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잘 가요
2023년 5월 31일 커다란 파도가 밀려온다
아버지의 전화를 받고 다음날, 아침 9시경 집을 나와 삼성병원으로 향했다.
참 사람 마음이라는 게 그렇다. 시도 때도 없이 왔다 갔다 한다.
괜찮을 거야 싶다가도 이내 또다시 불안감에 휩싸이고 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어땠을까 싶다.
자신의 생명이 걸린 문제로 고민 또 고민하는 그 오랜 시간이 얼마나 고통이었을까?
행복한 생각은 하면 할수록 더 큰 행복을 가져온다고 한다.
그렇다면 불안감은 어떨까?
아마 생각을 하면 할수록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갔을 것이다.
혼자 그 시간을 버틴 아버지를 생각하면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아버지란 그런 존재다.
가족들 걱정에 홀로 외딴섬에서 버티고 견디는 존재 말이다.
나도 한 가정의 남편 그리고 아버지가 되어보니 아버지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내가 힘들고 아파도 가족들의 웃음과 행복에 버텨낼 수 있다는 것을 말이다.
또 걱정이라는 감정은 절대 주기 싫다는 것을 말이다.
차를 타고 가는 내내 평소에는 듣지 않았던 CCM을 들으며 운전을 했다.
불안감을 조금이나마 털어 버리고 싶은 마음에서 말이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을 달리던 차는 어느덧 병원에 도착했다.
주차 후 아버지가 입원에 있는 16층 순환기내과 병실로 올라갔다.
16층 엘리베이터 있는 복도에서 아버지께 전화를 했고 나의 전화를 받은 아버지가 병실에서 걸어 나왔다.
걸어 나오는 아버지는 살이 많이 빠져있었다.
한때는 키 182센티미터에 110킬로의 최고 몸무게를 찍었던 강력계 형사가 살이 쪽 빠져 당시는 70킬로가 조금 넘은 상태였다.
그토록 강인하고 강직했던 강력계 형사의 모습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이제는 힘이 많이 빠진 아버지였다.
나를 보자마자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코로나 검사 혔어?"
"아니. 그냥 왔는데."
"아이씨 하고 오라니까. 넌 왜 이렇게 말을 안 듣냐?"
"일단 급하게 왔어. 나도 이 병원서 검진하고 할 때 선생님 만날 때는 코로나 검사 안 해. 선생님만 만나는 거면 괜찮을 거야. 마스크도 꼈고."
"병원서 하고 오라니까 그러는 거지."
"하고 오라고 하면 나가서 신속이라도 하고 올게. 됐지?"
"알것어. 쫌만 기다려 간호사분들한테 물어보고 올라니까."
아버지는 병동내에 있는 간호사실로 들어가 이것저것 묻는 듯했다.
복도에 있는 나를 가리키며 선생님을 불러 달라고 말하는 듯했다.
시간이 흐르고 간호사 선생님 한분이 같이 나왔다.
"보호자 분이세요?"
"네."
"지금 담당 교수님 전화했고요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하시네요. 코로나 검사는 하셨어요?"
"아니요. 하고 올까요?"
"아니에요. 담당 교수님 오시면 한쪽에서 설명 들으시면 될 것 같아요."
"네 기다리겠습니다."
간호사 선생님이 들어가고 16층 엘리베이터 복도에는 아버지와 나만 남아있었다.
말이 없는 부자. 한동안 우리 둘 부자는 말이 없었다.
그 정적을 먼저 깬 건 나였다.
"몸은 쫌 괜찮아?"
"어 괜찮어... 병원 와서 그래도 많이 좋아졌어."
역시 돌아오는 대답은 괜찮다는 대답뿐이었다.
그리고 또 조용해진 엘리베이터 복도.
그 정적을 깨고 병동문이 열리며 누군가 말했다.
"보호자 분이세요?"
"네."
흉부외과 교수님께서 물었다.
"우선 들어오세요. 저쪽 가서 보호자분한테 설명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환자분도 같이 들으시고요."
"네. 선생님."
한쪽 자리로 가 선생님이 앉고 그 앞으로 아버지와 내가 마주 보고 앉았다.
선생님은 컴퓨터에 CT 사진을 띄우시더니 조심스럽게 말했다.
"음... 우선 아버지께서 지금 좋은 상황이 아니에요... 정말 위함 한 상황이에요."
"네..."
"음... 여기 사진을 보시면 심장 판막이 많이 늘어나있고요. 지금 이 상황은 언제 찢어져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심장에 있는 대동맥 또한 심장 판막과 같이 찍어지기 직전이고요. 그리고 혈관에도 석회화가 진행이 되고 있어서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안 돼요."
