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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호 Sep 12. 2024

개발자는 직업으로 만족해

 2009년 개발자로 첫 출근을 했고, 15년을 개발자로 일했다. 첫 출근에는 당연히 두려움과 설렘이 있었고, 잘 해낼 수 있다는 씩씩함이 있었다. 그날의 씩씩함은 어디 가고 하루하루를 버티며 사는 평범한 직장인이 얼마 전까지의 나였다.


개발자는 만족할 만한 직업이었다. 지난 15년 넘치지는 않지만 불편하지 않은, 서울 직장인의 삶을 영유할 수 있는 적당한 연봉과 부족하지 않은 일자리를 제공했다. 그렇다고 매일 아침 출근 전쟁을 치러야 하는 서울 직장인의 삶이 매우 만족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불안한 미래와 더 두려운 카드값, 더 두려운 집세, 자동차할부, 보험금 기타 등등은 매일아침 아주 불편한 심경의 나를 지옥철 안으로, 거기서 끄집어내 더 지옥 같은 회사 안으로 밀어 넣었다. 


하루가 어떻게 흘러가는지, 어제의 날씨와 오늘의 날씨가 어떻게 다른지, 어제는 무엇을 먹었고, 오늘은 무엇을 먹었는지 그렇게 시시콜콜한 것들도 기억하지 못할 수많은 날들을 그렇게 기억하지 못하며 흘려보냈다. 


 그렇게 보낸 시간이 무엇으로 남았나. 

 그럴듯한 집과 차, 사랑스러운 아내와 너무도 소중한 애기들. 그렇게 좋은 것들이 남았다면 나는 계속 서울에 있었을 테다. SNS에서 잘 나가는 지인들을 보며 '나는 뭘 했지'라는 자기반성과, '왜 그때 그걸 안 했지'라는 후회로 더 잘 되지 못한 나를 추궁하는 못 된 자아만 남았다. 그래서 '어차피 이렇게 된 거'라는 생각으로 택한 시골행에 '그만큼 열심히 살아봤으면 열심히 하는 건 적성이 아닌 거 같아.'라는 핑계를 붙일 수 있었다.


 왜 의성이어야 했을까.

 처음 의성이라는 곳을 방문한 건 워케이션이었다. 요즘은 지역에서 쳥년들 유입시키기 위해서 많이들 진행하고 있다. 그렇게 흘러들어와 정착까지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재원낭비는 아닌 것 같다. 여하튼 처음 방문한 의성은 평온 그 자체였다. 끝도 안 보이는 평야가 있었고, 그 평야는 초록 외에는 다른 색을 허용하지 않았다. 끝없이 펼치진 초록의 평야. 그것이 내 시골행의 이유였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도시에서 나고 자란 서울쥐가 도시에서 농사를 짓는 재주가 있는 것도 아니고, 흔한 카페 알바도 해본 적이 없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그냥 마음뿐인 귀촌 꿈나무였다. 농사를 배워보고자 귀촌 관련 수업도 들었다. 귀촌을 꿈꾸고 갔는데 강사님이 귀촌을 말렸다. 다행이다. 멋 모르고 시작했다면 엄청 고생했을 거다. 여하튼 그렇게 농사의 꿈은 접고 기회를 찾던 중에 발견한 창업 지원사업. '창업이라면 그래도 해볼 만하지 않을까.'라는 섣부른 생각을 이번에는 말리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시작하게 됐다.


 사실 창업은 오랜 꿈이었다. 개발을 처음 시작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 안에서 있었고,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창업을 생각하게 된다. 관련된 지원을 받아본 경험도 있었고, 관련 대회에서 입상한 적도 있었다. 어느 정도 감은 있었기에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어렵다. 특히 지역에서 내가 해본 적 없는 아이템으로 새롭게 창업을 한다는 것은 더더욱. 하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돈은 많이 못 벌지만 그래도 새로운 경험을 엄청 많이 하고 있다. 내 삶의 기준은 경험이니까. 시골에 와서 창업을 하는 경험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워케이션을 오지 않았다면 의성을 몰랐을 테고,

 창업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수많은 경험을 놓쳤을 테니 이것만으로도 나의 시골행은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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