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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Sep 20. 2024

항마: 운명

운명의 시작

선우의 두 눈에는 어느새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 눈앞에 고통받는 사람의 외형이 자신과 비슷했기 때문일까. 아니면 자신에게도 그녀의 슬픔이 전해졌기 때문일까. 선우는 처음 보는 여자에게서 낯선 정을 느꼈다. 그녀에게 닿고 싶어 손을 뻗는 순간, 다시 어둠이 찾아왔다.


“저 여자분은 누구죠?”

“이거 봐 이거 봐. 태어나자마자 떨어졌는데도, 혈육이란 이렇게 무섭단 말이지. “

“혹시 제 어머니인가요?”

“그래. 난 그녀에게 빚이 있지.”


선우는 다시 한번 그녀를 보고 싶었다. 자신의 과거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자신이 가족을 파괴한 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괴로워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게다가 대화의 내용으로 봐서는 자신 안에 무언가 있는 게 분명했다. 재앙이라고 했다. 차라리 죽음이 나을 것 같았다. 선우는 다시 눈을 감고, 천천히 손을 폈다. 그 위에는 두 개의 보석이 올려져 있었다.


하얀빛과 붉은빛이 피어오르더니 서로의 색이 선우의 주위에서 엉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은 방금 전에 본 어머니의 모습 같기도 했고, 아버지의 모습 같기도 했다. 서로 싸우듯이 오르던 연기는 하나가 되어 선우를 받들었다. 선우의 몸이 점차 하늘로 떠올랐다. 따스하게 감싸던 기운이 선우의 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기 시작했다. 찌르는 고통이 시작되었지만, 귓가에서 맴도는 목소리가 유일한 위안을 주었다.


‘조금만 참으렴. 아가.’


모든 세포에서 창이 뚫고 나가는 통증이 끝나자, 몸이 다시 가라앉았다. 선우가 눈을 뜨자, 자신의 눈앞에 있는 괴물의 모습이 보였다. 그건 분명 방금 본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그녀가 아니었다.


“너, 누구야?”

“나야. 너의 어머니. “

“웃기지 마. 너 누구냐고.”


괴물은 목젖이 보이도록 고개를 꺾어 웃었다.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눈물까지 보이더니 어느새 선우 코 앞에 있었다. 두 손으로 선우의 어깨를 잡더니 괴물이 말하였다.


“이렇게 재미있는 광경이라니. 나를 너무 기대하게 만드는 걸. “

“누구냐고!”

”혹자는 괴물이라고도 하고, 귀신이라고도 부르더군. 뭐, 둘 다일지도 모르지. ”

“…”

“목단화가 핀 이곳은 죽음의 세계이지. 그들이 어둠 속에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인간이 평화롭게 사는 건데, 인간들은 막 지들끼리 싸워. 웃기지 않아? 그래서 다 죽여버리려고 했어. “

“너부터 죽어버리지 그랬어.”

“뭐, 그러기엔 내가 너무 특출 났어. 영특한 네 어머니가 한 가지 제안을 하더라고. 괴물의 모습을 버리게 해 주겠다고. 자신의 겉을 준다는 거야. “


괴물은 조용히 웃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대신 약조를 하나 부탁하더군. 자신의 아이가 운명대로 태어난다면, 그 아이가 무리 없이 각성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그래서? “

“그래서가 뭐가 그래서야. 그래서 그 여잘 죽이고 그 겉모습을 가로챘지. 그런데 그 여잔 정말 영특해. 이곳에서 벗어나지 못하도록 미리 수를 썼더라고. “


선우는 이 모든 사실을 받아들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차라리 아무도 몰랐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었다. 선우가 조용히 침을 삼키며 말했다.


“이젠 어쩔 참이지?”

“처음에는 네가 나타나면 죽여볼까도 했고, 조금씩 사지를 찢어서 몇 십 년을 고통받게 해 볼까도 했어. 그래서 찾아오는 사람들을 가지고 실험을 했는데, 재미가 없더라고. 차라리 네가 어떤 식으로 깨어날지 궁금하기 시작했어.”

“어떤 식이라니. 난 지금 이 모습이잖아.”

“네 어머니만큼 영특하진 못하네. 좀 실망인걸?”


괴물의 말로는 각성이란 그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니라 했다. 지금은 자물쇠를 푼 정도이며, 그 문이 언제 열릴지는 모르니 재미있는 것이 라고 말했다. 즉, 문이 열리고 그 속에서 무엇을 받아들일지는 가봐야 안다는 것이었다. 선우는 괴물주제에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을 하고서도 잘도 지껄인다 싶었다. 손을 들어 단숨에 괴물에 다가가 목을 잡았다. 괴물은 베실베실 웃으며 말했다.


“이것 봐. 어둠 속에서도 넌 내가 훤히 보이잖아. 너의 능력을 봉인해제한 거야. 감사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괴물의 목 안으로 손가락이 들어오면서 피가 흐리기 시작했다. 선우는 괴물인 줄 알면서도, 자신의 어머니의 모습이 고통스러워하자, 자신의 행동을 멈췄다. 괴물은 혀를 차며 말했다.


“잊지 마. 난 네년의 핏줄이 아니라고.”


괴물의 손이 부풀어 오르더니 가시가 돋아났다. 그 가시 돋친 손이 어느샌가 선우의 얼굴을 가격했다. 피를 흘리며 쓰러진 선우는 자신의 머리에 박힌 가시를 벽 쪽으로 던지며 말했다.


“더러운 수작 부리지 마.”

“나랑 약조 하나 하지. 네 곁에서 네가 어떤 운명을 맞이하는지 옆에서 볼 수 있게 해 줘. 그럼 이 껍데기는 너에게 줄게. “

“그럼 너는 괴물의 모습으로 돌아다니겠다는 건가?”

“이것 봐. 상상력 좀 동원해 보라고. 난 더 이상 껍데기가 없어. 네가 좋아하던 고양이 기억나? 그 고양이가 사실은 내 몸의 일부로 만들어진 거야. 이미 너를 여러 번 구했다고. 그냥 그 고양이가 조금 더 커진다고 생각하면 돼.”

“안돼. 고양이를 죽이지 마.”


괴물은 정말 눈을 내리깔며 선우를 바라보았다.

“아직도 이해 못 하겠어? 그 고양이는 나의 분신이라고. 나의 혼을 약간 떼어만든. 네 어머니가 이곳에서 못 나가게 만들었지만, 내 일부분으로 만든 고양이까지는 못 막더군. 그러니 그렇게 개죽음을 당한 거야. “

“다시 한번 지껄이면 죽여버릴 거야.”


하지만, 선우 혼자 이곳을 빠져나간다고 해도 혼자서 모든 괴물과 귀신들을 물리칠 수는 없었다. 현재와 과거를 이어 줄 기억이 필요했다. 선우는 고개를 흔들다가, 손을 괴물에게 내밀며 말했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털 끝하나 손대지 마. 그런 수작도 부리지 말고.”

“좀 어렵겠지만, 어차피 내가 아니어도 널 죽이려는 자는 많을 테니 그렇게 하도록 할게. 널 도와주진 않더라도 네가 죽는 건 지켜보고 싶으니까.”


그렇게 둘은 손을 잡았고,  어머니의 모습은 바닥에 힘을 잃고 쓰러졌다. 선우는 그것이 어머니의 겉껍데기일지언정 그냥 두고 나올 수 없어서 그녀를 어깨에 얹고 위로 올라갔다. 문을 열고 나오자, 최천수의 얼굴이 나타났고, 그는 선우의 이마에 정확히 총구녕을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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