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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후죽순처럼 솟아난 봄철 별미, 화순 죽순찜 이야기

by 길가영
화순 죽순찜_09.21.png 화순 죽순찜 이야기


비 온 뒤 대숲에서 죽순이 우후죽순(雨後竹筍)처럼 쑥쑥 돋아나는 모습을 우리는 흔히 좋은 일이나 새로운 현상·사물이 잇따라 생겨날 때 비유로 쓴다.


그러나 본래 이 표현은 대나무가 많은 남도의 자연을 그대로 담아낸 말이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담양은 예부터 죽순으로 널리 알려졌고, 인근 화순 역시 대나무가 풍부하게 자라는 지역으로 죽순이 봄철 대표적인 산채로 자리 잡아 왔다.


화순에서는 이러한 자연적 배경을 토대로 죽순을 활용한 다양한 음식이 전승되었는데, 그중에서도 죽순찜은 화순 향토음식의 뿌리를 보여주는 중요한 사례라 할 수 있다.


화순 죽순찜은 남도의 풍부한 대숲 환경과 더불어 조선시대 고조리서에 기록된 죽순 요리 전통을 현대까지 이어온 향토음식이다.


전남 화순은 담양, 순천과 더불어 대나무 자생지가 많은 고장으로, 봄철이면 죽순이 풍성하게 나고 이를 활용한 다양한 음식이 발달했다. 그중에서도 죽순찜은 부드럽고 담백한 죽순에 속을 채우거나 장국에 넣어 찌는 음식으로, 예부터 귀한 제철식품으로 인식되었다.


조선시대 농업·생활백과라 불리는 『증보산림경제』에는 죽순을 삶아 칼로 썬 뒤 오이, 버섯, 닭고기, 소고기 등과 함께 국물에 끓이거나 속을 채워 찌는 죽순찜(竹筍䭔) 조리법이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또 『임원경제지』와 『시의전서』 같은 조리서에도 죽순을 밥에 섞어 짓거나 정과, 나물, 탕, 찜 등으로 다양하게 조리한 방법이 전해진다. 이러한 문헌은 죽순이 계절음식이자 질병 예방을 돕는 건강식으로 꾸준히 활용되었음을 보여준다.


죽순은 단순히 맛과 영양만으로 귀하게 여겨진 것이 아니다. 『세종실록』 지리지에는 5월 햇죽순이 종묘 천신에 올려진 기록이 있으며, 왕실과 사대부가에서 죽순은 제례와 잔치상의 특별식으로 사용되었다.


이는 죽순이 왕실 차원의 제물로도 활용된 고급 식재료였음을 증명한다. 화순과 전라도 지역에서 전승된 죽순찜은 바로 이러한 의례와 식문화의 맥락 속에서 향토음식으로 뿌리를 내린 것이다.


오늘날 화순 죽순찜은 쌀뜨물에 죽순을 삶아낸 뒤 다진 닭고기나 소고기를 속에 채워 장국에 다시 끓여 내는 방식으로 대표된다. 담백하면서도 은은한 향을 품은 죽순의 맛은 고기의 풍미와 어우러져 특별한 밥상으로 자리한다.


실제로 화순군 향토음식 전시·소개 프로그램에서도 죽순찜은 중요한 메뉴로 다뤄지며, 농가와 음식 연구자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계승되고 있다.


다만, 조선시대 기록에서 특정 지역명을 붙여 ‘화순 죽순찜’이라 언급한 사례는 직접적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당시 문헌에는 ‘죽순찜’, ‘죽순탕’ 등 보편적 이름으로 정리되었고, 화순을 포함한 대나무 자생지 전역에서 죽순요리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죽순 생산이 많았던 화순에서 이 전통이 지역의 향토음식으로 강조되며 현대적 계승 체계를 갖춘 것은 분명하다. 이는 화순 죽순찜이 단순한 조리법을 넘어, 지역 정체성과 음식문화를 상징하는 중요한 사례임을 보여준다.



참고문헌

유중림, 『증보산림경제』, 죽순찜(竹筍䭔) 조리법 및 식·약료적 가치 기록

서유구, 『임원경제지』, 죽순 조리 및 저장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 5월 죽순의 종묘 천신 및 진상 내역

『시의전서』, 죽순 조리법 수록

『이조궁정요리통고』, 근대 이전 조선 궁중 죽순요리 소개

강인희, 『한국의 맛』, 죽순찜과 남도 죽순탕 전통 해설

NCulture 전남문화지도 및 디지털화순문화대전, 화순 죽순 관련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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