것이고 중간에 멈추지 못하는 순간도 있을 것이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그만 말해’라고 외치면서도, 입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내가 어디쯤 와 있는지는 알고 싶다. 꼰대와 어른 사이, 그 어딘가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싶다. 완벽한 어른은 없고 완전히 꼰대가 되지 않는 것도 쉽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면서 조금 더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길에서 만난 그 질문 하나가 나에게 그런 생각을 남겼다. “왜 문 안 열어?”라는 말은 결국 나에게 던져진 질문이었다. 나는 지금 어떤 어른으로 살고 있는가라는 질문이었다.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 미정이다. 다만 그 질문을 계속 품고 살아가고 싶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어른으로, 그리고 말의 무게를 조금이라도 느끼는 사람으로 남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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