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릴 때부터 선생님 복이 많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학창 시절 인기 있는 선생님들이 담임이 되는 일이 많더니, 성인이 된 후에도 꽤 유명한 선생님들한테 배울 기회가 종종 생겼다.춤 선생님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만히 보니 그 분들껜 재밌는 공통점이 있었다.
현대무용을 배우던 시절, 이름난 무용가이자 원장님이 직강을 할 때였다.
수업은 따뜻한 격려로 시작했지만, 이내 선생님 얼굴이 점점 붉어지고 목소리도 격양되었다.
특히 어려운 안무로 수강생들이 헤매기라도 하면 발까지 구르며 소리쳤다.
“아니! 아니죠! 여기서 이렇게! 다시!”
매의 눈으로 약간의 틈새도 놓치지 않고 집어내신다. (이런 것까지 봤을까 싶은 것도 보신다.)
“다시! 다시!”
슬쩍 넘어갈 수도 있는 걸 집요하게 잡아내고 될 때까지 시키곤 한다. 특히 안무가 어려워 수강생들이 헤매면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다가 급기야 발을 구르며 소리 지른다.
“왜! 왜! 왜! 이게 안 되는 건데! (쿵쿵) 대체 왜!!! (쿵쿵) 될 때까지 시킬 거야.”
‘큭큭’
선생님의 ‘분노의 발구르기’가 시작되면 수강생들은 터지는 웃음을 참아 내며 짐짓 심각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마스크로 입을 가리고 있어서 다행이다) 그렇다고 수업 분위기가 망가지거나 심각해지지 않는다. 선생님이 소리쳐도 감정적으로 화를 내는게 아니란 걸 다들 알고 있었다. 그저 답답함을 토로하는 것일 뿐.
“여러분 미안해요. 내가 너무 욕심이 많죠? 일반인이 이 정도면 잘하는 건데. 전공생 수준을 바랐나 봐요.
분노의 발구르기를 하고 나면 선생님은 미안한 표정으로 말씀하시지만 나긋나긋한 목소리는 그리 오래 가지 않는다.
“아냐! 할 수 있잖아! 왜 못해!”
어떤 분야에 높은 성취를 경험한 엘리트 선생님들의 공통점은 바로 완벽주의와 열정(때로는, 아니 대게는 독하다)이었다. 일반인들의 취미 수업 조차 봐주는 법이 없었다. 선생님들은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훈련해 온 분들이다 보니 낡디낡은 몸으로 춤을 배운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셨지만 넘치는 열정을 억누를 순 없으셨다. 하지만 수강생들의 상태와 실력은 애초부터 선생님들의 기대치에 미칠 수 없다. 이걸 모두 알면서도 선생님들은 답답해하고 때로는 스트레스까지 받으시곤 하셨다.
'그냥 전공생 수업만 하시지, 스트레스 받아가며 굳이 일반인을 가르치는 이유가 뭘까?'
나는 종종 의구심을 가지곤 했다.
한 번은 발레 선생님께 이유를 물은 적이 있다. (그분도 국립발레단 수석 발레리노였고 분노의 발구르기를 자주 했다.)
“선생님 왜 일반인 수업을 하세요? 전공생보다 더 힘들지 않으세요?”
내 질문에 선생님은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사실 스트레스를 엄청 받긴 해요. 왜 이게 안 되지? 답답해하다가 저 나름의 교수법을 연구하곤 해요."
"그냥 전공 가르치는 게 훨씬 보람되지 않으세요?"
내 물음에 그가 살짝 웃었다.
"참 신기하게도 전공생 수업보다 일반인 수업이 훨씬 보람된답니다."
"정말요? 왜요?"
"발레를 할수록 사람들 표정이나 눈빛이 확연히 달라지거든요. 변화를 확인하는 게 아주 짜릿해요."
선생님들의 마음은 기어 다니던 아기가 첫걸음을 뗐을 때처럼 기쁘고 뿌듯하고 대견한 마음과 비슷하지 않을까? 또, 수강생들의 배우려는 의지와 열정도 선생님들이 힘들어도 일반인들을 가르치는 이유일 것이다.
그래도 선생님들의 열정에 따라가려면 우리는 아직 멀었다.
“여러분 왜 이렇게 잘하지?”
현대무용 선생님은 어쩌다 우리가 잘 따라 하기라도 하면 무척 뿌듯한 표정을 짓지만, 이내 웃음기를 거두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여러분 안무가 쉬운가요?”
다들 당황해서 서로 얼굴을 보며 작은 소리로 대답한다.
"아니요! 좀 더 쉽게 만들어주세요!"
선생님은 수강생들의 애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시며 말씀하신다.
"잘하는 걸 보니 지금도 쉬운걸요. 이러면 재미없으니까 더 어렵게 만들어보자고요."
선생님은 눈을 빛내며 어떻게 하면 수강생들이 더 어려워할지 안무를 다시 고민하신다. 역시 선생님의 열정은 우리가 감당하기 어렵다.
엘리트 선생님들은 눈부신 성장이 연습의 결과물이란 걸 잘 안다. 스스로 성장을 경험한 후엔 제자의 성장을 보며 짜릿함을 느끼는 사람들이다. 오늘도 나는 성장을 경험하러, 아니, 엘리트 선생님의 분노의 발구르기 소리를 듣기 위해 춤추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