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냐는 숙소로 향하지 않았다. 레니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휴식을 취하고 있던 레니는 반갑지 않은 손님의 방문에 경계했다. 타냐가 우리의 문을 열려고 하자 뒷걸음질로 우리의 문에서 가장 먼 곳까지 물러섰다. 우리 안으로 들어선 타냐는 조심스레 소리가 나지 않게 움직였다. 레니는 그 어느 때보다 타냐의 움직임이 의심스러웠다. 타냐가 가까이 가려하자 레니는 소리를 지르려 했다. 그것을 눈치챈 타냐는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검지를 자신의 입에 갖다 댔다. 레니는 그게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리를 내지 말라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타냐는 조심스레 레니에게 다가갔다. 공격의사가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무릎을 살짝 굽힌 채 두 손을 펴 올리고 다가갔는데 그게 레니에게는 어떤 의미도 없는 행동이었다.
가까이 다가간 것에 성공한 타냐는 레니의 귀에 '따라와'라고 속삭였다. 레니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타냐는 서너 번 귓속말을 하고 우리의 문 옆으로 가서는 뒤를 돌아 레니에게 오라고 손짓했다. 레니는 이해를 하진 못했지만 자신이 우리 밖으로 나가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인간이 바라는 것인지는 몰랐지만 자신은 바라는 것이었기에 레니는 우리 밖으로 나갔다.
타냐는 레니를 오늘 밤 탈출시킬 생각이었다. 자신이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이것뿐이었다. 센터장의 말대로 자신이 여기서 일을 그만둔다고 해도 달라질 것은 없었다. 센터장의 말을 따라 자신이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특단의 조치'를 할 마음도 없었다. 레니를 탈출시키는 것만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중에서 유일하게 결과가 바뀌는 일이었다.
타냐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움직였다. 다행히도 갑자기 쌀쌀해진 날씨 덕분에 밖에 사람들은 없었다. 타냐의 생각을 읽은 것인지 아니면 타냐를 경계해서인지 알 수 없는 이유로 레니도 최대한 소리를 죽여 움직였다. 타냐는 보호소에서 가장 약한 문을 봐뒀다. 보호소에서 밖으로 향하는 문들은 밤에는 모두 자물쇠로 잠겨있었다. 자신은 보안 팀 소속도 아니었고, 팡도 없어 열쇠를 구할 수 없었다. 남은 방법은 코뿔소가 부시고 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초원에서 봤던 위력 정도라면 가볍게 부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타냐가 봐둔 문은 나무판자를 조악하게 덧붙이고 그 위에 검은색 배경에 흰색 글씨로 'SAVE THE RHINO'라고 적혔있었다. 타냐는 문 위에 써진 글씨를 보고 콧방귀를 뀌었다. 부시고 나가기에 여러모로 알맞은 문이라고 생각했다. 타냐는 레니에게 문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가!"
레니는 타냐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부시고 나가라고!"
이번에도 레니는 이해할 수 없었다.
타냐는 안 되겠는지 뒤로 물러 섰다. 그리고 허리를 숙이고 달려와 머리로 문을 박는 시늉을 했다. 레니는 이번에도 이해하지 못한 눈치였다. 타냐는 마지막 방법으로 아까의 동작을 반복하면서 입으로 '쾅!' 소리를 냈다. 레니는 알아들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며 뒤로 물러섰다. 레니는 발을 구르며 코끝에 집중하며 달렸다 마지막 순간 체중을 실어 몸을 띄었고 코뿔 끝에 집중했다.
'쾅!'
요란한 소리와 함께 땅이 약간 흔들렸다. 타냐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코뿔소의 들이받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된 건 처음이었기에 지금까지 위력을 알 수 없었다. 약간이지만 충격으로 땅이 흔들렸고, 그 진동이 자신의 다리를 거쳐 온몸으로 전해졌다. 타냐는 소름이 드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은 꽤 단단하게 고정되어 있었는지 흔들리기만 할 뿐 조금의 틈도 보여주지 않았다.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하나둘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나오는 것을 느꼈는지 레니는 다시 뒤로 물러서 문으로 돌진했다.
'쾅!'
이전보다는 많이 흔들렸지만 문은 부서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레니는 다시 뒤로 물러섰다. 그 사이 누군가 레니와 타냐 쪽으로 강한 라이트를 비췄다. 사람들은 모여들기 시작했다. 발각된 것이다.
"탈출이다! 총기 챙겨 와!"
레니는 소란스러워짐을 느끼며 서둘러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해서 반복했다. 문은 조금씩 틈을 벌렸다.
'탕!'
허공 중으로 발사된 총에서 귀청을 찢을 듯한 총성이 울렸다. 겁을 주기 위해 누군가 하늘로 쏘아 올린 것이었다. 레니는 침착해지려 애썼다. 조급함을 이겨내는 것이 강함이라고 아빠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레니는 다시 뒤로 물러섰다. 누군가 총을 들어 레니를 조준했다. 타냐는 총구 앞으로 뛰어가 양팔을 뻗어 막았다. 그 사이 레니는 다시 한번 문을 들이받았다.
'쾅!'
문은 자물쇠를 채운 부분을 제외하고 산산이 부서져 바닥에 떨어졌다. 레니는 멈추지 않고 밖으로 달렸다. 한참을 달렸다. 차가운 바람이 열이 오른 육체를 식혀 주었다. 코끝을 통해 갈라지는 바람의 느낌이 나쁘지 않았다.
타냐는 레니가 탈출하자 레니가 나간 문 앞으로 가서 막아서고 외쳤다.
"쫒지 말아요! 가게 둬요!"
아무도 타냐를 제치고 문으로 다가서려 하지 않았다. 이런 일은 처음 있는 일이었기에 다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타냐의 앞으로 센터장이 다가와 섰다. 타냐는 이어질 추궁을 기다렸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었지만 갑자기 타냐는 추궁에 맞설 자신이 없었다. 사실 몰래 빠져나가게 도와주고 숙소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생각보다 문이 단단하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한 자신의 실수라고 생각했지만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했다. 몰래 숨어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보다는 지금이 더 떳떳하다고 타냐는 생각했다.
"숙소로 돌아가. 타냐."
센터장이 말했다. 그것이 끝이었다. 그리고 센터장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그 자리를 떴다. 사람들도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고, 타냐 혼자 남게 되었다. 센터장의 추궁이 없던 것이 타냐를 더 초라하게 했다. 마치 ’네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뿐이야. 바뀌는 것은 없어. 내일이면 우리는 아무일 없었다는 듯이 특단의 조치를 해나갈거야‘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타냐는 레니가 부시고 나간 문을 바라봤다. 그리고 레니가 뛰쳐나간 들판을 응시했다.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는 않지만 레니는 분명 잘 가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누구보다 자유롭게 바람을 가르며 뛰고 있다면 그것로 되었다고 생각했다. 쌀쌀한 날씨에도 타냐는 한참 동안 들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무슨 생각이 났는지 창고에서 페인트를 가져왔다. 레니가 부시고 나간 문 옆으로 이어진 벽 앞에 서서 큼지막하게 써 내려갔다.
'DO NOT SAVE'
<끝>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