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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Jul 05. 2024

항마

14. 당신이 내게 의미하는 바,

태완의 꿈속에서 고통받고 있는 것은 그가 아니었다. 그의 꿈속에서 비명 지르고 있는 여자는 분명 부산역에서 스쳐 지나가도 되었던 그녀였다.


-왜 이 여자가 여기 나오는 거지.


자신에게 목걸이이야기를 하다가 정신을 잃어버렸던 그 여자의 몸이 검은 구덩이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그 여자는 고통을 받으면서도 비명을 지르기는커녕, 창백해진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았다.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로 무언가를 말하고 싶어 하는 그녀. 태완은 그녀의 입을 따라 그려 본다.


-선.. 우.. 선우. 그녀의 이름인가.


그녀의 이름을 머릿속에 담자, 선우의 목소리가 태완의 귓가에 닿는다.


“지금 당장 나를 구해줘. “


태완은 눈을 번쩍 떴다. 꿈이었다. 자신이 피해자도 아닌 꿈이었는데, 온몸에는 식은땀이 맺혀있었다.






선우의 눈꺼풀이 조금씩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정제를 투여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그녀를 감시하던 이들은 방을 이미 나간 상태였다. 홀로 있는 방에서 선우가 눈을 뜬다. 그녀의 눈앞에는 보통 천장보다 두 배는 높은 곳에 커다란 샹들리에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리고 있어서 손으로 눈을 살며시 가렸다.


'여기가 어디지?'


고개를 오른쪽으로 틀자, 천장 높이만큼 높은 창문이 거즈같이 얇은 하얀색 커튼으로 반쯤 가려져 있었다. 몸을 서서히 일으키며 왼쪽을 바라보자, 선우의 얼굴이 거울에 비추어진다. 탈출하기 직전의 상황과는 다른 평화로운 분위기의 방 안에 누워있지만, 그녀의 얼굴과 몸에 난 상처는 그대로였다. 그 순간 가구 위에서 무언가가 떨어져 내려 왔다.


냥-


주삿바늘이 꽂혀 있는 선우의 왼팔 앞으로 고양이 한 마리가 털썩 내려와 앉는다. 선우가 어떤 사람인지 살펴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그녀의 주변을 돌더니, 그녀의 무릎 위로 앉는다. 선우는 바르르 떨리는 손으로 고양이를 쓰다듬어 본다.


냥-


자신을 피하지 않는 고양이를 바라보다가, 높이 걸려 있는 병에서 자신의 왼쪽 혈액 속으로 들어가는 액체에 눈이 갔다.


-주삿바늘은 언제 꽂힌 거지?


무슨 용액인지 모를 액체가 몸속에 흘러들어 가지만, 마비의 조짐이 보인다던가 하진 않는다. 아직도 사지가 멀쩡한 자신을 바라보며 눈물을 떨구고 마는 선우. 두 손으로 주먹을 꽉 쥐고 눈물을 닦더니 주삿바늘을 떼자, 고양이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방과 연결된 응접실로 점프해서 이동한다.


선우도 침대에서 내려와 두 발을 땅에 대고 일어서보았다. 발을 디뎌서 이동을 하려는데 한 발이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나머지 발로 힘을 주어 그 발을 빼내려 하지만, 땅은 점점 검게 변하더니, 이제는 선우의 전체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침대의 끄트머리를 잡아보지만, 몸은 점점 안으로 빨려 들어갔고, 어느새 가슴까지 빠지고 말았다. 목청껏 소리를 질러보려고 해도, 버블 안에 갇힌 것처럼 소리가 목을 뚫고 나오지 못했다. 검은 공간이 목까지 차오르고 이제 곧 머리를 덮을 때, 어떤 사람이 손을 잡았다. 자신을 당기는 힘으로 빨려 들어간 몸이 다시 방 안으로 나왔을 때, 목걸이를 가지고 있던 남자와 함께 응접실 쪽으로 몸이 쏟아졌다.




선우는 그의 목을 손으로 감싸며 어깨를 들썩였다. 그녀에게 묻었던 검은색물들이 조금씩 사라져 가는 모습을 보며, 태완은 그녀의 등을 토닥여 준다. 선우의 어깨가 차분해지자, 태완은 선우의 눈물을 손으로 닦아준다. 선우는 처음으로 그 사람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자신의 눈을 올곧이 쳐다보는 그의 눈은 검고 검어서 칠흑같이 어두운 바다색 같았다. 따뜻한 여름날의 밤바다 같은.


태완은 생각이 잠긴 듯하더니 자신의 주머니에 넣어둔 목걸이를 꺼내서 선우의 목에 채운다.


"감사합니다."

"도망.. 가지 않도록.. “

".."

"이건 권유가 아니라, 명령이야."

".."


선우에게 목걸이를 채우고는 그녀를 안아 응접실로의 소파에 앉혔다. 방금 전 고양이가 선우에게 와서는 그녀의 얼굴을 핥는다.


분명 그녀와 연결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태완도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꺼내고 싶지 않았던 숨겨둔 그 상자를 열어 볼 때가 온 건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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