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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Aug 09. 2024

항마: 믿음

널 믿어

상자 안에는 투명한 보석이 들어 있었다. 불투명한 듯 투명한 모습이 다이아몬드는 아니었다. 주먹에 꽉 쥐고 있기는 불편한 사이즈인 이 돌은 동굴 앞에서 팔 것만 같은 특이한 돌멩이였다.


“이 투명한 돌은 무언가요?”

“예전에는 그 돌을 만지고 있으면 뭔가 보이는 듯했는데, 결국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 “


태완은 선우의 손안에 투명한 돌을 쥐어주면서 그녀를 이끌어 침대 위로 앉았다.


“들여다봐봐. 선우 씨는 뭔가 보일지도 모르잖아.”


그의 말에 이끌려 선우는 보석을 들어 자신의 눈 가까이 가져가보았다. 투명한 줄 알았는데, 자세히 들여다보니 무언가 들어 있는 것처럼 보일 듯 말 듯 했다.


“진짜네요. 뭔가 있는 것처럼 보여요. “


옆에서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아서 선우가 옆을 돌아보자, 태완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주변은 암흑으로 둘러싸있었다. 자신의 발에 차가운 감각이 들어 발 쪽을 보니, 발에는 잔잔한 물이 출렁이고 있었다. 이게 정말 물인가 싶어서 고개를 숙이려는 순간, 발에 있던 물이 모래로 변하더니 어둠이 사라지고 뜨거운 햇볕 아래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얼굴을 들어 태양이 비치는 쪽을 바라보자, 뺨에 눈꽃송이가 하나둘씩 내리더니 주변은 순식간에 하얗게 변했다. 어찌 된 영문인가 싶어 움직이지 못하는데, 귀 가까이서 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움직이고 싶었지만, 온몸이 마비가 된 것처럼 움직일 수 없었다.


“다시 만났네.”

“누구시죠?”

“벌써 잊었어. 얼마 전에 네 꿈 속이라고 해야 하나? 네 의식 안에 있었던 나를.”

“당신은 누구죠?”

“나는 너야.”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어요.”

“그런 것 같아. 네가 여기까지 올 수 있어서 다행이야. 지금부터 보여주는 건 나의 기억이야. 너의 기억이기도 하지. 어떤 네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까지는 무슨 선택이든 비슷한 결말이었던 것만 기억해.”


눈앞에는 영상이 펼쳐지듯 자신을 닮은 한 여자의 일생이 펼쳐졌다. 평범했던 일상에서 갑자기 변해버린 상황. 그녀는 점차 적응해 가며 무술과 마법을 익혔고, 점차 자신의 능력을 향상하자, 그녀를 숭배하는 자들과 두려워하는 자들로 나뉘어 서로 싸우기 시작했다. 자신을 닮은 그녀는 어디 편에 속해 있다기보다는 그 모습을 즐기는 듯해 보였다.


“당신은 좋은 사람인가요?”

“선과 악은 누가 정한 거지?”

“먼저 질문했어요.”

“네가 원하는 대답을 찾길 바래.”


눈을 뜨고 몸을 돌리자, 걱정스럽게 쳐다보는 태완이 선우를 붙잡고는 흔들고 있었다.


“정신이 들어? 갑자기 무슨 일이야?”

“만났어요.”

“무슨 소리야. 누굴 만나.”

“과거의 나.”

“뭐라고?”

“나는 이제 어쩌죠? 위험한 사람인지도 몰라요. 만약 내가 무서운 사람이라고 해도 곁에 있을 자신 있어요? 아까 그 미친 사람들에게 죽기 전에 내가 당신을 죽일지도 모르잖아요.. “


태완은 불현듯 어렸을 적 이야기가 생각났다. 어떤 여자가 분명 도움을 요청할 것이고, 그 여자에게서 붉은 기운이 나는데 선량한 기운이 아니라면 그 자리에서 숨을 끊어놓으라고.


“선량하다고 느낀다면요?”

“태완이 네가 진짜로 확신한다면, 어떤 경우에서도 흔들리면 안 되지.”

“그렇지만 내가 틀렸다면 어쩌죠?”

“고양이가 있잖아. 때가 되면 도와줄 거야. “


사람의 생사가 걸린 일인데 어떻게 고양이 따위를 믿을 수 있냐고 묻고 싶었지만, 모든 게 일치하는 시점에서 자신의 존재에 대해서 알 수 있을 것이라며 다독여주었다. 그때처럼 태완은 선우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어 주었다. 그러다가 그녀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며 자신의 이마로 끌어당겼다. 한번 믿는 사람은 절대로 지킨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 말의 무게에 서로 짓눌릴 것 같아서 그렇게 잠시 있었다.


냥-


“널 믿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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