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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킴 May 22. 2022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개 페페

애 학교가는 길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작품들

한국의 법정동 한 개 크기의 작은 오크파크 시 안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지은 집은 25개. 바로 옆 동네에도 줄줄이 많다. 그가 이곳에 신혼살림을 차리고 20년 동안 거주하면서 자기가 속한 교회(Unity temple)나 소셜 클럽(River Forest Tennis Club)의 건물도 설계하고, 동네방네 이웃들 집을 많이 설계해서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자신의 신혼집을 지을 때 스승인 루이스 설리반에게 돈을 빌리면서, 5년간의 계약을 맺었다. 딴 주머니를 차고 스승 몰래 일을 한 탓에 결국 잘렸다는 일화가 있다. 그때 몰래 했던 진짜 초기작들도 오크 파크에 나란히 있다. 이 동네에선 그걸 그의 부트렉(bootleg) 하우스라고 부른다.


시카고 특유의 방갈로 스타일의 집도, 겉이 아닌 속 인테리어만 해 준 집도 있다. 고객의 요청으로 뾰족탑 퀸 앤 스타일로 지은 집도 있다. 그래도 그의 시그니처 직선이 가득한 스테인드 글라스 유리 창문이 집안 어디라도 붙어 있다.

지을 때 그가 했던, 나중에 집주인이 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집인데 허전해하고 사다 붙였던.(매년 5월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집의 오픈하우스 행사에서 이 케이스 목격)


나머지 반 정도는 겉보기에도 한 번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구나 싶은 수평선과 처마가 강한 대평원 프레리 스타일이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홈&스튜디오의 스테인드 글라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그렇게 열심히 이웃집을 지어주다 결국은 체니라는 동네 사람 집(Edwin H. Cheney House, 1903)을 지으면서 체니 부인과 내연 관계가 된다.

이에 본부인과 자녀 6명을 버리고 체니 부인과 1909년 이탈리아로 도주한다.

긴 객지 생활이 힘들자 체니 부인과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각각의 배우자와 자녀를 버린 오크파크로 감히 돌아오지 못하고, 그의 고향 위스콘신의 탈리에신 이라는 동네에 정착한다.

몇 년 후 정신이 불안정한 하인의 도끼날과 방화로 체니 부인과 그간 태어난 두 명의 아이가 죽는다. 이 정도가 91세로 장수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전반부 심란한 가정사다.



아침에 아이손을 잡고 학교 가는 길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낙엽이 떨어지나 너무 즐거웠다.

아이와 나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홈 앤 스튜디오 담벼락에서 갈라졌다. 

나는 담벼락 바깥쪽 보도로 걷고, 아이는 건물 안 조각상 열주를 뚫고 마당을 가로질러 누가 빨리 빠져나오나 시합을 했다.

학교 가는 길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홈앤 스튜디오 안 길로 뛰어가는 아이. 나는 왼편의 담 바깥의  담장을 따라 걸었다.
왼편의 횡단보도를 건너면 아이가 다니는 홈즈 초등학교가 나온다.
홈즈 초등학교 맞은편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홈 앤 스튜디오 전경

그렇게 아이를 초등학교에 데려다주고 돌아오는 왕복 이십 분의 산책.

그 짧은 길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설계한 저택이 열개가 넘었다.

그 정원 넓은 집들이 다들 백 년이 넘으니 정원수로 심은 참나무와 목련은 이게 바오밥 나무 인가 싶게 거대했다. 참나무마다 다람쥐가 가득하고 너른 정원에는 토끼굴이 가득해 찹쌀떡 같은 토끼 새끼들이 옹기종기 기어 나와 햇볕을 쬐고 있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아니더라도 다른 건축가가 지은 다양한 스타일의 오래된 대저택들이 많았다.

그 집들이 다 담이 없는지라, 수선화 수국 정원의 분주한 가드닝 구경은 내 영혼에 향긋한 휴식을 주었다.

하교 길에 발걸음을 멈추고 구경하고 있으면, 와인을 마시며 가드닝 하던 할머니께서 싱긋 웃으며 마당에 핀 꽃을 정원 가위로 싹둑 잘라 아이에게 선물해 주시기도 했다.


오크파크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건축물 지도. 왼쪽의 빨간 버튼 밀집구역이 내 매일매일의 산책로였다.
사진 속 양옆의 큰 집 두 개와 1시 방향의 집까지 모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 홈스 초등학교 가는 길.


홈즈 초등학교에서 집으로 가는 길의 클라이맥스는 엘리자베스 코트(Elizabeth Court)라는 길이었다.

쿨데삭, 즉 한쪽 끝이 막힌 도로라 차량 통행이 없어 산책하기 쾌적했다.

