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곡물을 다듬던 생활의 지혜, 화순 송단 복조리 이야기

by 길가영
화순 복조리_09.14.png 화순 송단 복조리 이야기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 송단리에 위치한 송단 복조리마을은 백아산 줄기 아래 자리한 산간 마을로, 100년이 넘는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이곳은 대숲이 풍부해 복조리의 재료가 되는 산죽(조릿대)을 직접 채취할 수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마을 전체가 겨울 농한기에 복조리 제작에 힘써왔다.


30여 가구가 모여 연간 10만 개에 달하는 복조리를 생산해 전국에 공급했던 시기도 있었으며, 이는 지역 농촌공동체의 경제와 생활을 지탱하는 중요한 부업이었다. 2011년 화순군은 송단 복조리마을을 향토문화유산 제56호로 지정하여 그 역사적·문화적 가치를 보존하고 있다.


복조리는 원래 쌀이나 보리, 콩 등 곡식의 불순물을 골라내거나 씻어내는 데 쓰인 전통 생활도구이다. 이는 단순히 곡식을 정리하는 도구가 아니라, 음식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필수적인 역할을 하였다. 곡물이 깨끗하게 다듬어져야 제대로 된 밥과 떡, 술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복조리는 농경사회의 식문화 속에서 음식의 출발을 상징하는 도구였으며, ‘선별·정리·세척’이라는 기초 과정을 책임지는 존재였다. 이후 ‘복을 조리다’라는 언어적 의미와 겹쳐, 집안에 걸면 복이 들어온다는 설화와 풍습이 더해지면서 민속 신앙적 상징물로 발전하였다.


설 명절에 복조리를 걸어두는 풍습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으며, 남도의 전통 풍속 속에서 음식문화와 신앙이 만나는 지점을 잘 보여준다.


복조리 제작 과정은 추수 직후부터 설날까지 이어졌다. 산죽을 베어 물에 담가 부드럽게 한 뒤 손으로 정성스레 엮어내는 방식은 단순한 수공예를 넘어선 생활의 지혜였다.


송단마을에서는 할머니부터 젊은이들까지 남녀노소가 참여하여 세대를 잇는 전승이 이루어졌고, 집집마다 기술을 공유하며 공동체적 노동 문화를 만들어냈다. 이러한 제작 전통은 마을 사람들의 생활 기반이자 농한기 부업의 상징이었다.


백아산의 산죽으로 만든 복조리는 질이 좋아 전국의 시장, 농협, 백화점 등에서 팔리며 큰 인기를 끌었다. 한때는 주문이 쇄도하여 일본, 민속박물관, 한국관광공사 등 국내외 기관을 통해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1990년대 이후 플라스틱 생활용품의 확산으로 수요가 감소하면서 복조리 생산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송단 복조리마을은 체험 프로그램, 전통 기술 교육, 마을 축제 등을 통해 복조리 제작 전승을 이어가며, 현대 사회에서도 그 의미를 잇고자 노력하고 있다.


문화인류학적으로 송단 복조리마을은 농경사회와 전통 공예, 민속 신앙이 결합된 상징적 공간이다. 복조리는 곡식을 다듬는 음식문화의 기초를 보여주는 동시에, 복과 풍요를 기원하는 생활문화의 상징이 되었다.


이는 단순한 공예품을 넘어 공동체의 결속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생활유산이다. 현대 사회에서 수요가 줄어든 상황에서도 마을의 노력은 전통을 지키고 미래와 연결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며, 송단 복조리마을은 지금도 한국 민속문화와 음식문화가 만나는 살아 있는 현장이라 할 수 있다.



참고문헌

화순군청, 『화순군 무형문화유산 기록: 송단리 복조리 제작 전통』, 화순군청 영상자료, 2024.

전라남도 문화재위원회, 『전라남도 화순군 향토문화유산 지정 자료집』, 전라남도, 2011.

화순 송단 복조리마을, 위키백과, 2024.12.19.

전라남도 화순군, 『복조리 마을 지역문화 기록』, 화순군청,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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