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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Aug 16. 2024

항마: 과거

태완의 과거

태완이가 고양이를 주워온 날, 할아버지는 그 고양이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고양이의 얼굴을 들어 보이고, 발을 뒤집어가며 온몸을 샅샅이 뒤져보는 모습을 보고, 태완은 손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잡아먹을 건가요?"

"뭐라고?"

"고양이를 잡아먹으려고 그렇게 살피는 거 아닌가요?"

"뭐라고? 어허허허허허"


할아버지는 허를 찔렸다는 듯이 큰 소리로 웃으며 고양이를 태완이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태완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할아버지는 아무래도 너는 운명을 피할 수 없나 보다라며 혼자 중얼거렸다. 태완이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이 똘망한 눈을 들어 할아버지를 올려 보자, 할아버지는 슬픈 미소를 지으며 태완이에게 말했다.


"원래의 집으로 돌아가자. 이제 넌 세상에서 수련을 하는 거야."

"원래의 집이 어딘가요?"

"곧 알게 될 거야. 세상이 쉽지는 않을 거다. 불행이 닥칠 수도 있고. 여기서처럼 풀밭에 누워서 하늘을 쳐다보던 삶과는 거리가 멀 거야. 잘 봐둬라. 그리울지도 모르니. “


태완은 가고 싶지 않다고 울기 시작했다. 자신은 여기의 삶이 좋은데, 왜 굳이 이동해서 그런 무서운 삶을 살아가지 않으면 안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할아버지는 부드러운 손길로 태완을 잡아 이끌며 꼭 안아주었다. 짐이 별로 없었던 두 사람은 그날로 바로 선우와 함께 온 아지트로 이동했다. 처음 보는 총과 칼에 눈을 빼앗겨 만지려고 하자, 할아버지가 그 손을 제지했다.


"그건 차차 하자꾸나. 나중에는 손도 대기 싫을 만큼 지겨워질 테니까."


그리고는 비밀의 방으로 들어가 작은 투명돌멩이를 보여주었다. 그 속에 길이 있는데, 어쩌면 너는 보일지도 모른다고. 설령 보이지 않더라도 그걸 볼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날 거라고. 그리고는 지금까지 느꼈던 따뜻함을 한동안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종국에는 태완이가 스스로 그걸 찾아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하였다. 하지만 찾던 게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면, 가차 없이 없애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날 이후로 진행된 훈련은 쉽지 않았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을 잃지 말라고 했지만, 기절하기 일쑤였다. 대련을 하다가 팔이 부러지는 경우도 있었지만, 쉴 틈은 주지 않았다.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칠 수 없었다. 사실 도망칠 곳도 없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인지도 몰랐다. 고통스럽다면, 몸이 부러지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라는 암무적인 룰만 존재했다. 포근한 미소의 할아버지는 사라진 지 오래였다. 저녁이 되면 울 시간도 없이 잠에 빠져들었지만, 태완이 점점 커가면서 한 달에 서너 번은 침입자가 들어왔기 때문에 자다가도 급하게 반응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잠을 못 자게 된 것이.


아니다. 정확히는 그 사건이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던 날, 산속에서 진행된 추격훈련에 태완이는 그만 다리를 다치고 말았다. 발의 뼈가 밖으로 나올 정도로 심각하긴 했지만, 억지로 힘으로 맞추고 나무를 덧대며 이동하고 있었던 찰나, 세상이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밤이 되려면 아직 시간이 남은 상태였다. 하지만, 칠흑 같은 어두운 밤이 단숨에 주위를 휩싸더니 스산한 기운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몸을 낮추고 피해야 할 공간을 찾아야 했다. 소리를 내지 않고 조심히 몸을 숨기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오른쪽 귀 옆에서 숨소리가 들렸다.


"숨어도 소용없어."


태완은 아픈 다리를 신경 쓸 틈도 없이 칼을 휘둘렀지만, 그 숨소리를 냈던 검은 물체는 공기 중으로 흩어지더니 다시 모여 사람의 형태를 하고 태완이에게 점점 다가왔다.


"이런 상태로 누굴 수호하겠어. 너 자신도 버거울 것 같은데. 하하하하. 내가 좀 더 쉽게 만들어 주지. 감사하다는 말은 사양할게."


태완이 순식간에 옆구리에 있던 총을 꺼내서 그 검은 물체를 향해 쏘았다. 평소에 훈련한 쾌거가 있었는지 정확하게 명중했다. 아니, 명중한 줄 알았다. 총알은 그대로 쭉 나가더니 그 뒤에 있던 사람의 가슴에 박혔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


어둠이 사라지고 숲에는 할아버지와 자신만이 남아 있었다. 다리에 피를 흘려가면서도 고통스럽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비록 세상에 나와 자신을 압박했지만, 소중한 사람이었다. 달려서 할아버지에게 가야겠단 생각뿐이었던 태완은 할아버지에게 단숨에 달려가 그를 안아 일으켰다. 제발 일어나 달라고. 이대로 가면 안 된다고. 너무너무 미안하다고. 할아버지한테 그런 게 아니라고.


"울지 마라. 갈 때가 되어 가는 것뿐이야."

"나 때문이야. 나 때문. 내가 죽어야 하는 건데, 미안해. 할아버지, 너무 미안해. 어떻게 하지. 제발 일어나 줘. 제발."


할아버지는 마지막 숨을 거두기 전까지, 자신이 알려줘야 할 모든 것을 조곤조곤 태완의 귓가에 말했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따스한 말투였다. 그 소리가 작아지는 게 가슴이 아파서 두 눈에 눈물이 송골송골 맺혀 떨어졌다. 할아버지는 오랜만에 웃어 보였다. 슬퍼해줘서 고맙지만, 태완이는 해야 할 일이 있다고. 이제는 때가 된 것 같으니, 자신이 은행 금고에 맡겨둔 것을 찾으라고. 그리고 모든 건 태완이에게 이양될 것이니, 힘을 키우라고. 다른 데 아닌, 태완이 자신의 힘을 키워야 한다고. 꼭 살아남으라고.


할아버지는 태완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이 어찌 행복한 삶이 아니겠니. 사랑하는 손자의 품에 안겨 생을 마감하다니 말이야. 허허허."


태완은 그 순간, 인간이 가져야 할 모든 감정을 놓아버리고 말았지만, 어쩌면 그때 지키지 못했던 걸 지금은 지킬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때 돌멩이가 공명하며 태완이에게도 무언가를 비추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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