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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나킴 Feb 27. 2022

오크 파크와 헤밍웨이

헤밍웨이가 다닌 초등학교에 아이 보내기

오크 파크는 시카고 외곽의 조그맣고 오래된 소도시다.

위치는 서울 경계선인 과천인데, 분위기는 서촌인 오래되고 작고 걷기 좋은 동네다.


신혼여행 때 미국 건축의 아버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1867 –1959)의 건물을 보러 오크 파크를 단 하루 방문했다. 91세로 죽을 때까지 전 세계에 천 개가 넘는 작품을 남긴 그의 건축물이 세상에서 가장 많이 모여 있는 동네라서다.


지하철역에서 내려 걸어가며 본 아름다운 주택과 커다란 가로수, 자그맣고 이쁜 레스토랑에 반했다. 그 오래된 소도시의 느낌에 반해 결국 7년 뒤에 이곳에 일 년 살 공간을 덜컥 구해 버릴 만큼.

내가 오크파크에서 제일 좋아하던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작품, 마당의 목련이 일품이다.



오크 파크에 정착하고 느낀 건 정말 잘 선택했구나 였다.

미국 근교 소도시에서 차 없이 걸어서 학교와 쇼핑 지하철 통근이 다 해결되다니. 이 대자연과 문화재급 전원주택들은 또 뭐야. 여기서 만나는 사람들은 가족 간의 인종이 다른 게 매우 흔할 만큼 다양성을 띤 고학력 계층이었는데, 우리 같은 검은 머리 이방인에게도 매우 호의적이었다.  



오크 파크에서 우리 가족이 일 년 살던 작은 아파트


나는 오크 파크에서의 일 년 동안의 주거를 미국 부동산 사이트를 보고 한국에서 구했다.

집 안방 창문에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물들이 몇 개나 내려다 보인다는 것에 혹해서, 오랫동안 공실이던 아파트 삼층의 월세집을 구했다.


사진상으로는 매우 깨끗해 보였는데, 도착하고 보니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없는 걸 깨달았다. 공동 세탁실은 일층인걸 알고 있어서, 아효 빨래를 계단으로 다 들고 날라야 되네 하며 좁은 계단으로 슈트케이스를 옮겼다.


삼층까지 짐을 끙끙 끌고 가 현관문을 여니 집안에서 심히 담배 냄새가 났다.

밑집의 거동을 못 하는 할머니께서 집에서 담배를 피우고 계셔서 오랫동안 공실이었던 거다. 벽장문을 여니 배관을 타고 갇혀 있던 담배 냄새가 유령처럼 훅 달려 나왔다.

한국에서 송금한 보증금 포기하고 딴 데 알아봐야 하나 심히 고민했다. 며칠 후 비가 오자 천장 전등 커버에 빗물이 요강처럼 담겨 주르륵 떨어졌다.


시차극복을 못하고 밤낮이 바뀌어 며칠간 잠을 자다 정신을 차리고, 이 집 주소로 자동 배정되는 홈즈 초등학교에 가봤다.   

초등학교는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가 20년동안 가족들이랑 살고, 설계사무소를 함께 꾸려 일하던 집 맞은편에 있었다. 백여 년 전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자녀들(후에 대부분 건축가로 활동)이 다니던 초등학교이기도 하다. 


학교를 살펴보고 주변 산책을 하는데, 홈즈 초등학교 정문 바로 옆 옆집 앞에 작은 동판이 있었다. 한발짝 다가가 봤더니 놀라운 이름이 있었다.   

바로 노인과 바다를 쓴, 어니스트 헤밍웨이(Ernest Hemingway1899 – 1961)가 어린 시절 살던 집이었다. 의사 아버지와 음악가 어머니를 둔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이 홈즈 초등학교를 다녔고 오크파크 안에서 고등학교까지 얌전히 마쳤다. (그가 태어난 오크파크 내 다른 집은 현재 헤밍웨이 탄생지 박물관이기도 하다.)


집에서 홈즈 초등학교까지 가는 산책 길이 너무 좋고, 학교의 역사가 너무 좋았다.

비록 일 년 다닐 꺼지만, 세상에나 헤밍웨이가 애 초등학교 직속 선배라니 너무 쿨 하잖아 하며.




로빈 후드 복장을 한 어린 헤밍웨이. 1912년. 뒤의 건물이 홈즈 초등학교. 뒷 목조 건물은 1958년 헐리고, 퍼킨스 앤 윌이 설계한 콘크리트 건물이 들어섰다.



잘생기기로 유명한 헤밍웨이의 1918년 청년기 사진, 이 사진은 오크파크 거리에 배너로 많이 붙어있다



이왕 이 아파트에 발을 들였으니, 이 곳에 계속 살아야 겠다고 결심했다. 

아이의 손을 잡고 거대한 풍채의 밑집 할머니께 우리 새로 이사왔다며 인사드리러 갔다.

힘 있는 사람 아니면 계단으로 절대 못 나를 거대한 타원형의 미국 수박을 종종 사다 드렸다. 할머니께서는 사는 동안 실내 흡연을 정말 많이 많이 자제해 주셨다.


비 새는 것도 우리 가족 감전돼서 여기서 다 죽을 것 같다고 집주인에게 호소했다.

성질 있는 집주인 아줌마가 입주민 회의에서 아파트 전체 옥상 방수 공사를 요청해 통과가 되었다.

그렇게 차차 오크 파크에 적응해 나갔고, 좋은 이웃들을 만나 너무 감사히 잘 지냈다. 



오크파크의 헤밍웨이 탄생지 박물관




관련 링크


https://oprfmuseum.org/this-month-in-history/holmes-school-demolished



http://www.idaillinois.org/digital/collection/p16614coll27/id/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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