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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젤라의 일기장 May 17. 2023

우아한 여자

아스팔트가 녹아 버릴 듯 더운 여름날이었다. 나는 더위에 지친 몸을 끌며 발레 스튜디오로 가고 있었다.

그때 익숙한 사람이 내 옆을 스쳐 지나갔다.     

 

‘어! 발레 선생님?’     


선생님을 향해 뻗은 내 손이 허공에 멈췄다. 뒷모습이 너무 우아해서 눈에 더 담아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뿐사뿐 걷는 그녀의 걸음걸이는 춤을 추는 것처럼 아름다웠다. 곧게 편 허리와 어깨는 당당해 보였고 발걸음은 무더운 날씨에도 가볍고 경쾌했다. 리드미컬한 팔과 다리의 움직임은 리듬을 만들며 부드럽게 흔들거렸다. 목과 어깨는 얼마나 편안하고 자연스러운지 보는 사람마저 기분 좋게 만들었다.

    

나는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그녀의 뒤를 쫓았다. 스튜디오에 도착했을 땐 그녀의 '춤'이 끝난 것이 아쉬울 지경이었다.     

"선생님, 어쩜 그렇게 우아하게 걸으세요? 걷는 것도 꼭 춤추는 것 같아요. 비결이 뭐에요?"

호기심 어린 눈으로 내가 물었다.

"걸을 때도 몸에게 말해 주는 거죠."

선생님이 어깨를 쫙 펴며 대답했다.

"뭐라고 말해 주는데요?"

"자, 이제부터 나는 운동하는 거야! 라고요."     

나는 무슨 뜻이냐며 눈을 껌뻑였다.

"일상생활도 운동이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진짜 운동이 된답니다. 생각에 따라 몸이 반응하거든요."

선생님은 걷는 건 물론, 자세까지 달라질 거라며 호언장담했다.     


이후 앨렌 랭어의 책<늙는다는 착각>을 읽고서야 비로소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있었다. 책에 이런 실험이 나온다. 호텔 방 청소를 담당하는 피실험자들은 노동에 따른 칼로리표가 적힌 표를 받았다. 반면 다른 호텔 노동자인 대조군은 표를 받지 못했다. 실험이 진행되는 동안, 피실험자들은 노동과 칼로리를 연결 짓게 되고, 나아가 노동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실험 결과, 피실험자들은 이전과 달리 군살이 빠지고, 훨씬 건강해졌지만, 대조군은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결국 늘 하던 일을 '노동'으로 인식하느냐, '운동'으로 여기느냐가 몸의 변화를 가져온 셈이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야 선생님의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이해하게 되었다. 양치질, 청소, 설거지..지금 글 쓴다고 앉아 있는 것도 모두 운동이 될 수 있다니!    

  

오늘도 걷기 전에 나는 내게 속삭였다.

'이건 운동이야.'

깊은숨과 함께 몸의 긴장을 털어내니 몸이 시동을 거는 것 같았다. 이번엔 이렇게 되뇌었다.

'이건 춤이야.‘

일상적인 움직임이 리드미컬해지더니 발걸음에도 리듬이 실리기 시작했다.     


내가 진짜 우아해졌는지는 모르겠지만 달라진 점은 있었다. 모든 움직임이 생생해지고 소중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보통은 하루의 '사건'만 기억할 뿐, '움직임'은 기억에 남지 않는데, 내게 ’속삭이고 걷는 날‘은 움직였던 감각이 오래 남았다. 걸을 때의 느낌과 온도, 바람, 냄새까지도.     


일단 의식하게 되면 소소한 움직임도 의미가 생긴다. 거기에 운동 효과는 덤이니 이보다 쉬운 운동법이 또 있을까? 이것이야말로 모든 움직임을 운동, 혹은 춤으로 만드는 ’극강의 마법‘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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