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 함께 살아가는 것의 이상함
에필로그 : 함께 살아가는 것의 이상함
그는 이야기를 마치고 어깨를 으쓱했다. 마치 천 번을 살았다는 것을 믿을 수가 있겠냐는 투였다. 하지만 나는 믿을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눈앞에 있는 그가 천 번을 살았다고 얘기한다면 바로 믿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있었고 별이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그에게 묘한 기분을 느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혹시라도 그가 천 번째의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의 눈을 들여다보았고, 그는 미동도 하지 않은 채 눈길을 돌려주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곤 말했다.
“넌 참 이상한 아이야. 이 이야기를 왜 나한테 들려 준거야?”
“글쎄? 너라면 무언가 이해할 것 같았나 봐. 너에게선 이상하게 별이랑 비슷한 느낌이 나니까.”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별이를 기억 못 하지? 아주 조금 조차도?”
“응. 어떻게 알았어?”
나는 그에게 사실대로 다 말해주지는 않았다. 대신 아주 조금의 진실은 알려주기로 마음먹었다.
“너도 기억을 못 해야 정상일 텐데 기억을 하는 것 자체가 이상한 거야.”
“그런가? 내가 좀 기억력이 유별나.”
“그건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야. 나도 별이를 잘 몰라. 한번밖에 못 봤거든.”
“왜 한번밖에 못 봐? 같이 학교를 3년이나 다녔는데. 못해도 천 번은 봤을걸.”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아니, 내 말 뜻은 그게 아니라, 천 번의 삶 속에서 한번밖에 못 보았다고.”
그 말에 그의 눈빛이 흔들거렸다. 나를 투명하게 들여다보는 그의 눈빛은 내가 그를 처음 봤을 때와 지금이 전혀 다르지 않았다. 수십여 성상이 지나고, 수백수천의 삶이 지났음에도 그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여전히 의아한 채로 그는 나에게 물었다.
“천 번이라고?”
“응. 돌아올 수 있는 건 한 번에 한 명뿐이야. 하지만 마지막 한 해에는 두 명이 겹칠 수 있지. 내가 별이를 본 것은 아마 그 아이의 천 번째, 나의 첫 번째 삶이었을 거야. 그러지 않고서야 마주치지 못했을 테니까. 나 말고도 그런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긴 했는데 별이 일 줄은 몰랐네.”
그는 아주 조금 인상을 쓰고 나를 쳐다보았고, 나는 조금 웃을 수 있었다. 천 번의 삶을 건넌 기억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그는 자신이 이상한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마지막 남은 술잔을 비우며 그에게 말했다.
“너는 참 이상해. 아마 그래서 사람들하고 어울려서 살 수 있는 거겠지. 너는 오소리도 아니고 여우도 아니고 산군이나 기린도 아닌 것 같아. 하지만 아마 그래서 이상하게, 그리고 잘 살아갈 수 있는 것일 테지.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나는 이제야 너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
그게 1000번의 생의 마지막에 일어난 일이라 조금 아쉽다는 말은 덧붙이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이상한 사람인지라 그렇듯 함께 맞닿아가며 살 수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면 그건 후회나 아쉬움을 남길만한 일은 아니었다.
그는 다시 말을 멈추었고, 그렇게 세상을 듣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말을 시작했고, 세상을 보기 시작했다. 듣는 사람이 있으면 말하는 사람이 있고,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보는 사람이 있는 법이었다. 그건 세상이 천 번 흐르고 그 너머로 흘러도 변하지 않을 법칙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사람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 조금 이상한지라, 우리는 말없이도 삶을 만들어나가고 있었다. 조금 분주한 분침과 새침한 시침 사이로, 우리가 함께 살아온 시간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이야말로 우리들만의 작은 천국이었다.
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