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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두필 Oct 07. 2023

아빠, 잘 가요

2023년 5월 27일 전혀 다른 녀석의 등장.

윙~ 하는 소리와 함께 또다시 핸드폰이 울려댔다.

문자 메시지가 왔다는 표시. 아버지가 문자로 사진을 보내온 것이다.

사진에는 병원 창문으로 보이는 우뚝 쏟아있는 롯데 타워가 보였다.

그리고 그 밑으로 탈출이라고 문자를 보내는 아버지였다.

탈출이라는 단어가 정말 즐거워 보였다.

사진과 문자 속에 기분이 좋은 아버지의 감정이 읽힐 정도였으니 말이다.

아마 지긋지긋한 응급실을 벗어나 일반 병실로 왔다는 자체가 홀가분하셨던 것 같다.

베드조차 응급실보다는 더 편안했을 테니까 말이다.

아버지의 문자를 받아 본 나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잠시 후 아버지의 음성이 들려왔다.

 

"이제 살것네... 90시간 만에 응급실서 탈출혔네~"


아버지의 목소리부터가 응급실에 있을 때와는 달리 약간의 활기를 띠고 있었다.

참 아이러니 하다. 병원을 벗어난 것도 아니고 단지 응급실만 벗어난 것뿐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결 나아진 기분을 느낀다는 것이 말이다.

아마 병원이 고쳐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일반 병실로 왔다는 것은 그 결과가 어찌 됐든 무언가를 시도하고 치료를 한다는 것을 의미하니까 말이다.

뭐 내가 생각해도 응급실과 일반 병실은 천지 차이라 생각이 든다.

응급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시내버스라면 일반 병실은 리무진 버스 같은 느낌이다.

조금은 목소리에 안정을 찾은 아버지께 내가 물었다.


"병원서는 뭐래? 검사는 한 거야?"


"그 뭐시냐? 관상동맥 조영술? 그 검사 혔어."


"그게 뭐여?"


"심장 내과에서 하는 시술이랴."


"뭐야? 폐에 물이 차서 간 거 아니었어?"


"그렇지 근디 여러 가지 검사를 해보는 거 것지?"


"그래? 뭐 병원서 알아서 잘해주겠지 뭐."


"그러것지..."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뭐라셔?"


"그게..."

 

아버지는 자신의 상황과 의사선생님과 나눴던 대화를 나에게 전달하기 시작했다.

관상동맥 조영술은 심장내과에서 가장 흔히 하는 시술로 관상동맥의 정확한 손상 부위나 범위를 확인하기 위한 시술이다.

그런데 폐에 물이 차서 온 사람한테 갑자기 심장? 폐에 문제가 있던 게 아닌가? 분명히 내가 듣기로는 폐에 물이 차서 올라온 걸로 알고 있었는데... 왜 심장 검사를 하는 거지? 하는 의문이 들긴 했다.

어쨌든 조금은 의아함이 있었지만 그래도 빅 5의 병원 아닌가? 전문가들이 하자는데 당연히 해야지, 대한민국에서 큰 병원 중 한 군데서 하자는데 하는 게 맞겠지 하는 생각으로 받아들였다.

드라마나 영화를 봐도 큰 병원에 가면 여러 가지 검사를 하니까 그런 검사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건 일단 건강해지고 회복하는 게 제일 우선이 돼야 할 일이니까 말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신기하다는 듯이 마치 어린애 같이 시술 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아버지 말에 따르면 손목 동맥혈에 카테터라는 것을 투입한다고 한다.

그리고 미세한 검사를 실시하는 그 녀석이 심장까지 훑고 다니면서 그 상황을 실시간으로 보여준단다.

그러면서 중요한 부분은 찰칵찰칵 사진 촬영도 하고 영상까지 촬영을 한다고 한다.

시술을 받고 있는 내내 심장의 혈관을 볼 수 있다고 나에게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의술이 엄청 좋아지긴 했나 봐~ 엄청나더라..."


"그러게~ 실시간으로 막 보여주고 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네."


"이래서 다들 큰 병원 가나벼."


