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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선생님 Oct 05. 2022

누구를 위한 66, 77사이즈인가

  바뀌는 계절을 앞두고 옷을 몇 벌 구입하기로 했다. 아이를 낳고 난 뒤 출산 전 몸매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열심히 운동을 해 왔기 때문에 66 사이즈 정도면 잘 맞겠지..라고 생각하고 쇼핑을 했다. 그러나 웬 걸... 66 사이즈 옷을 겨우 낑낑대며 입어야 했고, 여기저기 튀어나온 살들은 두꺼운 겨울 옷 위로도 여실히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에 55 사이즈였고 비록 지금은 원래 몸 상태로 돌아가진 않았지만 "아기 낳고 관리 좀 했나 봐"라는 소리를 종종 듣고 있었는데 66 사이즈가 작다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인터넷 쇼핑몰에서 옷을 살 수밖에 없어."

내 말을 들은 친한 언니가 말을 이었다.

"얼마 전 백화점에 갔더니 진짜 66도 못 입겠더라고. 게다가 백화점엔 77사이즈 옷이 없잖아. 아니, 내가 그렇게 많이 먹는 것도 아니고 평소랑 먹는게 똑같고 그냥 매일매일이 거의 비슷한데 왜 내 살은 그대로가 아니고 꾸준히 우상향을 하는 거야?"


  그러던 중 옷장 정리를 하다가 출산 전에 구입했지만 거의 입지 않았던 55 사이즈 옷들을 다시 꺼내 입어 보았다. 지퍼조차 올라가지 않았다. 비교적 최근에 '살 빼고 입어야지'라는 마음으로 산 옷들도 있었지만 단추조차 잠궈지지 않게 된 내 살들을 원망하면서도 언젠가 입게 될 날을 상상하며 옷장 구석에 모셔둔 옷들도 있었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66사이즈조차 맞지 않는 몸이 되어 버렸을까.


"나이들수록 기초대사량이 떨어져서 그래."

꾸준한 PT로 다이어트에 성공한 친한 선생님이 말을 했다.

"가만히 있어도 몸 안에서 소비되는 에너지가 기초대사량인데, 십년에 2퍼센트 정도씩 줄어든대. 그래서 평소와 먹는양이 똑같아도 몸 속에서 에너지로 소비가 잘 되지 않으니까 지방으로 축적되는거야. 나 매일 운동하고 한끼 다이어트식 하다가 방학때 한달 쉬었더니 몸무게 다시 돌아왔잖아. 식단과 운동을 계속하면서 기초대사량을 높여야해."

이야기를 들은 나는 나이가 들수록 더 쉽게 유혹에 빠지게 되는데 그게 참 힘든 일이라고 변명했다. 

"나도 알아. 기초대사량을 높여야 하는거 말야. 젊었을 땐 다이어트에 '다'자도 몰랐지. 평소랑 똑같이 먹어도 살이 엄청 찌는게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지금은 애들 재우고 난 밤에 라면과 맥주가 너무 땡길 때 이런 생각이 들어. 낮에 열심히 일하고 밤에 이런 것도 못먹냐고...고작 이런 것도 먹지 못하는 삶이 얼마나 행복하겠냐고...그리고 먹는거야. 아주 신나게 먹은 뒤 자려고 누웠을 때 다짐하지. 내일은 꼭 다이어트 시작할거야! 그런데 한 삼사일 지나면 또 유혹에 빠져. 작심삼일이 반복되는거야."


  나처럼 66사이즈 옷을 입다가 이제는 일할때조차 등산복을 입게 되었다는 친한 친구와 차를 마시며, 우리 둘은 살이 찌는건 당연하다, 나이들어도 늘씬해야 한다는 인식을 주는 사회가 문제 아니냐며 침을 튀겨가면서 이야기를 했다. 그러다가 친구는 괜찮은 명언 하나를 알려주겠다며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 명언이 맘에 들어서 휴대폰에 적어 놨어. 잠깐만, 내가 읽어 줄게. 데모크리토스라는 철학자가 말한건데, 한 번 들어봐. '청년기의 자존심은 혈기와 아름다움에 있지만 노년기의 자존심은 분별력에 있다' 어때? 우리는 아직 노년기는 아니지만, 그리고 66사이즈 옷도 겨우 입긴 하지만 20대들에겐 없는 삶의 경험과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분별력이 있잖아....음...있던가? 아닌 거 같은데? 나이 들었다고 그런게 더 많은 것 같지도 않잖아! 뭐야, 이거! 처음에 이 글 보고 맘에 들었는데 왜 지금은 전혀 공감이 되지 않는거지? 그래, 말도 안돼! 나이 들었다고 분별력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야. 그냥 살을 빼자, 우리!"

결국 우리 둘은 다이어트를 하는 것 만이 유일한 해결책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옷 치수를 실제보다 작게 표시해서 입는 사람으로 하여금 본인이 날씬한 기분이 들게 하는 걸 '베니티 사이징(Vanity Sizing)이라고 한다. 당신의 허리 사이즈가 28정도라면, 바지에는 27이라고 표시되어 있어서 입는 사람의 기분이 좋아진다는 얘기다. 이러한 경향은 1990년대부터 몇몇 청바지 브랜드들이 이렇게 했다가 언제부턴가 거의 없어졌다고 한다.


  지금은 사라진 베니티 사이징을 대신할 만한 새로운 의류 사이즈에 대한 개념이 널리 퍼지는 상상을 해 본다. 여전히 66사이즈 이긴 하지만 옷을 살짝 크게 만들어서 입는 사람들이 편안하면서도 '나 아직 66사이즈야'라며 기분 좋게 하는 '행복 사이징'으로의 전환은 어떨까? 마흔 살이지만 만 나이로 서른아홉이라고 말하는 것이 더 기분 좋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뭐, 그래 봤자 다 자기만족이겠지만...



                                                 나만이 내 인생을 바꿀수 있다.

                                                 아무도 날 대신해 줄 수 없다.

                                                              -캐롤 버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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