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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Sep 21. 2023

마음 돌보기

108배를 하다

  

헐크씨와 우울씨를 보내기로 했으나 결심만으로는 부족했다. 마음을 돌보기는커녕 무시하며 살았던 습관을 고치는 건 많은 연습이 필요했다.


처음 시도한 건 ‘108’였다. 왠지 절을 하면서 이마를 바닥에 댈 때면 나의 꼿꼿한 자아도 수그러들 것만 같아서였다. 씩씩하게 절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꼿꼿한 자아가 수그러들기 전에 내 무릎이 먼저 백기를 들었다.      


‘그만둘까?’

‘무릎이 상하지 않을까?’

‘그래, 무릎에 절은 안 좋아.’

‘다른 편한 방법이 있을 거야.’     


자아를 수그리려던 나의 첫 시도는 처절하게 실패했다. 108배하는 동안 온갖 잡념과 유혹이 내 마음을 점령했고 나는 중간에 그만두려고 몇 번이나 멈췄기 때문이다. 그래도 끝까지 마무리했지만 몸살이 나고 말았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108배는 힘들었고 나는 절의 효과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힘들기만 하고 좋은 건 없잖아!’     


그런데 108배를 하고 몇 주 뒤 시험관 시술하게 됐는데 놀랍게도, 예전이랑 마음이 달라졌다. 시험관 시술 시작하기 전에는 꾸던 악몽이 사라지고 기분 좋게 잘 잤던 것이다. 그러자 모든 것이 다 잘될 거라며 긍정적인 마음도 몽글 솟았다.      


‘이것이 절의 효과인가?’     

긍정적인 반응이 나오자 나는 시술하면서도 108배를 멈추지 않았다. 하체 운동도 되니 시술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마음의 상태를 관찰하는데 그만이었다.      


거의 매일 절을 한 지 3개월이 지나자 잡념이 사라지고 마음이 고요해지기 시작했다. 108배를 할 때면 짧은 순간이지만 꼿꼿했던 자아는 수그러들고 마음 깊이 있는 고요한 목소리와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묵혀뒀던 분노와 슬픔을 점점 털어 낼 수 있었다.


잊어버린 오래된 기억들, 묵은 감정이 드러났다.      

내가 이렇게 많은 것들을 담고 있다니!


‘그랬구나. 내가 참 억울했구나’

‘아! 내가 이때 참 힘들었구나’


사실 내 안에 이기심과 질투, 성마름, 오만을 보는 건 즐거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알면 알수록 자신이 편하게 느껴지고 심지어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렇게 108배와 명상을 함께 수행한 지 일 년이 지났다. 내 삶에 갈등과 문제들이 전보다 잘 풀리기 시작했다. 실제로 내 뜻대로 풀린 건 아니지만 내가 삶을 받아들이는 방법이 달라져 잘 풀렸다고 느껴졌다.  

    

108배를 한 지 이 년째 되면서 나의 욕심과 집착을 조금은 볼 수 있게 되었다. 감정을 바로 느끼고 표현하는 것도 좋아지면서 자연스럽게 절하는 횟수는 줄어들었다.


 지금도 마음의 먼지가 낀 것 같거나 문제가 생기면 절을 한다. 절을 하면서 머리를 수그리며 집착과 욕심을 덜어낸다. 매번 절을 할 때마다 마음의 먼지가 얼마나 빨리 잘 쌓이는지 놀란다. 비록 다리는 무척 아프지만 감사로 가득 찬 마음을 선물로 받기에 108배를 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시험관 시술에도 무척 도움이 된다. 시술하는 과정이 힘들어도 웃으면서 즐겁게 할 수 있었고 설령 실패한다 해도 나는 웃으며 일어설 수 있었다. 시험관 시술은 내게 마음을 관리하는 법을 선물했다. 이렇게 시술이 더 해 갈수록 나는 자신과 더 친해질 수 있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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