이 길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체니 부인과 도주하기 전에 오크 파크에 지은 마지막 집, 로라 게일 하우스(Laura Gale house, 1909)가 있다. 정확히 말하면 이 집을 짓던 중에 도주한지라, 나머지 시공은 설계도대로 인부들이 끝냈다.


이 집은 우거진 녹음에 묻혀 그냥 지나치기가 쉽다.

자세히 보면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말년의 명작, 낙수장(Fallingwater1939)의 프리 커서, 전구체다.

한눈에도 낙수장과 비슷하지만 많이 작고, 중산층의 주택인지라 재료도 재벌의 그것만큼 고급지진 못하다.

그의 수직과 수평선을 쓰는 방법이 여기서 더 정교히 발전하고 커져 낙수장이 되었다고 건축사가들이 평가하는 집이다.

로라 게일 하우스. 1909년. 출처 위키피디아
낙수장 1939년, 출처 위키피디아



어느 때와도 같은 엘리자베스 코트 산책에서 하루는 발밑에 조그만 돌비석을 발견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개 페페가 여기 묻히다 라는 글귀가 쓰여 있는.


뭔가 해서 검색해보니 아주 재미있는 스토리가 있더라. 미국판 꼬리 없는 개 동경이, 페페의 이야기다.


1897년경부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부인 캐서린의 오크 파크의 집에는 개가 한 마리 있었다.

특이점은 꼬리가 없는 개였다. 동네의 떠돌이 개였는데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가족들이 보살피기 시작했다.


당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집에서는 입주 가정교사가 세 자녀에게 스페인어를 가르치고 있어서, 이 개를 페페라고 이름 짖고 개가 깡충깡충 뛰는 재주(Flamenco Lobo)도 가르치고 그랬단다. 그렇게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부부와 페페의 1906년경 사진이 한컷 남아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와 첫 부인 캐서린, 그리고 꼬리 없는 개 페페의 사진, 1906년 경


1909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로라 게일 하우스를 짓다가 체니 부인과 도주했다. 로라 게일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오크파크 첫 고객, 부트랙 하우스 두 개를 지어달라 요청한 부동산 업자 게일의 부인이었다. 남편이 죽고 나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에게 맡긴 세 번째 설계 의뢰가 그의 이 동네 마지막 작업이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집과 현장이 매우 가까운지라 걸어서 공사를 감독 시찰했던 이 집 앞에 페페가 알짱거리기 시작했다.

원래 동네를 많이 돌아다니는 개였는데, 주인과 마지막으로 같이 다녔던 곳에서 주인을 기다리는 건지. 순식간에 일어난 가장과 아버지의 부재에, 좁은 동네 커뮤니티에서 희대의 구설수에 오른 가족이 페페를 제대로 보살필 여력이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현장의 공사 인부들이 대초원 프래리 스타일의 개집까지 만들어 주었다고 하고, 집주인 로라 게일도 페페의 먹이를 주며 보살폈다. 페페는 이듬해인 1910년 봄에 여기서 죽었는데, 로라 게일은 페페를 집 앞 라일락 나무 밑에 묻었다.


1962년 이후 집주인이 바뀌었고, 1970년대까지는 그 자리에 라일락 나무가 있었다. 그때까지는 동네 사람들이 지나다니며 이 라일락 나무 밑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개가 묻혀있대라고 이야기하곤 했다.

이후 라일락도 베이고 그 후로 또 오십여 년이 지나면서 그걸 말하던 사람들도 다 죽고, 이 이야기는 잊혔다.


2015년, 로라 게일 하우스 앞의 전봇대 전선 공사를 하며 땅을 파다가, 애정을 가진 사람에 의해 잘 매장된 개의 온전한 뼈가 발굴되었다. 딱 사진 속 저만한 개의 뼈, 그리고 이 개의 뼈에는 꼬리가 없었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동경이는 매우 드물다.

로컬 히스토리언과 동네 주민들이 잊힌 스토리를 찾아 관련 사진과 기록을 찾아냈다.  

2016년 동네 주민들이 이 자리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개, 페페 여기 묻히다 라는 글귀를 돌에 새겨 바닥에 묻어 주었다.


FLW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머릿글자다.




지금껏 시카고 건축가들의 그레이스랜드 세미터리 묘지 디자인으로 글을 써 내려왔다.

정상적 마인드의 인간이었으면 응당 여기 묻혔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이 동네서 그렇게 도주한지라 여기 묘비가 없다.


그래서 그의 개 묘비 사진과 이야기로 대체.  

(건축에서의 중요성 말고 가족을 대하는 인성으로 본다면, 이 개 페페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보다 낫지.)


그리고 스토리 텔링의 중요성, 끊임없는 오크 파크 주민들의 지역 가꾸기 노력에도 경배 한줄. 







https://www.oakpark.com/2016/12/06/solution-to-the-mystery-of-pepe-the-d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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