"그럼 빨리 수술하면 되죠.'
아버지가 선생님의 말을 끊으며 이야기했다.
"물론 해야죠... 수술을 할 수밖에 없어요... 근데 수술 중에 파생되는 문제가 많아요. 지금 아버지 심장은 보통 사람에 비해 심장 펌프 능력이 20%밖에 안 되는 상황이고요. 수술 중이든 수술한 후든 예상할 수 없는 합병증으로 돌아가실 수도 있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한 30분 정도 신체적 기능을 다 off 시켜야 하는 부담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 수술은 8시간에서 10시간 정도 걸리는 큰 수술이기 때문에 뇌혈관에 미치는 영향도 커요. 위험한 수술이에요."
"......"
아버지와 나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아마 그 짧지만 긴 시간에 아버지와 나는 많은 생각이 오갔을 것이다.
그 시간을 깨고 내가 교수님께 물었다.
"어쨌든 수술해야 하는 거잖아요? 방법이 그것밖에 없는 거고요?"
"네... 그렇습니다."
"뭐 해야죠... 방법이 그것밖에 없으면 그것을 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맞습니다 하는 방법 밖에 없긴 해요."
"그럼 해주세요. 선생님."
말이 없던 아버지도 선생님께 말했다.
그리고 내가 바로 이어 물었다.
"그럼 수술은 예정대로 금요일에 하는 건가요?"
"아니요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왜죠?"
"음... 우선 각과 교수님들이랑 얘기를 해봤는데요... 우선 아버지가 이식받은 신장 내과 쪽에서는 수술 시 면역억제제를 끊어야 해서 수술 후에 이식 신장이 나빠져서 다시 투석을 해야 하는 상황이 올 수 있어서 지금 곤란하다고 한 상태고요. 순환기내과에서도 가래가 아직 발생하고 있고 가장 중요한 폐가 아직 완치된 상태가 아니어서 아직 수술은 불가하다고 하고 있어요. 그래도 다행히 아버님의 컨디션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서 폐 상태만 좋아지면 다시 회의를 거쳐 수술날짜를 잡으려 해요."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혹시 더 궁금한 거는 없으세요?"
"네 아무쪼록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교수님과의 대화가 끝이 났다.
아버지와 나는 말없이 엘리베이터 복도로 나왔다.
꽤 긴 시간 동안 둘 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땅만 보고 아버지는 그저 벽만 보고 멍하니 서 있었다.
아마 서로 무슨 말을 먼저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던 거 같다.
"뭐 수술해야지 어떻게 혀~"
조용한 분위기를 깨려 아버지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렇지 해야지 뭐... 그래도 삼성병원인데 잘해주겠지."
"아빠 괜찮어~"
아빠가 애써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나 또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는 아버지였다.
하지만 아버지의 괜찮다는 말이 이번에는 조금 떨리는 게 느껴졌다.
아버지도 마음이 착잡했을 것이다.
위함 한 수술 그리고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으니 마음이 복잡했을 것이다.
"이제 가~ 전화 허면 그때 또 오고 그때는 수술하지 않것냐?"
"알것어 나도 연차 안 쓰고 있을 테니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 줘. 수술하면 동의서도 써야 되니까."
"알것어~ 가 빨리."
"알았어 알아서 가."
"어여 가 바쁜 텐디... 이따 가면 호겸이랑 시후 영상통화 좀 시켜주고... 할아버지가 가서 봐야 하는디 가질 못 허네..."
"알것어. 집 가서 연락할게..."
그렇게 아버지는 나에게 어서 가라는 말만 반복하면서 집으로 보내기에 급급했다.
애써 담담한 척 애써 괜찮은 척하는 거였을 거다.
그러면서 나의 걱정스럽고 복잡한 마음을 덜어주려 했던 것이다.
나도 애써 괜찮은 척 쿨하게 돌아서 나왔다.
괜히 표정이 안 좋으면 아마 아버지 마음도 안 좋을 것을 알기에 더 쿨하게 병원을 나왔다.
아버지도 또다시 그렇게 다시 병원 병실로 돌아 들어갔다.
그렇게 아버지와 나에게는 커다란 파도가 밀려왔다.
사람은 죽음 앞에서 괜찮을 수 없다.
아니 죽음 앞에서 모든 사람은 두렵다.
그 죽음을 받아들이고 온전히 감내하는 것은 아마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애써 그 두려움을 이겨낸 것처럼 행동하곤 한다.
그것은 아마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하는 것이 더 아파서 일 것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면서 하나님께 기도 했다.
우리 가족 다 아직은 몸도 아프지 말고 마음도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말이다.
그렇게 야속한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