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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길가영 Jul 14. 2024

이충무공의 목포 고하도

 ‘소금’ 생산의 유래

목포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목에 위치한 공간적 특성 때문에 조선시대부터 수군진이 설치되어 있었다. 수군진(水軍鎭)이란 조선시대 전라남도 인근 바다에서 국방과 치안을 맡아보던 병선이나 수군이 머무르는 진지를 뜻한다. 1439년 목포에 수군진이 설치된 후,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음식문화 관련 기록이 있어 살펴보았다.


1597년 정유재란 시기, 이순신의 조선 수군이 목포 고하도에 진을 설치하고 삼도 수군을 통제하는 기지로 활용하였다. 이때 이순신은 고하도의 지역민들에게 소금 생산을 권장했다는 내용이 옛 기록을 통해서 확인되었다. 李恒福(1556~1618)의 《白沙集》에 이순신이 소금을 구웠다는 내용은 다음과 같이 전해져 온다. 1)


여러 장수들은 각자 도망쳐서 본도의 피란민 등과 함께 여러 섬으로 들어갔으므로, 공이 날마다 編裨를 보내어 여러 섬에 통유하여 흩어진 군졸들을 불러 모으게 해서, 전함을 수리하고 기계를 준비하며 소금을 구워 판매하게 하니, 2개월 이내에 수 만여 석의 곡식을 얻게 되었다. 그러자 장사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서 軍聲이 크게 떨치었다.      

『白沙集 제4권 ‘遺事故統制使李公의 유사’』


아마도 군량미를 늘리기 위해 교환수단으로 소금이 활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1907년 국내에 천일염전이 보급되기 전부터 고하도에서는 전통방식의 화염이 존재했었다. 화염(자염)은 우리나라 전통 소금제법으로 염도가 높은 바닷물을 가마솥에 끓여서 만든 소금을 말한다.

               <소금가마> 또는 <염조지인> 김준근 2)


당시 고하도에는 목포권에서 가장 오래된 염전들이 있었다. 『사적 목포』에 고하도 염전 내력에 이순신을 언급한 기록이 있는데, 이순신이 고하도에 주둔했을 때, 염전이 처음 생겼고, 이후 일제 강점기까지 계속 유지되었다고 한다.


고하도에는 현재 염전이 있다. 이 염전이 최근의 것인지 예부터 있어온 것인지? 古老들의 말에 의하면 예부터 있어 온 것이라고 한다. 과연 그 말과 같다면 이순신은 食鹽蓄積에도 상당히 마음 써온 관계로 미루어 보면 당시의 일부 시설이 아닌가 싶다     

『목포문화원. 2000.』


예로부터 목포는‘1黑 3白’의 고장으로 불려 왔다. 김, 쌀, 소금, 면화가 풍부해서 목포 항구를 통해 교역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특히, 전남은 한국의 대표적인 소금 생산지로 목포 주변 신안군을 비롯한 섬들이 주요 생산지라고 할 수 있다. 그 섬들 중에 고하도는 소금 생산에 대한 내력이 이순신의 조선수군 재건 활동과 연계되어 있어 전남이‘소금의 고장’으로 형성될 수 있었던 역사적 근간이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거 같다.


1) 白沙集 제4권 ‘遺事故統制使李公의 유사’

2) <소금가마> 또는 <염조지인> 김준근 / 19세기말 / 오스트리아 비엔나민족박물관

* 참고자료: 최성환(2009). 목포의 '로컬리티'로서 고하도 이충무공 문화유산의 존슨 내력과 가치. 지방사와 지방문화 21권 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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