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두필 Oct 12. 2023

아빠, 잘 가요

2023년 5월 29일 아버지도 모르는 불안감이 찾아왔나 보다.

그날도 어김없이 휴대전화가 울렸다. 역시나 아버지였다.

내가 아버지와 이렇게 자주 연락한 적이 있던가?

내가 바쁘다는 핑계로 혹은 애들을 키운다는 이유로 전화통화를 자주 한 적이 없다.

이제와 생각하지만 참으로 후회스러운 일 중에 하나이다.

그 전화 한 통하는 게 뭐 그리 힘들다고 하지 못했을까?

잠깐의 통화라도 하면 좋았을 텐데 말이다.

물론 저녁마다 영상통화를 하긴 했다. 아이들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서 말이다.

그저 아이들 얘기뿐이었지 아버지와 나에 대한 대화는 거의 한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느 날 시 쓰기 강의를 하고 있을 때였다.

나는 수강생 선생님들께 일상에 대해 이야기하고 일상에서 시의 소재를 찾으라고 이야기하곤 한다.

한 선생님이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저는 제 딸이 영상통화 오는 게 너무 마음이 아파요."


"왜 마음이 아프세요?"


"딸이 영상통화를 하면 손주들을 보여주는 게 마음이 쫌 그래요..."


"손주들도 보고 딸도 보고 좋지 않으세요?"


"손주들도 보고 하면 좋기는 하죠..."


"근데 뭐가 그리 마음이 아파요?"


"저는 영상통화를 하면서 손주들을 보고 싶은 게 아니라 딸의 얼굴을 보고 싶거든요..."


"아..."


"근데 영상통화를 하면 손주들만 보여주고 딸의 얼굴은 잠깐 보거나 손주들 뒤에 가려져 있는 딸만 보여요... 저는 딸이 보고 싶은데 딸은 지 얼굴은 안보여주고 손주들 얼굴만 자꾸 보여주는 게 전 가끔 마음이 아파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아 부모님은 손주를 사랑하지만 자식의 얼굴이 더 보고 싶을 수도 있겠구나.

그래 그게 맞을 수도 있겠구나. 

자식들은 부모를 위해서 손주들을 보여주고 있겠지만 부모님들의 입장에서는 전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후에 간단한 강연을 갔을 때 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부모님이건 자식들이건 이 이야기를 하면 공감을 많이 얻는다.

그만큼 부모님과 자식들 사이에 둘만의 대화시간이 부족한 것은 나중에 많은 후회를 가져온다.

부디 이런 후회의 시간을 조금은 줄여보기를 바란다.


암튼 난 전화를 받았고 수화기 너머로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머 혀?"


"뭘 뭐 해 일하고 있지... 왜?"


"비도 오는데 일은 할 만 혀?"


"뭐 항상 하는 일인데 똑같지 뭐..."


"아빠는 병원서 아침밥도 먹고 사과도 먹고 혔네..."


내가 궁금하지 않은 일을 술술 말하기 시작하는 아버지였다. 당시에는 왜 나한테 이런 이야기를 하나 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알게 모르게 불안감을 갖고 계셨던 것 같다.


"사과가 심장 질환에 좋디야."


아 또 심장에 대해 검색하고 알아보기 시작했구나? 

아버지는 무엇인가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이 충분히 알아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내 생각에는 이것도 오랜 경찰생활로 인해 자리 잡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암튼 사과가 심장에 좋다는 말 한마디를 시작으로 아버지는 혼자 이야기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심장 질환에는 과일과 야채가 좋다고 해서 지하 1층에 있는 편의점에서 일찍 한 개씩 사 오는 게 습관이 되었다면서 몸이 아마 원하는 거 같다고 했다.

그리고 병실에 같은 증상 앓고 있는 환자의 보호자는 견과류를 추천을 하셨단다.

심장 관리에는 견과류가 최고라고 말이다.

그래서 퇴원을 하면 주전부리용 견과류를 구입해야겠다며 나 보고도 견과류를 챙겨 먹으라고 강조했다.

또한 어떤 어르신께서는 수제 녹차와 등 푸른 생선에 대해 이야기를 비밀스럽게 말씀하셨다고 했다.

그러면서 남들이 좋다고 하는 건 따라야 한다며 또다시 나에게도 챙겨 먹으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심장에는 튀긴 음식, 밀가루 음식, 짜고 맵게 먹는 거, 붉은 고기, 통닭, 피자, 튀김은 조심해야 한다며 계속해서 강조했다.

나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자신의 이야기를 말씀하시던 분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마 자신의 병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더 그러셨던 게 아닐까 생각된다.

계속 듣고만 있던 내가 아버지의 말을 끊으며 물었다.


"아니 그럼 뭐 먹어? 풀이랑 녹차랑 견과류랑 등 푸른 생선만 먹어?"


"그건 아니고 챙겨 먹으라는 거지..."


"그니까 빨리 치료 잘 받고 건강해져서 맛난 것도 먹고 할 생각을 해~ 이것저것 검색해서 또 그것만 먹으려고 하지 말고."


"알것어."


"암튼 병원 생활은 어때? 할만해?"


"아빠 친구들이 이성당서 빵을 사 왔네... 오랜만에 먹으니까 맛있네?"


"아니 아빠 아까는 나한테 밀가루 음식 먹으면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병원서 싱겁게 먹으니까 이런 게 땡겨~"


"아니 짜고 맵게 먹는 것도 안된다며~"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아버지가 여태까지 했던 말과는 다르게 빵을 먹고 있었고 병원밥은 싱거워서 맛이 없다고 하고 있었다.

참 아이러니 한 상황에 웃음이 터진 것이다.

웃으며 아버지께 말했다.


"아빠는 건강을 위해서 지키고 있는 게 하나도 없네?"


"그런가? 암튼 너도 건강관리 잘 허고 있어. 끊어."


민망해서인지 자신의 할 말을 다 해서인지 아버지는 그렇게 전화를 끊었다.

그 당시 아버지는 겉으로는 괜찮다고 하셨지만 불안했던 것 같다.

그 불안감을 그때 알았다면 난 과연 아버지의 불안감을 덜어 줄 수 있었을까?

그럴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아버지의 말을 더 오래 들어줄 수 있었을 거다.

혼자 주절주절 풀어내는 것이 어찌 보면 아버지가 불안감을 해소하는 유일한 방법이었지도 모른다.

환자의 보호자들은 모른다.

환자의 불안감의 크기와 그 정도를 말이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그때 당시 내가 아버지의 말을 더 꾹 참고 들어줬더라면 아마 아버지와의 대화시간이 좀 더 길어졌을 거라 생각한다.

나중에는 통화조차 힘들어하셨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아버지는 혼자만의 방법으로 불안감과 싸우고 병과 싸우는 방법을 찾고 계셨다.


이전 02화 아빠, 잘 가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