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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두맘 Nov 13. 2019

‘킹갓무원’은 없다

공무원은 왜 공공의 적이 되었을까

친구 하나는 나를 ‘킹갓무원’이라고 불렀다. 내가 오늘 할 일을 다 끝내서 정시 퇴근을 한다고 말할 때마다, 지난 달에 야근을 많이 해서 초과근무수당을 많이 받았다고 할 때마다, 복지 포인트로 산 책 얘기를 할 때마다. 심지어 내가 일이 재미있다고 할 때도 그런 말을 했다.


정작 자기야말로 노후 걱정 없는 전문직(세무사!)이면서. 낮 동안 빈둥거리다가 안 해도 됐을 야근을 자초하고서는 야근 수당이 따로 없다고 툴툴댔다. 매년 전 직원이 해외 워크숍을 떠나는 사내 복지를 누리고 있으면서 내 복지 포인트를 부러워했다. 8시 55분에 회사 앞에 도착하면 담배를 피우며 8시 59분까지 기다려서 들어간다는 친구였다. 나는? 애초에 교육이 8시 30분에 잡혀 있습니다요. 우리 둘 다 9-to-6 맞죠?


누구나 자기 손에 쥔 것을 잊어버리고 남이 가진 걸 부러워한다. 하지만 가끔은 공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지나친 질시를 당할 때가 있는 것 같다. 포털 사이트에 공무원 관련 기사가 뜨면 차마 읽기 힘들 정도의 악플이 달린다.


예를 들어, 정부 차원에서 육아 휴직을 장려하거나 휴가 일수를 늘리는 경우 공공기관과 대기업에 먼저 도입하기 마련이다. 거기서부터 중소기업과 소규모 사업장으로 확대해 나가는 게 일반적인 과정인데, 기사 댓글만 읽어보면 공무원들만 대단한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이 나라에는 온통 공무원에 원수 진 사람들만 살고 있는지 반감이 엄청나다. 대한민국은 공무원을 위한 나라고, 공무원 수가 너무 많고, 내가 낸 세금 받아 처먹으면서 놀고먹는 공무원들 다 잡아 족쳐야 되며…….


그 공무원이 되려고 공부하는 수험생이 70만이라는 건 아이러니다. 2018년 국가직 7급 시험에는 770명 선발에 2만 5,990명이 응시해 33.8 대 1의 경쟁률을 보였다. 지방직인 경우 지역에 따라, 또 직렬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치열하기는 매한가지다. 수십 대 1 정도의 경쟁률이 일반적이다.


배우자의 직업으로도 공무원은 높은 인기를 구가한다. 부모님들도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 우리 엄마 친구 아들 하나는 9급 공무원에 합격하자 온 일가친척이 모여 잔치를 했다고 한다.


이렇듯 공무원에 대한 선망이 하늘을 찌르지만, 역설적으로 그 이면에는 공무원에 대한 도 넘은 비방이나 무시·경멸이 공존한다. 말이 나와서 말인데, 사실상 공무원은 자존감을 지키기 어려운 직업이다. 보수적인 상명하복식 조직 속에서 개인의 자율성을 발휘하기 힘들뿐더러, 보통 2년을 주기로 발령이 나기 때문에 자신의 적성이나 개성을 살린 직무를 맡기도 쉽지 않다. 맞지 않는 업무지만 끙끙대며 어떻게든 해보려 애쓰는데 민원인은 욕하고 상사까지 ‘까라면 까’라는 식이면 스트레스가 극에 달한다. 힘든 부서일수록 결원이 많아 업무량이 폭발적인데 공무원을 향한 세간의 시선은 곱지 않다.




정말로 공무원은 시민의 혈세로 호의호식하는 악의 축인가?


급여 수준이 높지 않은 중소기업과 비교하면 공무원 급여가 많아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대기업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공무원법에 규정된 2019년 9급 공무원 1호봉은 159만 2400원이다. 직급보조비와 정액급식비 등 수당까지 긁어모아야 최저임금을 간신히 넘긴다. 연차에 따라 호봉이 쌓이지만 그건 어느 회사나 마찬가지다. 대기업의 성과금 잔치, 자녀 학자금 지원 같은 건 꿈도 못 꾼다. 법인카드도 쉽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회식을 사비로 하는 (개떡 같은!) 경우도 있고, 어쩌다 포상 관광이라도 다녀오려면 외유성 출장이니 하는 말이 나오기 십상이다.


급여도 적고, 직원 복지도 시원치 않은데 그럼 왜 공무원을 선호하느냐? 정년 보장과 연금 때문이다. 그 중 공무원 연금은 개혁으로 더 이상 메리트가 없게 되었다. 정년이 보장되고 꾸준히 호봉이 올라가는 게 공무원의 최대 장점이다.


그런데, 직장인이 정년 보장 받고 월급 좀 올라가는 게 잘못인가? 근로자라면 마땅히(물론 공무원은 ‘근로자’도 아니긴 하지만) 고용 안정을 누리고 근속 시 임금 상승도 기대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직장들이 그것을 보장하지 않는다면 사측에든, 고용노동부에든,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해달라고 요구하는 게 옳지 않을까? 엄한 공무원들만 특혜라도 받은 양 화살을 맞고 있다. 내가 누리지 못해 배가 아프니 공무원에게조차 당연한 권리를 빼앗고 모두가 함께 더욱 불행해지자?


대부분의 공무원 수험생들이 최소 몇 달에서 길게는 몇 년 간 시간과 비용을 쓰며 청춘을 바쳐 공부한다. 그 노력에 합당한 보상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전국의 시청에서, 읍면동사무소에서, 중앙부처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로또에 당첨되어 운 좋게 ‘꿀 빠는’ 사람들이 아니라, 열심히 준비했고 정당한 채용 과정을 거쳐서 임용됐다. 매일 맡은 바 업무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대가로 월급을 받을 뿐인, 공무원이기 이전에 누군가의 가족인 직장인들이다. 태풍이나 폭설과 같은 재해가 찾아오면 비상근무를 서고, 구제역이나 AI가 돌면 방역도 나가고, 지역 버스 회사가 파업이라도 할라치면 전세 버스에 올라 승객들로부터 욕 먹어 가며 안내도 해야 하는, 그야말로 전천후 머슴이랍니다.




공무원 입장에서 열을 좀 내 보았지만, 시민들의 반감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공무원도 공무원을 욕하고 싶을 때가 있다. 애써 담당자 찾아서 돌려준 전화가 빙글빙글 다시 나에게 돌아올 때. 팀원들의 고충은 나 몰라라 하고 개인적인 전화 통화와 무단 외출로 낮 시간을 다 보내고 집에 가는 팀장을 볼 때. 어렵게 초청한 연사를 앞에 두고, 교육 참가자 절반이 꾸벅꾸벅 조는 모습에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릴 때.


하지만 대부분의 공무원들이 자기 자리에서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믿는다. 공무원의 일은 마치 ‘집안일’ 같은 속성이 있다. 매일 반복적으로 해야 하고, 열심히 해도 별 티도 안 나고 좋은 소리도 못 듣는데, 안 하면 바로 티가 난다. 쓰레기 치우기, 도로 청소부터 시작해 로드킬 동물 사체 처리, 장기간 방치된 오토바이 정리, 세금 체납자 재산 압류, 기초생활수급자 관리, 선거철의 선거 벽보 게시와 공보물 발송, 투표소 운영 등등.


우리가 숨을 쉴 때 생각을 하지 않듯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는 행정에 대해서도 의식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이 ‘집안’이 어떻게든 돌아가고 있는 건 누군가 항상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공무원은 대한민국의 모세혈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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