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는 전라남도 남단에 위치한 항구도시다. 목포(木浦)라는 지명은 ‘강과 바다가 만나는 목에 위치한 포구’라는 의미다. 목포는 영산강과 바다가 만나는 길목과 경계에 있는 지형적 특성 때문에 예전부터 대한민국의 수산물 집산지로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오고 있다.
목포는 1897년 10월 1일 목포항 개항으로 항구도시로 발전해 왔다. 군산항, 여수항과 함께 호남의 3대 개항장의 하나로, 목포 인근 무안군, 신안군, 진도군, 영암군, 해남군을 아우르는 중심도시로 발전하였다.
주요 무역항으로 역할을 해온 목포는 전라도의 풍부한 물산과 목포 인근 지역에서 생산된 다양한 특산물들이 목포에 집결하여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전남은 서해와 남해 두 바다, 영산강과 섬진강, 넓은 평야, 큰 산들과 섬 등을 통해 농수산물, 다양한 약재 및 산채, 수산물 등 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다. 이러한 천혜의 자연환경과 지리적 특성을 토대로 목포항에 공급되는 풍부한 식재료를 통해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되어 왔다. 1) 2)
목포는 목포항에 공급되는 신선한 재료들이 전성기 목포 원도심의 상권과 맞물리면 다양한 음식문화로 발달해 왔다. 그리고 현재까지도 목포는 선어, 활어, 새우젓 등 풍부하고 신선한 수산물의 집산지로서, 대한민국 수산업의 중추적 역할 담당하고 있다. 남도음식의 우수성은 이처럼 서남해안의 인근 해역에서 나는 사시사철 신선한 식재료에서 비롯하였다고 볼 수 있다.
※ 목포수협 수산물 위판고 2020-2021 2년 연속 전국 1위
『목포부사 저(1930), 김정섭 역저(2011)』
특히, 목포는 일제 강점기 식민지 지배 시절, 수탈창구 역할을 하는 거점지역으로 근대역사문화의 잔재가 남아있는 상징적인 곳이기도 하다.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제 강점기 식민지 경영의 수탈창구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만들어진 곳으로 주로 항구가 있는 부산, 인천, 목포에 설립되었다. 특히 목포지점의 경우, 전남 각지에 소재하고 있던 17곳의 농장을 관리하고 있었으며, 동척지점 가운데 가장 많은 소작료를 거두던 제1위의 지점이었다. 이에 일제의 식민지 지배와 수탈의 가장 상징적인 곳이 되었다. 현재 목포지점은 잔재가 일부 남아있어 목포근대역사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목포 문화원』
1926년 목포에 전국 규모의 박람회인 조선면업공진회와 전남물산공진회가 동시에 개최되면서 관광객들을 상대할 수 있는 대중음식점들도 늘어났다.
특히, 일본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일본식 요리점에 맞서 전통 조선식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음식점이 ‘국취관(掬翠館)’이다.
국취관은 목포 큰 시장이라 불렸던 남교동 중앙공설시장의 바로 인근에 자리하고 있었다. 주로 전통 조선음식과 고급서양음식을 취급했다. 1932년 목포기자단발회식, 1936년 호남평론사 창립행사 등이 국취관에서 개최되었고 광복 이후, 1947년에는 박화성의 첫 번째 단편집 「고향 없는 사람들」 출판기념회도 이곳에서 열렸는데, 목포 최초의 출판기념회로 평가받고 있다.
전통 조선식 요리점‘국취관’ 1935년 3월 『호남평론 1935년 9월』
이처럼 목포는 목포항에 공급되는 신선한 재료들이 전성기 목포 원도심의 상권과 맞물리면서 다양한 음식문화가 발달했다. 현재까지도 목포는 선어, 활어, 새우젓 등 풍부하고 신선한 수산물의 집산지로서, 대한민국 수산업의 중추적 역할 담당하고 있다. 남도음식의 우수성은 이처럼 서남해안의 인근 해역에서 나는 사시사철 신선한 식재료에서 비롯하였다고 볼 수 있다.
1) 목포문화원(2012). 우리 고장 목포
2) 목포시(2014). 목포의 역사와 이야기 100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