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6일 아버지의 상태를 듣고 일주일이 지났다.
서울삼성병원에서 흉부외과 교수님의 설명을 들은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심장 수술... 그것도 엄청나게 힘들고 긴 수술... 그리고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무서운 말.
그런 걱정과 우려 속에 벌써 일주일이란 시간은 그저 묵묵히 흘러가고 있었다.
그 뒤로 아버지의 쳇바퀴 같은 병원 생활이 계속되었다.
혈압, 체중, 혈당, 산소포화도, 체온을 계속해서 기록한다.
이러한 모든 과정이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이루어진다.
그러다 보니 수술을 위한 준비가 꽤나 사람을 심적으로 지치게 만든다.
비몽사몽 사람이 잠에 취해있는 새벽 4시경부터 이러한 일들이 아버지한테 반복된다.
병원에 누워서 케어를 받고 있다고 해도 수술을 앞둔 사람에게는 이 모든 일들이 은근히 신경이 쓰이는 일일 것이다.
하루종일 병원에 있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까?
아마 아버지도 이렇게 반복되는 병원생활에 꽤나 지쳤던 것 같다.
전화 통화를 하다 보면 아버지의 불만이 자연스레 튀어나온다.
"매일매일 항생제 맞고 채혈 하니까 죽겠네..."
"병원 밥도 당뇨식이라 그런지 싱거워서 맛이 없어... 그래서 요즘은 편의점서 사과도 사 먹고 바나나도 사 먹고 그랴~"
"얼마 전에 후배가 빵을 싸워서 먹었는데 맛있더라~"
"밥이 맛없으니까 살이 점점 빠져... 운동도 하고 그래야 되는데 말이여..."
항생제 맞고 채혈하는 것도 짜증 나고 건강식이어서 좋다던 병원 밥도 맛이 없다고 불평을 털어놓는다.
그래서 체중은 점점 빠지고 힘이 없다고 말이다.
지금 생각해 보면 혼자 하는 병원 생활이 외로워서 그랬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께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그저 묵묵히 기다리는 것 말고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버지의 수술은 계속 지연이 되고 미뤄졌다.
아마 컨디션이 아직 안 올라왔고 여러 가지 위험한 상황으로 쉽게 결정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병원은 아버지의 폐렴 치료에 집중을 했다.
폐렴이라도 잡아야 수술할 컨디션이 된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렇게 자꾸 지연되는 상황에 아버지도 지치고 짜증이 났던 것 같다.
아버지가 한 말이 생각이 난다.
"에이 씨발! 빨리 수술 좀 해버리지... 왜 자꾸 미루는지 모르것네..."
그럴 때마다 내가 말했다.
"기다려 봐 쫌... 병원서도 생각이 다 있겠지 그만큼 위험하니까 더 신중하게 생각하고 체크하는 거겠지 쫌 진득이 기다리고 있어 봐..."
내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곤 그저 기다려 보라는 말뿐이었다.
뭐 솔직히 기다리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빨리 수술 좀 해버리지라고 말했지만 그만큼 아버지도 무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드는 요즘이다.
아마 아버지는 나와 자신에게 강한 척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너희 아버지는 참 강한 사람이야..."
남들이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다.
나의 친구들 그리고 아버지의 친구분들도 저 말을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뭐 인정한다. 아버지는 강직하고 강한 분이었다.
음... 쉽게 설명하면 범죄도시에 마동석 같은 형사였다.
그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사람.
깡패, 강도범, 살인범이 와도 눈 깜짝 안 하고 한방에 제압하는 형사.
그게 바로 나의 아버지였다.
자식에게 다정하진 않지만 항상 강하게 보이는 듬직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도 이번엔 자신이 없었다고 했다.
나중에 아버지의 메모장에서 발견된 말이었다.
아버지가 적은 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이번엔 자신이 없다. 살과 근육은 쭉쭉 빠져 뼈만 남은 앙상함에 나의 자신감도 밑바닥이 되어간다.
이쯤 되면 정리를 해야 하는 거 아닐까?]
이러한 메모와 함께 아버지는 휴대폰을 이용해 유서 아닌 유서를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유서를 쓰면서 아버지는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다.
[희한하게 이름을 생각하고 그 사람들의 얼굴이 머릿속으로 소환이 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온다. 나이 탓인가? 나에겐 전혀 있을 수 없는 상황에 순간 놀랐다.]
이렇게 무섭고 힘들면서 아버지는 끝까지 강한 척을 했다.
조금 힘들다고, 무섭다고 표현했으면 자주 가서 보았을 텐데...
끝까지 아버지는 괜찮다는 말만 했었다.
그저 아버지라는 이유 때문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흔히들 말한다. 아버지는 강한 존재라고.
하지만 그들도 아버지이기전에 사람이다.
사람은 누구나 죽음이라는 문턱 앞에서 무섭고 두려운 법이다.
하지만 그 두려움과 무서움을 아버지라서 견딘다.
그래서 아버지는 강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누군가 나와 같이 아버지를 보내드려야 할 상황이 온다면 그 사람에게 말해주고 싶다.
나처럼 아버지를 강하다고만 믿지 말라고 말이다.
분명 아버지는 강한 사람이지만 그건 가족들에게만 그렇게 보이고 싶은 것이다.
물론 아들로서 자식으로서 아버지에게 따듯한 말 그리고 손을 잡아주는 것이 참 힘들일이라는 걸 나도 안다.
하지만 따듯한 말 그리고 손 한번 힘 있게 잡아주는 것을 꼭 하길 바란다.
나중에는 후회로 밀려오니 말이다.
만약 평소에도 아버지께 살갑게 할 수 있다면 더욱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안된다면 적어도 아버지가 힘든 순간에는 힘이 되어줬으면 좋겠다.
지금의 나는 시간이 흘렀음에도 항상 마음의 짐처럼 그 순간을 후회하고 있으니 말이다.
나는 오늘도 강한 아버지가 아닌 두려웠을 아버지를 추억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