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올게요
돌멩이이자 투명한 보석이 공명하면서 뭔가를 비춘다는 게 처음 있는 일이었다. 태완은 이게 자신에게만 보이는 것인지 의문이 들어, 선우를 바라보았다. 방금 전 선우가 그랬듯이 어쩌면 자기에게만 보이는 현상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다. 선우의 얼굴은 이미 이 투명한 듯 불투명한 하얀 보석으로 향한 상태였다. 그녀의 눈빛에 광선이 반사되는 것으로 보아, 이건 태완과 선우에게 동시에 일어나고 있는 것이리라.
“보여?”
“네. “
갑자기 어떤 한 사람이 눈에 보였다. 태완은 그 사람을 본 적은 없었지만, 선우는 달랐다. 그 사람은 지긋이 선우 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그 눈빛은 실제 사람이 선우를 보는 듯 진지했다.
“아는 사람인가? “
“네, 제가 있던 곳의 수장이신 분이세요.”
사람의 모습은 길로 바뀌면서, 그들이 있는 장소로 연결되더니 선우가 말했던 목단화가 잔뜩 피어있는 곳까지 이어졌다. 목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분명 길을 가르쳐주고 있었고, 그를 찾으라는 의미로 느껴졌다. 하지만, 태완은 이 모든 걸 믿어도 되는 건지 고민되었다. 만약 이게 하나의 트릭이라면 어떻게 이 상황을 빠져나와야 할지 예상조차 가지 않았다.
“저기로 가라는 의미겠지?”
“그런 거 같아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모든 걸 알 수가 있는 거죠?”
“나도 잘은 모르겠어. 하지만 이걸 준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사람이야.”
“모든 사람은 믿을 수 있게 보이기 마련이에요.”
선우의 목소리가 떨려왔다. 태완은 그녀의 불안을 느낄 수 있었다. 태완 역시 불과 몇 시간 만에 세상이 뒤바뀌는 경험을 벌써 두 차례 겪었다. 그래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움직이는 게 낫다는 생각이었다. 태완은 선우의 손목을 잡고 그녀를 일으켰다. 움직여야 했다. 둘은 말없이 무기를 챙기고 차에 올라탔다. 추적될 가능성을 생각해서 다른 차량으로 바꾸어 탔다.
“도대체 차가 몇 대에요?”
“열심히 벌었어. “
태완은 피식 웃으며 선우에게 웃음을 지어 보였다. 차가 움직이는 내내, 할아버지와 그녀가 가진 보석은 동시에 하얀빛과 붉은빛을 내며 나아갈 방향을 알려주었다. 그렇게 3시간이 걸려 도착한 곳은 숲이 가득 있는 입구였다.
“아무래도 산으로 올라가야 하나 보네.”
둘은 차에서 내렸다. 여기까지 온 흔적을 지우긴 어려울 것 같아서 특별한 조치는 하지 않은 채, 몸에 착용가능한 무기를 챙겼다. 태완은 문득 생각이 났다는 듯 잠시 차에 돌아가기도 헸으나, 이내 선우에게 돌아왔다. 돌을 뛰어넘고, 나무 사이를 지나 1시간 정도 오르자, 그 어느 때보다 나무가 빼곡한 들판이 나왔다.
‘어디로 가야 하는 거지?’
보석들도 더 이상 길을 알려주진 않았다. 길이 없어 보인 순간, 나무의 한편이 열렸다. 선우와 태완이 지나가자, 나무는 다시 길을 막고 또다시 다른 길을 만들어 그들을 안내했다. 혹시 모를 지뢰가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전진하느라, 시간이 생각보다 지체되었다. 그래도 그들에게 별다른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 분명 맞는 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그들은 어느새 목단화가 피어 있는 곳에 도착하였다.
“어디로 들어가야 하는 거지?”
“당신은 들어갈 수 없어요. 여기에 들어가기 위해선 표식이 있어야 해요.”
“.. “
“나를 믿는 다면 당신의 보석도 내게 줘요.”
태완은 잠시 머뭇거렸다. 자신이 선우를 지키겠다고 생각한 지 얼마 지나지도 않았지만, 할아버지가 준 물건을 성큼 내줄 정도로 친절하지도 신뢰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와서 꺼려하기에는 상당히 멀리 왔겠지. 태완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선우는 눈을 가늘게 뜨고서는 태완을 그냥 쳐다볼 뿐이었다.
“자, 가져가. 난 여기서 기다리지. “
“곧 올게요. “
“그 약속 꼭 지켜.”
태완은 목단화 옆에 풀썩 앉으며 그녀에게 다녀오라는 손짓을 했다. 선우는 태완에게 목례를 하더니 목단화가 피어있는 곳으로 향했다. 손으로 여러 표식을 만들자, 곧 그녀가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