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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Nov 20. 2020

왜 그걸 닮았니

많고 많은 엄마 아빠의 모습 중에 하필...

                                                         

  아들을 낳고 내 인생 처음으로 엄마라는 이름표를 얻었을 때 나는 아, 이래서 어른들이 너 같은 아이 낳아보라고들 하는구나, 싶었다. 아이를 낳고 나니 그제야 보이는 것들이 너무 많은 것이다. 이를테면 추운 날씨에 샌들을 신고 있는 아이의 모습 같은 것이다. 예전 같았으면 저렇게 신기고 나온 부모를 속으로 흉봤겠지만, 지금은 아이가 샌들을 신겠다고 얼마나 떼를 썼길래 한겨울에 저렇게 하고 나왔을까란 생각이 들면서 아이의 엄마를 측은하게 바라본다. 


  처음으로 아들이 세상에 나와 내 배 위에 올려졌을 때 나는 조금밖에 남지 않은 기력을 다 해 손을 뻗어 아이의 손과 발을 만졌다. 손가락 발가락이 다 열개인걸 확인하자마자 건강하게만 자라주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건 잠깐의 내려놓음이었다.


  아이는 어떻게 알았는지 나와 남편의 신체적인 단점들을 쏙쏙 빼갔다. 넓은 이마, 한쪽 끝이 올라간 눈썹, 동전도 들어갈 넓은 평수의 콧구멍은 이제는 성인이 되었음에도 여전히 나에게 컴플렉스로 남아있는, 그리고 가리고 싶은, 그러나 가릴 수는 없기에 괜찮은 척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아들이 그것들을 가져갔다.  아니, 나에게도 여전히 남아있으니 가져간 건 아니지만, 나름 잘 감추고 있었던 '척' 했던 것들이 이젠 아들을 통해 감출래야 감출 수 없는 것들이 되었다.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 아주 조금 신경 쓰였던 x자 다리 역시 아들이 용케도 찾아내어 컨트롤 씨, 컨트롤 브이를 했다. 처음엔 아직 어리니까 모르는 거라고 주장하던 남편도 다리 교정 전문병원에 아이를 데려간 이후부터는 틈이 날 때마다 교정 운동을 하게 하고 바닥에 앉는 자세까지 아주 친절하게 고쳐주려고 노력한다. 뭐 어떠냐, 살면서 딱히 불편하지는 않은 거라고 주장하던 남편에게도 사실, 쭉 뻗은 곧은 다리에 대한 선망이 아마 조용히 감춰왔을 실현될 리 없는 소망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도 아들에게 잔소리를 해댄다. 코파고 나서는 콧볼을 잡아서 넓혀지지 않게 해라, 다리 운동해라, 너는 앞머리를 내려야 멋져 보인다 따위의 말들은 어쩌면 그동안 우리 부부가 자기 자신에게 해왔던 것들일 것이다.


  둘째 딸이 커가면서는 아이가 부모의 신체뿐만 아니라 감춰왔던 성격들을 어떻게 알고 닮았는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갖고 싶은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사서 가져야만 발 뻗고 잘 수 있었던 나의 감춰진 과거를 둘째 아이를 통해서 매일매일 보고 있다. 일단 뭔가를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했던 나는 엄마가 된 이후로는 그 성격이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다라는 걸 느꼈다. 그래서 그 이후로 그런 성격을 꾹꾹 억눌러 왔다. 하지만 딸이 용캐도 그걸 꺼내 가져갔다. 한번 시작한 종이접기를 다 끝내기 전까지는 아무 데도 가지 않으려고 하거나, 자기가 원하는 완벽한 묶음머리가 안 나오면 어린이집이고 뭐고 거울 앞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친한 선생님들과 밥을 먹으면서 우리는 '왜 하필 너는 그걸 닮았니?'에 대해 침까지 튀겨가며 이야기를 했다. 

"아들이 어제 자면서 코를 컥컥 거리며 몇 번을 깨더라고. 비염약을 또 장기간 먹여야 하나? 나 학창 시절에 비염 때문에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거 진짜 힘들었는데 아들이 그걸 겪을 걸 생각하니 진짜 화가 나. 왜 하필 그걸 닮은 건지 정말..."

"나는 이 부정교합이 늘 콤플렉스여서 서른다섯 살엔가 뒤늦게 교정했거든. 그래서 우리 애들 볼 때마다 나는 치아 상태만 자꾸 봐. 좀 이상한 것 같다 싶으면 바로 치과 데려갈 거야. 어릴 때 가서 고쳐야 나처럼 고생 안 하지."

"나는 큰아들이 나 닮아서 키가 작을까 봐 너무 걱정이야. 남편은 키가 큰데 아들 생김새나 성격이 완전 나를 닮아서 키도 닮을까 봐 무서울 정도야. 아는 사람이 아들 키 커지는 주사를 맞히는데 총 천만 원 정도가 들었다는 이야기 듣고 나도 적금 들어야 하나 싶다니까."


  컴플렉스를 어떻게 감출까를 치졸하게 고민하고 살아온 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영어교사가 되기 위해 다시 대학교를 들어갔고, 한 번의 쓴 패배에도 다시 일어나 결국 나의 꿈을 이루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성향의 남편을 만났지만 우리는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며 큰 문제없이(물론 작은 문제들은 존재하지만) 그럭저럭 잘 살고 있다. 타고난 천재적인 성향이 눈곱만큼도 보이지 않는 지극히 평범한 두 아이들은 아직은 어리지만 매일매일 별빛처럼 반짝이며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언젠가 아이들이 자신의 컴플렉스를 제대로 인지하고 나처럼 어떻게 컴플렉스를 감출지, 아니면 의학의 힘을 빌려 아예 싹 없애 버릴지 고민하는 순간이 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나와 남편은 아이들에게 단지 컴플렉스만 물려준 건 아니다. 


  해야 할 게 있으면 즐기면서 하기,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는 손을 내밀기, 힘든 일이 생겨서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 하더라도 다시 일어설 용기를 갖기... 같은 것들이 바로 내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물려주고 싶은 것들이며 매일매일 아이들에게 전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방법은 별거 없다. 단지 내가 그런 삶을 살면 되는 것이다. 앞서 썼던 글 제목처럼 '아이들은 부모를 보고 물드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두 가지 유산이 있다.

                                                하나는 뿌리이고, 다른 하나는 날개이다.

                                                                 -호딩 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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