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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호 Sep 12. 2024

개발자가 시골에서 누룽지기계를 산 이유

창업을 시작할 때 아이템에 대한 고민은 거의 없다. 왜냐면 세상을 바꿀 멋진 아이디어가 창업자의 온 정신을 잡아먹어야 '시작할 수 있는 용기'라는 것이 몸뚱이를 조금이라도 움직이기 때문인데, 나는 경우가 다르니 창업을 마음먹고 아이템을 골라야 했다.


누군가는 가장 좋아하는 것을 하라고 하고,

누군가는 가장 잘하는 것을 하라고 한다.

누군가는 남이 하지 않는 것을 하라고 하고,

누군가는 시장에서 이미 팔리고 있는 것을 해야 한다고 한다.

누군가는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아이템을 하라고 하고,

누군가는 필요를 만드는 아이템을 하라고 한다.


100% 맞는 말은 없겠지만 저 정도로 오락가락한다면 대체 누가 어떤 아이템을 할 수 있다는 걸까.

'누군가'의 이야기는 듣지 않는 것이 좋겠다.  

사업을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나에게 적합한 아이템을 찾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당연히 IT분야에서 찾아봤지만 그동안 그 수많은 스타트업의 경험에서 '우리나라에서 IT를?' 물론 쉬운 사업이 어딨겠냐마는 IT 스타트업을 이 농촌에서 혼자서 시작할 수 있을 자신이 없었다. 이 농촌에 어울리는 아이템, 농촌에서 필요로 하는 하는 아이템을 통해 지역사회에 이바지하는 착한 기업(?)의 이미지를 조금 갖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기왕이면 여기가 농촌이니까.


그래서 여차저차해서 생각해 낸 것이 누룽지다. 누룽지를 해야만 하는 이유는 아래와 같다.


1. 의성 지역에서는 품질 좋은 쌀이 많다.

2. 지역에서는 이 쌀을 홍보 또는 활용할 수 있는 활용처를 찾고 있다.

3. 개인적으로 밀가루 음식을 먹으면 피부가 간지러운 증상이 좀 있어서 (근데 대충 참고 먹는다.) 간식으로 누룽지를 돈 주고 사 먹고 있었다. (이 부분이 중요한데 돈 주고 누룽지를 사서 먹어본 경험이 다른 사람들에겐 많지 않다.)

4. 기존의 누룽지에서 볼 수 없는 새로운 시장을 개척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 좋아한다. 바삭바삭한 식감과 고소한 풍미가 내 취향이다.  


위와 같은 이유로. 질렀다. 1,140만 원짜리 누룽지 기계를. 단 며칠 만의 일이다.

경차 한 대 값이다. 서울 집의 1년 6개월치 월세고, 서울 직장인 평균 급여의 1분기 월급이었다.

하지만 필요했다. 지금 당장 나를 움직이게 할 동기가. 시간만 뭉개고 있을 나를 당장 일으켜 움직일 동기가.


1,140만 원으로 지금 당장 시작해야 할 강력한 동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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