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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영 May 04. 2023

춤은 감정을 담는다.

몇 년 전 벨리 동반자 장미와 ‘춤 영상’을 준비할 때였다. 촬영을 앞두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장례를 치르고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으로 돌아왔지만 깊은 슬픔과 상실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연습할 기분이 아니야.”     


나는 진심으로 연습하고 싶지 않았다. 슬퍼서 몸은 축 늘어지고 움직이기 힘들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 뭐가 좋다고 춤을 춰?’


슬픔과 춤은 어울리지 않았다. ‘춤은 자고로, 즐거워야 나오는 것 아닌가?’


그래도 촬영이 코앞이라 마냥 슬픔에만 빠져 있을 수 없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나는 꾸역꾸역 연습했고, 그때마다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에잇, 연습도 안 되는데 그냥 쉬자.’


나는 구석에 웅크려 앉아 음악을 틀었다. 고요하고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고 한동안 멍하게 앉아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문득 움직이고 싶단 마음이 들었다. 몸을 일으켜 무작정 음악에 몸을 맡겼다.      


음악은 묵직하고 느리게 날 이끌었다. 두 팔은 허공을 움켜쥐었다 나를 토닥이듯 안아주었다.


두 다리는 슬픔을 매단 듯 천천히 움직였다. 곡이 절정으로 갈수록 내 움직임도 커지고 강해졌다. 그 순간 음악과 나만 존재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때 마음 깊이 치밀에 오르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느덧 곡이 절정으로 치달았다. 덩달아 내 동작도 커지고, 호흡도 가빠졌다. 바로 그 순간, 세상에 음악과 나만 존재하는 것만 같았다. 그러다 마음 깊은 곳에서 무언가 묵직한 것이 치밀어 올랐다.     


부글부글 끓어오르다가 탁 터져 나오는 감정, 그건 바로 '연민'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통곡했다. 뱃속에서부터 나오는 깊고 슬픈 울음이 나를 꽁꽁 에워쌌다. 할머니의 삶을 반추하자 안타깝고, 짠하고, 미안한 감정들이 한데 뒤섞이더니, 궁극에는 연민으로 뭉쳐졌다.     


춤이 끝나고도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슬퍼서 우는 건 아니었다. 어느새 슬픔은 조금씩 옅어지고 그 자리에 감사와 사랑이 차지했다. 내가 받은 사랑이 얼마나 큰지, 내가 할머니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느껴졌다.      


춤이 끝나자 속이 후련해졌다. 마음을 다해 슬픔을 느끼고, 그리운 이를 기꺼이 떠나보냈기 때문일 것이다. 감정을 표현하기보단 절제하는데 익숙한 내가 춤으로 할머니를 애도했다는 사실은 내게 꽤나 충격적이었다.          


감정은 우리 삶의 일부다. 삼키고 누르면 속으로 곯는 법, 외면하고 억압한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쌓였던 감정은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몸과 마음에 남아 있다. 이유 없이 울적하거나 화낼 일도 아닌데 예민해진다면, 만나지 못한 감정이 남아 있는 걸지도 모른다.      


감당하기 어려운 감정이 몰아칠 때면 나는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춘다.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고 나면 가볍게 떠나간다는 걸 몸으로 체득해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때 정해진 안무 없이, 그저 내 몸이 이끄는 대로 감정을 흘려보낸다. 그럼 자연스레 내가 무엇을 느끼고 원하는지, 어떤 마음인지 알아차리게 된다.     


춤은 감정을 담는다.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면 가볍게 떠나간다.     


춤 말고도 좋은 방법은 많지만, 몸과 마음 동시에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건 역시 춤이 최고다. 뭔가 더 원초적이고 적나라하게 감정이 드러난달까. 끝나고 나면 괜히 부끄럽긴 하지만, 뭐 어떤가. 나만 아는걸.  

   

여러분도 슬플 때는 춤을 추세요.

막춤이면 더 좋아요.

궁극의 시원함을 느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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