"그러니까 말이야."


듣고 있던 나도 감탄을 안 할 수가 없었다. 이 정도로 현대 의학이 발전했는지는 꿈에도 생각 못했다.

혈관을 돌아다니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고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던 것이었다.

그만큼 의술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무지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아버지의 혈관과 심장을 지켜본 의사의 1차 소견을 들을 수 있었다.

혈관은 건강한데 판막이 조금 헐거워졌고 박동이 조금 느리다는 결론이었다.

해당 주치의의 말은 이러했다.


"폐렴의 증세로 물이 찼고 숨쉬기가 어려워 병원을 찾았는데 그 원인이 심장에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합니다. 1차 소견으로 볼 때 결국 판막 재건술을 해야 되지만 그때까지 심장을 튼튼이 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폐렴의 치료가 우선이라고 판단이 됩니다. 최선을 다 할 테니 잘 따라와 주세요."


결론을 이야기하자면 우선 폐렴치료를 위해 항생제 투여등 관련치료를 하자는 것

1차적으로 폐렴 치료에 집중을 해서 폐렴을 잡아 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심장의 힘을 키울 수 있도록 약물치료를 병행할 예정이고 그 상태가 좋다면 수술을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의사의 이야기를 전달하면서 나에게 말했다.


"아빠는 행운아여~ 그래도 큰 병원 와서 발견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아픈 게 뭐 행운이여~ 안 아픈 게 행운이지."


"그런가?"


아마 아버지는 기침, 감기 증상으로 와서 이렇게 발견했다는 자체가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나도 아버지의 증상이 삼성병원이면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증상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에서도 그리 심각하게 말하지 않았으니까.

아버지 또한 자신의 상황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저 일반 병실에 온 것만으로도 만족하고 충분히 즐거워하고 계셨으니까 말이다.


"그나저나 응급실서 입원실로 오니까 좋네~ 밥도 완전히 건강식이고... 호강이여 호강."


"그니까 간호사 선생님들한테 욕하지 말고 잘해."


"알것어."


"암튼 알것어. 아빠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 간호사 선생님 말 잘 듣고 몸조리 잘하고 있어."


"그려~ 호겸이랑 시후는 잘 있지?"


"어 한번 데리고 가든지 할게~ 끊어."


"그려~"


아버지는 항상 통화를 마무리할 때 손주들의 안부를 물었다.

아이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양반이 손주들에게는 무한 사랑을 주었다.

표정도 항상 인상만 쓰던 아버지였지만 손주들에게는 활짝 웃어 보였다.

나는 그런 아버지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나의 어릴 적 기억은 그런 사람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아버지와의 좋은 기억이 많지 않다.

강력반 형사 생활을 했던 아버지는 나에게 항상 엄했고 살갑게 대해주시지는 않았다.

자신의 강하고 험난한 삶을 살아와서일까? 여동생에게는 그러지 않았지만 유독 나에게는 강하게 가르쳐 왔다.

그리고 권적인 사람이어서 나에게는 절대적인 복종을 강요하기도 했다.

자신의 말과 명령에 반항하면 우선 손부터 날아왔으니까 말이다.

한 예로 키우던 개 밥을 안 줬다는 이유로 귀싸대기를 맞은 적도 있다.

그만큼 괴팍하고 성질이 더러운 양반이었다.

그런 아버지와 난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아들이었다.

그런데 내가 결혼을 하고 아들, 딸을 낳자 그 무심하고 괴팍한 사람이 손주들은 참 좋아했다.

아들 녀석도 그런 할아버지를 꼬꼬 할아버지라며 참 좋아했다.

시골에서 닭과 개를 키우며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를 나의 아들은 저렇게 불렀다.

꼬꼬 할아버지는 언제 오냐며 물어보곤 하는 아들 녀석이다.


그렇게 아버지와의 통화가 끝났다.

삼성병원에서의 생활. 이때는 병원 생활이 그리 길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훌훌 털고 금방 삼성병원을 탈출할 것이라 생각했다.

건강히 퇴원할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병원에서의 또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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