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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Oct 11. 2024

항마: 기억

사내의 기억

색이 분초를 다투며 변하는 보석을 보면서 선우의 어머니는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당신.. 그게 당신이었어?”




목단화가 피는 곳에는 빨간 철문이 있었다. 허락되지 않은 자에게는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으로 보였지만, 허락된 사람들에게는 새로운 공간이 실재했다.


그 공간의 사람들은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로 괴물들과 귀신들로부터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며 훈련을 받았다. 그 훈련이 끝나면, 작전에 참여해야 했다. 그때부터는 내일 당장 목숨을 잃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속마음을 숨긴 채, 서로에게 미소로 화답했으리라. 자신의 손이 물집과 궂은살이 가득하다고 한들, 그것까지 드러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들에겐 삶의 목적이 있다고 생각했다. 알아주지 못해도 상관없다 생각했다. 문제는 모두가 그렇게 느낀 것은 아니었나 보다. 10년 전에 한 남자가 사라지고 말았다. 방이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고, 본인의 훈련복이

가지런히 접힌 것으로 보아 자발적인 의사로 떠난 것이라고 모두 추측했다.


스스로 감당이 되지 않는다면, 그렇게 떠나 주는 게 모두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에 반대했다. 기강을 잡기 위해서라도 그를 잡아와야 한다고 했다. 최천수도 그 의견에 동조했나 보다. 갑자기 밥을 먹다 말고 누나에게 말했다.


“누나, 얼마 전에 사라진 형 있잖아. 그 형 죽었대나 봐. 그런 소문이 퍼지기 전에 잡아서 목을 쳤어야 했는데. “


누나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런 무서운 말을 담다니, 괴물의 마음을 담기라도 한 거니? “

“누나! 말이 왜 그래. 다들 좋아서 목숨 걸고 싸우는 줄 알아? “

“그만하자. “

“누나, 그 형 내가 알아. 그 형이 죽었다고? 웃기지도 말라 그래. 그 미꾸라지놈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고. “


하지만, 최천수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를 잡아오도록 팀이 짜였지만, 그의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수장은 최종적으로 실종사로 처리하며 사건을 종결시키고 말았다. 대신에 그가 다른 세상에 대한 비밀을 누설할 우려를 염려하여 빨간 철문은 없애고, 목단화를 심었다.




남자는 밖으로 나가서 설파할 예정이었다. 너희들이 이렇게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것은 자신들의 도움 덕분이라고. 태연하게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역겨우니, 겸손함과 존경심을 드러내라고 할 예정이었다. 먼저, 자신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려 줄 예정이었다.


‘내가 상황을 뒤집으면, 수장도 나를 인정하고 말겠지.‘


그러나 그건 남자의 오만이었다. 큰 꿈을 이뤄내기 위해서는 먼저 삼시 세 끼를 스스로 해결해야 했다. 공사장에서 새벽부터 오후까지 일하며 일단 여관숙박비와 끼니를 해결하고 나면, 작전에 참여했을 때처럼 온몸이 지쳤다. 생각했던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에 괴로워서 없는 돈에 담배까지 배웠을 정도였다.


아직 해도 다 뜨지 않은 검은 새벽에 공사복으로 갈아입고 시멘트포대자리 위에 앉아 담배를 피우려고 하는 순간이었다. 부스럭부스럭 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눈과 코가 함몰된 형체가 자신과 일하던 이의 눈알을 빼먹고 있었다.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은색창살을 꺼내어 그 괴물에게

던졌다. 고개가 꺾어져 검게 비어 있는 괴물의 얼굴이 남자를 향했다. 남자는 다른 주머니에 넣어둔 투명한 금빛 실을 던져 목을 낚았다. 그리고는 검지와 중지를 들어 입술에 가져가 주문을 외우자, 실을 타고 흐른 붉은빛에 실자, 괴물이 비명을 지르며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규칙: 누군가에게 발각되었을 경우, 그 사람의 기억을 없앤다.


그 세계를 떠난 이상, 이 규칙을 더 이상 지킬 이유가 없었지만, 남자는 평소대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트럭 뒤에 숨어 있던 이가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일단, 그의 기억을 지웠다. 하지만, 그가 올린 인터넷업로드내용까지는 지울 수는 없었다.


발각되면 그들이 다가올 것이었다. 남자는 따스한 미소의 이면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의 존위가 위험해진다면 분명 괴물들에게 자신을 던질 이들이었다. 그날로 모아두었던 모든 돈을 털어서 얼굴을 바꿨다. 자신이 무슨 일을 위해 그곳에서 나왔는지 본인마저 헷갈리기 시작했다.


괴로운 상태로 처음으로 술을 들이켰고, 교차로에 몸을 흔들거리며 서있는데 헤드라이트가 남자를 향해 왔다. 남자는 이미 죽은 상태인 듯했지만, 숨이 붙어 있었다. 눈을 떠보니, 자신의 손에 휘황찬란한 돌이 눈부시게 비추더니 빨갛게 변했다. 조금씩 숨이 쉬어지기 시작했다. 누가 이걸 손에 쥐어줬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다만, 자신이 깨었을 때는 목단화 옆에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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