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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배추 Oct 18. 2024

항마: 너를 위하여

너를 위하여

최천수는 이야기를 마치면서, 선우의 이마에서 총구녕을 거두었다. 조금이라도 늦었더라면, 최천수의 손은 선우가 계약한 괴물의 힘에 짓이겨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괴물은 선우가 그런 식으로 허약하게 죽기를 희망하지 않았다. 괴물로서 재미없어지는 건 정말 못 참을 일이었다. 그것이 혀를 차는 소리가 선우의 귓가를 맴돌았다. 그때, 최천수가 입을 열었다.


“누이는 네가 태어난다면, 그리고 괴물에 먹히지 않는다면, 너에게도 승산이 있다고 믿었어. 어둠에 사로잡히지 않는다는 증거니. “


“내가 변하지 않았다는 걸 어떻게 알죠?”


“널 믿기로 한 거야. 네가 지금 네 어머니를 들고 왔으니깐.”


최천수는 선우의 등에 업힌 누나를 인계받아 침대 위에 눕혔다. 한 때는 선우가 누워있던 자리였다. 그중 한 사람은 이승에, 나머지는 저승으로 가고 말았지만.


어머니의 모습이었지만, 선우의 눈은 메말라 있었다. 이미 많이 울어서 그런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침대 위에 누워있는 그녀가 선우에게는 낯선 이처럼 느껴졌다. 따스한 온기라도 느꼈다면 달라졌을까. 그때 선우의 어깨에 손이 놓였다. 현수였다.


“현수..”


선우는 팔을 뻗어 그를 안았다. 두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쩌면 어머니 때문일 수도 있고, 감당하기 힘든 자신의 스토리 때문일지도 모르며, 현수가 살아있어서 기쁜 것인지도 몰랐다. 현수는 선우의 등을 두 팔로 두드리며 그녀를 다독였다. 선우는 그에게서 몸을 떼어 내어 현수의 몸을 살펴보았다. 다행히 팔이 없어지거나, 다리가 없어진 모양은 아니었다. 그런데 두 눈이 뭔가 이상했다. 눈을 만져보자, 최천수가 말했다.


“두 눈을 다쳤어. 아무래도 앞을 보지 못하는 것 같지만, 치료방법은 있으니 걱정 마. 보지 않아도 싸울 수 있을 정도로 훈련이 되어 있어 다행이야. “

“방법을 알려주세요. 뭐가 필요하죠? “

“괴물의 피 한 방울.”


그 괴물은 이미 자신을 살려주었다. 살려주었다기보다 자신의 죽음이 다만 궁금한 것이었지만. 어찌 되었건 그것은 그녀를 죽이지 않았고 각성까지 시켜주었다. 두리번거리며 그것을 찾아보았다. 주변에는 이상한 물건은커녕, 고양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긴, 그냥 해본 말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어딘가에 그 괴물이 존재하는 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죽음을 목격하기 위해 크루처럼 같이 돌아다닌다고 했으니, 분명 이 근처에 있을 터였다.


“제가 어떻게든 구해올게요.”

“아서라, 모든 일에 공짜는 없는 법이야. 하나를 받으면 다른 하나를 내어주어야 해. “

“주면 되죠. 현수를 저대로 둘 수 없어요.”


현수는 선우의 손을 꽉 잡고는 고개를 양옆으로 흔들었다. 선우는 최천수가 내려놓은 총을 낚아채서 현수의 눈에다가 조준했다.


“이래도 괜찮아? 뭐가 괜찮다는 건데?”


현수는 그냥 웃어 보였다. 언제는 피 한 방울 나지 않을 것처럼 냉정하게 굴더니 이렇게 웃는 현수가 어색했다. 아니다. 어쩌면 그는 항상 이랬을지 모른다. 다만, 그것을 잊고 있었던 건 선우일지도. 그녀는 자신의 손목을 칼로 그어 피를 내었다. 피가 흥건하게 흘러내리기 시작하자, 검은 물체가 피어올랐다. 눈이 백 여개 정도 달린 초록색 괴물이 나타났다. 최천수가 자신의 허리에 넣어두었던 총을 꺼내 발사했다. 괴물이 그 총알을 잡으면서 말했다.


“너희들도 보이게 하려고 외관에 힘을 줬더니, 못 참겠나 봐?”


총알을 튕기자, 최천수의 팔에 박혔다. 괴물은 히죽 웃으며 말한다.


“아가씨, 피를 그렇게 마음대로 흘리다간, 과다출혈로 죽어. 날 심심하게 할 참이야?”


괴물의 손가락이 선우의 얼굴을 따라 흘러내렸다. 선우는 침을 삼키며 말했다.

“당신의 피 한 방울의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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