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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Oct 05. 2022

내 기준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

남의 기준에선 이해할 수 있을까

                          

"언니, 요즘 젊은 선생님들 하고 다니는 모습을 보면 정말 이해하기 힘들어요."

오랜만에 나간 모임에서 중학교에 근무하는 친한 동생이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했다. 학교에서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선생님들이 종종 보인다면서 적어도 양말이나 스타킹은 신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는 순간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발에 땀이 많기도 하거니와 답답한 이유로 나는 초봄부터 쌀쌀하다고 느껴지기 전까지는 대부분 맨발에 슬리퍼처럼 생긴 샌들을 신고 다니기 때문이다.


"너 내 이야기 듣고 놀라지 마! 슬리퍼 신고 다니는 사람 여기 있어. 내가 그래! 그런데 나는 그걸 누군가가 불편할 거란 생각을 전혀 해본 적이 없었어. 그래서 네 이야기 듣고 깜짝 놀랐어. 30대인 네가 그렇게 생각하는데, 더 나이 많은 선배 선생님들은 그동안 내 모습 보고 쟤 왜 저러고 다니냐... 싶었을 거 아냐."

그때 옆에서 재미있게 이야기를 듣고 있던 모임의 가장 맏언니가 이렇게 말했다.

"이래서 인생은 매일매일 배움의 연속이라니까. 네가 아무렇지 않게 해왔던 어떤 행동이 다른 사람 기준에서는 너무나 이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거 말이야. 예를 들면, 나는 평소에 지금처럼 청바지를 주로 입고 다녀. 그런데 교사가 청바지 입는 것을 안 좋게 보는 경우도 있잖아."


  서로의 기준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면, '서로 다름'이라는 양 극과 극에서 얼마만큼 서로에게 다가가면 되는 것일까? '어느 정도'가 되어야 '저 정도는 괜찮다'는 지점에 도착할 수 있을지, 궁금해졌다.


  청바지를 좋아한다는 맏언니가 말을 이었다.

"혹시 맨발에 슬리퍼를 신고 다니는 그 선생님의 평소 행실을 네가 별로 안 좋게 생각했을 수도 있어. 정말 아이들을 생각하면서 수업도 열심히 하는 선생님이 그렇게 하고 다니는 걸 보았다면 그 정도는 그냥 넘어갈 수도 있었을 거야."


  언니의 말을 듣자, 내가 근무하는 학교에 계시는 선생님 한 분이 떠올랐다. 그 선생님의 책상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지저분하기로 유명하다. 예전에 그 선생님과 우리반 학생일로 이야기하다가 책상에서 '드르르르' 울리는 핸드폰을 찾기 위해 쌓여있는 종이와 책들을 한참이나 뒤지는 모습을 본 적이 있을 정도였다. 처음엔 저렇게 책상을 지저분하게 하고 수업이나 업무 처리하는 게 가능할지 궁금할 정도였는데, 그 선생님이 열정적으로 수업하시는 모습과 늦은 시간까지 아이들 진학지도에 힘쓰는 걸 본 이후에 '저렇게 아이들을 위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느라 책상 정리할 여유가 없나 보다'로 바뀌었다. 자신의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 때문에 내 기준에서 이해할 수 없었던 상대방의 행동이 '그 정도쯤이야, 뭐'라는 지점으로 옮겨진 것이다.


  물론 내 행동이 다른 사람 눈에 어떻게 비춰질 지에 너무 신경쓰면서 살 필요는 없다. 하지만 같은 공간 안에서 함께 생활해야 한다면 적어도 '내 기준'의 끝에서 조금은 앞으로 걸어나오려는 노력은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그 어떤 잣대를 들이밀더라도 긍정의 결과를 들을 정도로 자신이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가 더 노력할수록 운이 더 좋아진다는 걸 발견했다'라는 토마스 제퍼슨의 말처럼 내가 열심히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나에게 갖다대는 기준이 좀 너그러워지는 운을 기대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나는 도저히 맨발에 슬리퍼를 포기하기 어려운데... 좀 더 열심히 최선을 다하는 교사의 모습을 보이면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하며 오늘도 주섬주섬 챙겨 신었던 양말을 쓰~윽 벗고 수업하러 교무실을 나서본다. 약간의 운을 기대하면서...



                                                    내 기준에서 보면 옳은 것도

                                           상대의 기준에서는 반대일 수 있습니다.

                                               소통하려면 원하는 쪽에서 먼저

                                                   자신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김홍신, '인생사용설명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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