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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Sep 06. 2024

항마: 어둠 속으로

어둠 속으로

떠나올 때와 별 다를 것이 없는 풍경이었다. 녹음이 푸르르게 지어진 모습도, 길가에 피어있는 꽃들도 그대로였지만, 자세히 보면 중간중간 꺾이고 밟힌 흔적이 남아 있었다.


‘현수는 살아 있을까?’


선우는 그와 마지막으로 이별을 해야 했던 장소를 바라보며, 가슴을 움켜잡았다. 그녀 자신도 본인이 살아 있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인지조차 확신이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녀를 무조건 살리고자 했다. 거기에는 죄의식과 연민이 깔려 있었던 것일까? 어쩌면 자신이 모르는 다른 꿍꿍이가 있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현수가 없었다면, 그녀가 이 자리에 두 발로 서있을 가능성도 없었다. 그래서 선우는 자신을 모른 척했던 현수는 잊었다. 자신을 살리려던 그만 기억하기로 했다. 마음속으로 그가 살아있기를 기도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아니다. 그는 살아 있을 것이다. 선우는 고개를 흔들다가 이내 주먹을 꼭 쥐었다. 다시 앞발을 크게 내딛으며 전진했다. 곧 선우가 처음 치료를 받았던 장소가 나왔다. 분명 닫혀 있는 상태였는데, 지금은 창문에 김이 서려있었다.


그녀가 다가가자, 문이 열렸다. 최천수였다. 그는 선우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보냈다. 최천수는 단 몇일만에 제대로 늙어버린 모양이었다. 정말 그인지, 아니면 그를 가장한 또 다른 살인귀인지는 알 수가 없을 정도였지만, 그의 눈만큼은 그임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게다가 살인귀라면 가질 수 없는 지독한 피로는 그가 인간임을 나타냈다.


“궁금한 게 많을 것이야. “

“제가 무얼 궁금하는지 이미 아시는 것 같군요.”

“원하는 게 있어서 돌아왔겠지. “

“왜 진작에 처음부터 이럴 수 없었던 거죠?”

“내가 이야기를 했다면, 모든 걸 믿을 수 있었을까? 가진 걸 전부 버릴 수 있었을까?”

“무슨 말이에요?”


최천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가더니 테이블 옆 의자에 앉았다. 테이블에는 이미 선우가 올 것이라고 예상이라도 한 듯 주전자가 따뜻하게 데워져 있었다. 뜨거운 물을 찻잔에 따르는 최천수를 바라보며 선우가 말했다.


“내가 마실 것이라고 생각하나 보죠?”

“마시지 않아도 괜찮아. 그냥 앞으로의 여정에 조금이나마 안락을 비는 내 마음의 표시정도로만 생각하지.”

“설명부터 하시죠.”

“설명은 내가 하지 않아. 그 설명은 선우, 자네가 획득해야 하는 거야.”

“그건 또 무슨 소린가요? “


선우의 목청이 커지자, 최천수는 그 화를 가라앉히라는 듯이 그녀에게 손을 아래로 흔들어 보였다. 차를 한잔 음미하더니, 그는 저 아래 보이는 문을 가리켰다. 사람들에 의하면 저 아래에서 무엇인가 있다고 말했다. 자신은 들어가 본 적이 없지만 소리를 들은 적은 있다고. 선우라면 필시 느껴질 것이고 보일지도 모른다고. 그것과의 조우에 따라 궁금한 게 해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그건 자신이 결정해 줄 수 없는 일이며 스스로 증명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무슨 헛소리냐고 멱살을 잡았다가 이내 그 손을 놓았다. 선우는 이미 알고 있었다. 그는 절대로 입을 열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복잡한 수작을 부릴 위인도 못되었다. 또다시 그가 하라는 대로 해야 하나 싶어 가슴이 주먹으로 쳤다. 하지만, 모든 열쇠를 지닌 사람은 그였다. 그리고 언제 또 다른 공격이 시작될지 알 수 없었다. 태완이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최천수 역시 자신을 죽일 수도 있는 사람이지만, 만약 그래야 했다면, 처음부터 이미 자신은 이 세상에 없었을 것이라고 냉정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숨을 크게 내쉬던 선우는 한 발자국씩 앞으로 그 아래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아주 껌껌한 장소였다.

돌아가고 싶었지만, 이미 그 문은 보이지 않았다.

갇힌 것일까?

소리를 질렀지만, 이 안에서 울릴 뿐이었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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