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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라의 일기장 Sep 14. 2023

헐크씨와 우울씨

감정 알아차리기

우리 부부가 언성을 높이며 싸운 건 딱 두 번이다. 그 두 번 모두 시험관 아기 시술할 때 일어난 일이다. 주로 사소한 일이 시발점이 되어 불꽃이 튀게 되는데 남편은 예민한 상태인 날 이해하며 참다가 받아치는 식이었다. 우리가 싸우는 원인은 슬프게도 시부모님이었다.      


배아를 이식하고 누워 있을 때였다. 이미 여러 차례 시험관을 했던 터라 따로 시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었는데 아버님이 우연히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버님은 흥분한 목소리로 내게 전화하셨다.      


“너 또 시험관 하냐?”

다짜고짜 말씀하시는 통에 당황했지만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쩐지 네가 요즘 전화를 잘 안 하더니”

“아..네......”

평소에 목소리가 높고 말씀을 세게 하시는 아버님과 연락을 피하고 있던 터라 또 무슨 말씀을 하실까 싶어 조마조마했다.

“네가 애를 못 낳아서 시부모 볼 면목이 없는 거 안다. 내가 다 용서해 줄 테니 마음 풀고 연락해라.”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네?”

곧이어 아버님은 덧붙였다.

“너는 애한테 집착이 심해.”

나는 말문이 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반박하고 싶었으나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잠시 침묵 끝에 간신히 대답했다.      

“아..아니에요.”     

나는 전화를 끊고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들은 거야?’


기분이 나빴지만 침착하게 남편과 통화를 했다. 아버님의 진심은 이러했다. 혹여 당신 때문에 며느리가 눈치 보여 시험관 시술을 반복하고 있을까 걱정하셨고 아기 생각 말고 내 생각만 하길 바라셨다고 말씀하고 싶었던 거다. 옛날 분인 아버님은 표현이 거칠고 마음 전달이 서툴렀다. 어쩌면 나와 아버님은 이런 면에서 닮았는지 모른다.      


나는 이성이 앞서고 감정은 꾹꾹 눌러 담아 놓는 사람이었다. 그러다 보니 제때 감정을 느끼지 못하거나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못하기 일쑤다. 그날도 역시 그랬다. 그 자리에서 바로 내 감정과 생각을 강하게 말했더라면 쌓아놓지 않았을 텐데. 이렇게 오래도록 살다 보니 나는 감정을 바로 느끼지도 못했고 시간이 훨씬 지난 후에 느끼곤 했다.      


특히 분노와 슬픔이 그랬다. 살면서 나는 마음껏 슬퍼하지 않았고 솔직하게 화를 내지 못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억압된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다. 엉뚱한 일에 튀어나와 성마른 사람이 되기도 하고 비슷한 일이 도화선이 튀어나온다. 시험관 시술이 바로 그 도화선이었다. ‘호르몬’은 단지 거들 뿐, 내 안에서 억압되어 있었던 헐크씨와 우울씨는 호르몬으로 탈출해 내 마음을 마음껏 휘저어 놓았다. 문제해결엔 감정이 도움 되지 않는다며 외면했던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감정은 살아있다면 자연스럽게 오가는 것일 뿐이다. 화가 날 만하니 화가 나는 것이고 슬퍼할 만하니 슬픈 것이다.      

나는 헐크씨와 우울씨에게 자유를 주기로 했다.      

‘당신들은 이제 자유에요!’      

마음껏 화내고 슬퍼하리라.


마음을 먹자 변화는 확실히 있었다. 내 마음을 좀 더 살피며 감정을 받아들이고 솔직하게 표현하는 연습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잘된 건 아니지만 결심한 순간부터 한결 마음이 가벼워지고 인간관계가 좀 더 편해졌다.      

무엇보다 시험관 시술할 때 더 이상 헐크씨와 우울씨는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웃으며 시험관을 하는 기적을 경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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