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크 파크는 시카고 외곽의 조그맣고 오래된 소도시다.
위치는 서울 경계선인 과천인데, 분위기는 서촌인 오래되고 작고 걷기 좋은 동네다.
신혼여행 때 미국 건축의 아버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 –1959)의 건물을 보러 오크 파크를 단 하루 방문했다. 91세로 죽을 때까지 전 세계에 천 개가 넘는 작품을 남긴 그의 건축물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동네라서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걸어가며 본 아름다운 주택과 커다란 가로수, 자그맣고 이쁜 레스토랑에 반했다. 그 오래된 소도시의 느낌에 반해 결국 7년 뒤에 이곳에 일 년 살 공간을 덜컥 구해 버릴 만큼.
내가 오크파크에서 제일 좋아하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 마당의 목련이 일품이다.
오크 파크에 정착하고 느낀 건 정말 잘 선택했구나 였다.
미국 근교 소도시에서 차 없이 걸어서 학교와 쇼핑 지하철 통근이 다 해결되다니. 이 대자연과 문화재급 전원주택들은 또 뭐야.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가족 간의 인종이 다른 게 매우 흔할 만큼 다양성을 띤 고학력 계층이었는데, 우리 같은 검은 머리 이방인에게도 매우 호의적이었다.
오크 파크에서 우리 가족이 일 년 살던 작은 아파트
나는 오크 파크에서의 일 년 동안의 주거를 미국 부동산 사이트를 보고 한국에서 구했다.
집 안방 창문에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물들이 몇 개나 내려다 보인다는 것에 혹해서, 오랫동안 공실이던 아파트 삼층의 월세집을 구했다.
사진상으로는 매우 깨끗해 보였는데, 도착하고 보니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걸 깨달았다. 공동 세탁실은 일층인걸 알고 있어서, 아효 빨래를 계단으로 다 들고 날라야 되네 하며 좁은 계단으로 슈트케이스를 옮겼다.
삼층까지 짐을 끙끙 끌고 가 현관문을 여니 집안에서 심히 담배 냄새가 났다.
밑집의 거동을 못 하는 할머니께서 집에서 담배를 피우고 계셔서 오랫동안 공실이었던 거다. 벽장문을 여니 배관을 타고 갇혀 있던 담배 냄새가 유령처럼 훅 달려 나왔다.
한국에서 송금한 보증금 포기하고 딴 데 알아봐야 하나 심히 고민했다. 며칠 후 비가 오자 천장 전등 커버에 빗물이 요강처럼 담겨 주르륵 떨어졌다.
시차극복을 못하고 밤낮이 바뀌어 며칠간 잠을 자다 정신을 차리고, 이 집 주소로 자동 배정되는 홈즈 초등학교에 가봤다.
초등학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20년동안 가족들이랑 살고, 설계사무소를 함께 꾸려 일하던 집 맞은편에 있었다. 백여 년 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자녀들(후에 대부분 건축가로 활동)이 다니던 초등학교이기도 하다.
학교를 살펴보고 주변 산책을 하는데, 홈즈 초등학교 정문 바로 옆 옆집 앞에 작은 동판이 있었다. 한발짝 다가가 봤더니 놀라운 이름이 있었다.
바로 노인과 바다를 쓴,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 1899 – 1961)가 어린 시절 살던 집이었다. 의사 아버지와 음악가 어머니를 둔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 홈즈 초등학교를 다녔고 오크파크 안에서 고등학교까지 얌전히 마쳤다. (그가 태어난 오크파크 내 다른 집은 현재 헤밍웨이 탄생지 박물관이기도 하다.)
집에서 홈즈 초등학교까지 가는 산책 길이 너무 좋고, 학교의 역사가 너무 좋았다.
비록 일 년 다닐 꺼지만, 세상에나 헤밍웨이가 애 초등학교 직속 선배라니 너무 쿨 하잖아 하며.
로빈 후드 복장을 한 어린 헤밍웨이. 1912년. 뒤의 건물이 홈즈 초등학교. 뒷 목조 건물은 1958년 헐리고, 퍼킨스 앤 윌이 설계한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섰다.
잘생기기로 유명한 헤밍웨이의 1918년 청년기 사진, 이 사진은 오크파크 거리에 배너로 많이 붙어있다
이왕 이 아파트에 발을 들였으니, 이 곳에 계속 살아야 겠다고 결심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거대한 풍채의 밑집 할머니께 우리 새로 이사왔다며 인사드리러 갔다.
힘 있는 사람 아니면 계단으로 절대 못 나를 거대한 타원형의 미국 수박을 종종 사다 드렸다. 할머니께서는 사는 동안 실내 흡연을 정말 많이 많이 자제해 주셨다.
비 새는 것도 우리 가족 감전돼서 여기서 다 죽을 것 같다고 집주인에게 호소했다.
성질 있는 집주인 아줌마가 입주민 회의에서 아파트 전체 옥상 방수 공사를 요청해 통과가 되었다.
그렇게 차차 오크 파크에 적응해 나갔고, 좋은 이웃들을 만나 너무 감사히 잘 지냈다.
오크파크의 헤밍웨이 탄생지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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