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춤을 배웠을 땐 안무를 쉽게 외웠다. 선생님의 설명 없이도 시범을 보이거나 말로만 알려줘도 바로 따라 할 수 있었고 안무와 동작은 바로 몸이 기억했었다. 그때 함께 배웠던 중년 언니들은 금방 따라하는 나를 보며 부러워했다.
"야~ 젊으니까 좋다. 금방 따라 하네."
언니들의 감탄을 들어도 크게 내 마음엔 와닿지 않았다. 그저 배움의 속도는 개인의 차이일 뿐이지 나이와 무관하다고 믿었으니까. 여러번 반복해서 연습해야 안무를 익히는 그녀들을 보고 그저 내가 안무를 빨리 외우는 재주가 있거니 생각했을 뿐이었다.
얼마전 현대무용을 배울 때 일이다. 이 날 안무에는 '구르기'가 있었는데 점프하고 바닥에 떨어질 때 자연스럽게 굴렸다가 다시 용수철 튕기듯 일어나는 동작이었다. 날렵하고 자연스럽게 굴렀다 일어나는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유독 나 혼자 '에고', '끙' 소리를 내며 주섬 주섬 일어나는 것이었다.
발딱 일어나는 친구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푸념이 나왔다.
"에고..젊으니까 좋네."
이런 내 마음도 모르고 우리 완벽주의자 현대무용 선생님은 호랑이같이 내게 호통치신다.
"왜! 왜 젤라님 혼자 늦죠? 젤라님만 다시 해봐요!"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며 몇 번의 구르기를 하면서 서러워졌다.
'몸이 맘대로 안 된다고요.!'
소리내어 외치고 싶었지만 꾹 삼키며 나도 모르게 울컥해 눈물을 흘릴 뻔했다.
'아..나도 예전같지 않구나.'
그제야 비로소 예전에 언니들이 날 부러워했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언니들도 나처럼 몸이 예전같지 않다는 걸 느꼈으리라. 나도 현대무용을 하면서 예전보다 기억력도 반응도 느린걸 실감하고 있었다. 그러자 춤에 대한 열정이 차갑게 식었다. '이제는 그만 둬야 할 때인가'
현대무용에서 받은 상처를 안고 한 동안 쉬었던 벨리댄스 수업에 참석했다. 내가 빠진 사이 수업 진도가 어느 정도 나간터라 배우지 않은 파트를 따라가는게 쉽진 않았다. 젊었을 땐 배우지 않아도 안무 정도는 쉽게 익혔었는데 이제는 속도가 무척 더디다. '역시 나는 예전같지 않아.' 속으로 실망하고 있었을 때였다.
허둥대며 춤을 추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 보던 60대 언니가 말했다.
“젤라야, 젊으니까 좋다. 금방 따라 하고.”
나는 그 말을 듣고 놀라 되물었다.
“제가요? 저 따라가기 버거운걸요. 여러 번 해야 외우잖아요.”
내 말에 언니는 크게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내 나이 되면 며칠을 배워야 해.”
나는 그제야 내가 욕심을 부렸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 내가 현재 내 모습을 받아들이지 못했구나.’
팔팔했던 예전만 생각하고 그거보다 못한 지금을 한탄하는 건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었다. 과거와 비교하면 한숨 뿐이지만 미래와 비교하면 감사가 절로 나오는 법이다. 그렇게 내 마음을 바꾸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다시 열정이 돌아왔고 다시 춤이 즐거워졌다.
오늘도 나는 내가 자랑스럽고 고맙다. ‘움직여 주니 고맙고, 뛰어 주니 고맙고’ 아니, 춤을 추게 해주니 고맙다. 이제 나는 잘 추고 멋진 기술을 선보이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그저 춤을 출 수만 있으면 그걸로 만족한다.
나는 그까짓 ‘나이’ 때문에 춤을 멈추지 않기로 결심했다. 예전보다 못 하면 어떠랴. 지금 할 수 있는 만큼 신나게 즐기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