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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라의 일기장 Feb 16. 2023

춤바람 난 여자

한 번 빠져봐.

“부인! 춤바람 난 거야?”

춤 수업을 듣고 밤늦게 들어온 내게 남편이 놀리듯 물었다. 나는 괜히 움찔했다. '춤바람'이란 말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다.


어릴 때 뉴스에서 봤던 장면이 떠올랐다.

'가정을 팽개친 문제의 주부들'이란 자막과 함께 단속에 걸린 아줌마들이 장바구니로 얼굴을 가린채 카바레 밖으로 줄줄이 나오는 장면.      


'춤바람'하면 카바레, 제비, 일탈 이란 말이 중장년 여성들과 합쳐지는 것 같다. 가끔 지인들이 내게 '요즘도 춤춰?'라고 물으면, 이상하게 부끄러워지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춤바람'난 중장년 여성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   

            

최근에 참석했던 벨리댄스 워크샵에서 있던 일이다. 워크샵은 저녁 늦은 시간에 했고 참석자들은 일반 수업도 여러 개 수강할 정도로 열정이 넘치는 분들이었다.


“어디서 오셨어요?”

회원들에게 인사를 건네며 묻자, 깜짝 놀랄만한 대답이 돌아왔다.

“곡성이요.”

“네 곡성이요?”

‘두 시간 수업을 듣기 위해 매주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 오다니!’ 알고보니 그 분만 멀리서 오는 게 아니었다. 버스, 지하철을 환승해 최소 두시간 걸려서 오는 것이 예사일 정도였다.     

늦은 시간이니만큼 지방에서 온 분들은 돌아가는 기차 시간 맞추느라 수업을 끝까지 듣지 못했다.

“먼저 갑니다. 끝까지 못 들어서 아쉽네요.”

종종걸음으로 짐을 챙겨 나갈 때마다 아쉬워 자꾸 뒤돌아보는 분들을 볼 때마다 내가 안타까울 정도다.      


워크샵에 참가한 분들은 대부분 중장년 여성들이었다. 자녀들을 다 키워놓고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되었을 때 처음 춤을 배우게 되었고 춤추는 재미에 푹 빠져 사시는 분들이었다. 그녀들은 춤을 추면서 삶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갖고 있던 지병이 호전되거나 춤으로 갱년기를 무사히 넘겼다는 분들도 계셨다.      


책 <뇌는 춤추고 싶다>에 춤이 뇌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나온다.     

음악을 들으며 스텝을 밟는 행위는 우리 뇌에 엄청난 자극을 준다. 또한 자신의 감정을 몸으로 표현하면서 사회성이 길러진다고 한다. 심지어 춤이 어떤 운동보다 치매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페르시아 철학자 루미는 춤을 이렇게 표현했다.               

‘춤추는 사람이 발을 구르는 곳이면 어디서든지 먼지에서 생명의 샘이 생겨납니다.’           


몸과 마음에 여유가 없을 때,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마다 나는 춤을 그만두곤 했었다.

'내가 한가하게 춤이나 출 때야?'냐며 자책하기도 했다.

내게 춤이란 여유있을 때 즐기는 호사스러운 취미정도였다.  

   

어느 날, 대학원 동기인 햇살 선생님이 말했다.

“젤라는 춤을 춰야 잘 사는 사람 같아요.”


그제야 나는 춤이 내게 어떤 의미인지 알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춤을 배우는 동안, 삶도 잘 굴러갔다. 좋은 아이디어가 샘솟고 삶의 어려움도 잘 해결되었고 생동감이 넘쳤다. 나는 춤바람 난 여자로 살 운명인지도 모른다.      


내가 발을 구르는 곳이면 어디든지 행복이 퐁퐁 솟을거란 확신이 들었다. 방금 전까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던 사람들이 춤을 추기 시작하자 얼굴이 반짝반짝 빛났다. 워크샵이 끝나자마자 급히 자리를 뜨는 뒷모습들을 보며 나는 그들이 각자 어떤 마음을 품었는지 사뭇 궁금해졌다.     


모르긴 몰라도 오늘 그녀들은 발을 구르며 삶을 행복으로 채웠을 것이다. 춤바람 난 여자들끼린 ‘느낌’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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