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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킴 Mar 21. 2022

어린이를 앞세운 어른의 집 구경, 오크 파크의 핼러윈

  핼러윈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집들에서 사탕 받기 1

어린이를 앞세운 어른의 집 구경, 시카고 오크 파크의 핼러윈 저택

핼러윈에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집들에서 사탕 받기 1

LA 책을 쓸 때였다. LA 코리안 타운에서도 좀 허름한 길의 낡은 삼층 목조 아파트에 살았다. 

어둔 중복도 맞은편에 한국인 가족이 이사를 왔다. 미 중부 호숫가의 인구 희박한 동네의 너른 단독주택에 살다 왔다 했다. 그 집의 두 어린 딸들은 도시의 좁고 어두운 아파트로 갑자기 이사오니 계속 돌아가자 울어댔다. 

밤에 총소리도 들리고 경찰 사이렌도 자주 울리던 지역이었다. 성인인 나도 밤엔 걸어서는 못 나가는. 

낡고 작은 아파트마다 외부인이 함부로 들어올 수 없게 해 놓은 시끄러운 보안 알람이 수시로 빽빽댔다. 


핼러윈 때 앞집의 엄마가 애들을 타이르는 소리가 복도 너머로 들렸다. 여기선 이전 동네처럼 밤에 남의 집 문 두드리고 돌아다니면 안 된다고, 이번엔 핼러윈 스킵하자고. 


잔뜩 실망한 앞집의 어린이들이 불쌍했다. 그 아파트에 가득한 눈 커다란 히스패닉 어린이들까지 떠올려 보니 이십여 명이었다. 당시 같이 살던 언니랑 차 몰고 슈퍼에 가서 사탕 장을 봤다. 주먹만 한 사탕 주머니 이십여 개를 만들어 우리 유닛의 현관문 앞에 붙였다. 애들이 문 두드리며 말하는 'Trick  or treat' 주문 대신 'Self Treat!'이라고 써 붙였다. 

9월이면 마트 바깥에 잔뜩 쌓이는 핼러윈용 조각 호박


핼러윈 저녁 날, 현관문 바깥에서는 숨넘어가게 좋아하는 아이들의 끼아 비명이 들렸다. 바스락바스락 사탕 주머니를 떼어가는 고양이 살금살금 발걸음이 분주했다. 


이후 그 아파트에서의 삶이 매우 편해졌다. 세탁실에 가느라 빨래 바구니를 엉덩이뼈에 걸치고 나오면 아파트 복도에서 놀던 꼬마들이 눈에 하트 뿅 뿅을 쏘며 서로 달려 나와 문고리를 잡아줬거든. 맞은편 한국 자매의 바비 인형 놀이하자는(그래 한번 같이 해줬다...) 잦은 끼워주기에 난감해지기도 했다.  


기승전, 미국 핼러윈에는 어린이들은 사탕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네 설날에 어린이가 세뱃돈을 받는 것처럼. 

이것이 주변의 사람 꼴을 한 어른들이 응당 해야 할 의무입니다. 


소싯적 나 싱글적 이야기다. 

그렇게 덕을 쌓아 후덕한 아줌마가 된 나는, 이제 핼러윈 밤에 애를 앞세우고 남의 집 구경을 간다. 비록 낡고 작은 아파트에 살아도 집 보는 눈은 높아요. 평소에 잔디라도 밟아보고 싶던 남의 집 대 저택에 들어가 포치와 현관 구경이라도 하겠다는 원대한 꿈이 있습니다.

 



싱글 시절 살던 뉴욕이나 LA의 거친 거주지와는 다르게, 어린이를 데리고 정착한 시카고 외곽의 오크 파크는 안전과 안정을 우선 염두에 두었다. 


무릇 도시는 시간에 따른 흥망성쇠와 젠트리피케이션이 존재한다. 시카고 외곽의 조그만 소도시 오크 파크는 특이하게도 그런 부침이 없었다. 의사 아빠와 유명 예술가 엄마를 둔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어린 시절부터 이 동네 인구 통계는 늘 그 정도를 유지한다. 큰 광에서 인심이 철철 나는 것은 당연한 이치. 


핼러윈 몇주 전부터 개인 주택들은 다들 핼러윈 분장으로 단장한다. 호박과 마녀와 여러 괴기스런 시즌 장식으로. 개인이 창고에 있는 장식품 꺼내  장식하기도 하지만, 매 철마다 전문 장식 업체를 고용해 고가 사다리 타고 장식하는 집들도 많다.

핼러윈에는 골목에서 숨어있는 집은 제발 와달라고 사탕 많이 준비해 놨다고 입간판도 눈에 띄게 멀찌감치 설치해 놓기도 한다. 

어른들은 마녀나 프랑켄슈타인 복장을 하고 사탕을 잔뜩 쌓아둔 현관문 뒤 1분 대기조로 앉아 있다. 어릴 때 추억을 어른이 되어서도 지켜 주는, 가가호호의 가을 산타클로스 혹은 위그든 씨의 버찌 씨 후손들이다. 


오크 파크에는 워낙 많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물들이 있다. 실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집들이다. 매일 그 집 바깥을 지나가면서 저 안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궁금했다. 담이 없는 저택이라도 보도블록 안쪽의 정원은 그 집의 영역이다. 공이 굴러가도 침범하지 않는 것이 이 동네에서 잘 지켜지는 공공의 에티켓이다. 핼러윈 밤에는 그런 에티켓이 전부 해제되는 마력이 있다. 


그래서 미리 준비를 했다. 

이날 작은 어린이들은 혹시 무슨 일 안 생기나 어른이 쫓아다닌다. 

그 완벽한 조합을 위해 토토로 옷을 가족용으로 세벌 미리 주문했다. 

잠옷용 천으로 되어 이후에도 집에서 입을 수 있고, 엄마로서는 실용적인 선택이었다. 

토토로 가족 잠옷 코스튬. 왜 자기껀 색깔이 옅냐고(따로 구매) 질문. 펭귄 새끼도 어릴 때는 색깔이 옅어라고 대답하며 나의 센스에 놀랬으나 결국 못 입힘. 


아이는 아마존 박스 속 토토로 잠옷을 보고 단호하게 거부했다. 

자기는 꼭 하늘색 엘사 드레스를 입어야겠다고. 

하긴 겨울왕국 이후로 전 세계의 여자아이 옷장에서 분홍색 드레스가 사라졌더랬다. 

협상은 결렬되었고, 어미는 시카고 시내에 지하철 타고 나가 한국에선 특별히 입어볼 일 없던 하늘색 드레스와 망토를 겨우 구했다. 



왼쪽이 딸, 오른쪽은 딸 베프 어뉴시카. 이날 이  나이 또래는 다 푸른 드레스를 입었더군. 



이날은 오크 파크에 사십 년 만에 핼러윈 날 이른 폭설이 내렸다. 

눈밭을 헤집고 다니는 진짜 엘사가 된 경험은 정말 보는 이도 본인도 최고였다. 이후 핼러윈에서 그 이상을 경험하지 못해 어딜 가도 다 시시해지는 그런 부작용을 낳았고.  


그렇게 들려본, 오크 파크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대저택들 빠꼼 들여다보고 집주인 만나본? 이야기. 


각 집들의 평상시 컷과 이날 컷은 화면 스크롤이 너무 길어지니 분절해서 다음 글에. 



눈 오던 핼러윈 날의 우리 집 출동준비 완료. 아빠와 딸입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드 재단 건물 담벼락. 사진중앙 엄청 큰 은행나무 있어요(재단에서 혹시 무슨 사연이 있나 조사중이라 함. 개 페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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