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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필 Oct 16. 2023

아빠, 잘 가요

2023년 5월 30일 "내일 병원 좀 들어와야 것네..."

"내일 병원 좀 들어와야 것네..."


늦은 밤 전화를 받자마자 아버지가 나에게 말했다.

그리고 듣는 순간 무거운 아버지의 목소리를 느꼈다.

아... 무언가 있구나?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의 눈치를 엄청 보며 살아온 나이다.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하는 아버지지만 나는 아버지의 무거움을 느끼고 말았다.

엄청 갈라지는 목소리도 왜 그런지 나는 안다.

아마 아무 말 없이, 물도 마시지 않은 채 천신만고의 고민의 시간을 가졌을 것이다.


"왜 무슨 일인데?"


"수술 동의서 써야 한댜~"


"결국엔 수술해야 한데? 뭐 심각한 수술이야?"


"그건 내일 와서 듣고, 올 때 코로나 검사하고 오고."


"아니 이 밤에 코로나 검사를 어디서 해!"


"요즘 신속도 된다니까 아무 병원서 하고 와!"


아버지의 목소리가 짜증으로 바뀌었다.

그런 아버지였다. 자신의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짜증부터 내는 아버지.

자신의 몸이 많이 안 좋아지고 수술을 해야 한다니 짜증부터 났을 것이다.

아마 지금 자신의 상황이 자신의 계획에서 벗어나니까 성질이 났던 것 같다.

더 이상 말해봐야 짜증만 더 날 것이기 때문에 난 대화를 멈췄다.


"알겠어. 내일 오전 중으로 갈게..."


"알았어 끊어!"


그 한 마디와 함께 아버지는 전화를 끊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항생제 치료를 하면서 많은 검사를 받았다.

폐렴으로 시작된 폐수종으로 인해 누우면 호흡이 많이 가쁜 상태로 꽤나 힘든 치료를 받아왔던 것이다.

그렇게 의료진들도 각종 검사를 하면서 괜찮다는 반응을 보였고 아버지도 컨디션을 회복해 갔다.

검사한 각종 수치에 대비하며 그에 따른 처방도 받아가면서 주사와 약물 치료를 병행했다.

그러면서 좋아지는 아버지의 컨디션을 보니 퇴원 이야기도 솔솔 나왔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점점 나아지는 듯 보였고 컨디션도 괜찮은 듯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그날 오전 C.T촬영까지 끝내고 병실로 돌아와 쉬고 계셨다.


잠시 후, 담당주치의가 아버지를 찾아와 물었다.


"아버님 혹시 심하게 가슴 쪽 통증이 있던 적이 있으세요?"


"예. 재작년 겨울인가?... 컴퓨터를 하다가 가슴이 너무 아파서 두 손으로 힘껏 누른 채 천천히 방바닥에 누운 적이 있어요... 막 말도 안 나오고... 신음도 못하고 한 3~5분 정도 아파서 누워있던 거 같아요."


나는 당시 전혀 모르는 일이었다. 아버지께 전혀 들은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우리나라 부자관계가 참 재미있다. 아니 이건 부모와 자식 관계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다.

우리나라 부모와 자식은 왜 서로 몸이 안 좋으면 숨기는 걸까? 

통화를 하다 보면 흔히들 묻는다. 부모는 자식에게 "별일 없지?" 하고 물으면 자식은 "응 별일 없어."

라고 답한다. 또한 자식이 부모에게 "요즘 몸은 쫌 어때요?라고 물으면 부모는 또 "응 건강혀~"라고 답한다.

참 아이러니 하다. 이러니 서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 지도 전혀 모르고 사는 경우도 많다.

아니 사실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다. 부모와 자식 둘 다 그 미묘한 차이는 느끼고 있다.

단지 서로 괜찮다고 말하니까 그러려니 하는 것 같다.

혹 이 글을 보고 있는 부모님과 자식이 있다면 큰일은 서로서로에게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다.

나중에 서로에게 큰 후회로 남을 수 있으니까 말이다.

암튼 그런 아버지의 대답에 주치의가 말했다.


"지금 아버님 대동맥 안쪽이 찢어져 있어요... 그래서 퇴원했으면 큰일 날뻔했습니다. 천만다행이에요."


"그럼 지금 당장 수술해야죠."


아버지의 대답에 주치의가 부드럽게 이야기했다.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에요. 일단 아버님께서 이식 수술을 받으셔서 면역억제제 복용에 따른 부작용도 있고요. 폐렴도 아직 치료 중이라 쉽게 결정할 일은 아니에요. 빠르면 금요일에 수술일정을 잡을 생각이긴 한데 우선 다른 과 교수님들이랑 대화를 나눠 보고 결정할 거예요.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보호자 한분만 내일 와달라고 해주세요."


"네..."


나중에 아버지에게 들은 얘기지만 이번에는 호락호락 넘어가지 못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고 한다.

아마 아버지도 이번에는 겁이 덜컥 났던 것 같다.

그도 그런 것이 병원의 통제가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금식, 과도한 움직임 없기, 응급사황 발생 시 조치 요령 숙지 강요, 병동내 배회 금지... 등등

수술 때까지 통제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아버지는 나와 통화를 하였다.

그러니 그렇게 무겁고 짜증이 잔뜩 나 있던 아버지었다.


아버지와 통화가 끝나고 나도 생각이 많아졌다.

신장이식 수술 이후 이러한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또한 번의 수술이 앞에 다가왔다.

이번엔 내가 들어가는 수술이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미운 아버지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날은 수술이 얼마나 위험한지 얼마나 오래 걸릴지 전혀 몰랐지만 왠지 모르게 신경이 쓰였다.


아마 이런 게 부모 자식인 거 같다.

부부와 부모 자식 간의 차이는 크다.

우리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부부는 이혼하면 남이 된다.

그렇게 원래의 각자로 돌아갈 수 있는 남이 되어 버리고 만다.

하지만 부모 자식은 다르다.

부모에게서 자식은 나온다. 또 다른 소중한 나가 나에게서 나온 게 자식이 아닐까 생각을 한다.

그래서 부모가 죽으면 자식은 슬퍼하고 자식이 먼저 죽으면 부모는 더 큰 슬픔을 맞이한다.

부디 바라는 게 있다면 이 글을 보는 부모님과 자식들은 서로의 관계를 더욱 단단히 하길 바란다.

그렇게 걱정이 곁들여진 밤이라 할지라도 야속하게 시간을 흘러가 버리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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